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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자리] 나에게 보이는 것이 너에게 들린다면
고정혁기자2007년 12월 06일 16:46 분입력   총 878387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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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석 | 1985년부터 방송작가 생활을 해왔고 도서출판 소금나무를 운영.
<전라도 우리탯말> <경상도 우리탯말> 등 뜻깊고 감동을 주는 책을 만들고 계십니다. (탯말-어머니 뱃속에서 탯줄을 통해 들어온 말, 어머니와 고향이 가르쳐 준 영혼의 말>


나는 2년 전 서울 국립맹학교에서 6개월 동안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다. 그것은 앞을 못 보는 그곳 초등학교 아이들과 중학교 아이들에게 글짓기와 논술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처음 맹학교를 찾아갔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이제 갓 초등학교 2, 3학년 정도 되는 아이들이 학교 앞 도보로 지팡이를 짚고 나와 걷는 연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차들이 지나가는 차도 옆의 비좁은 인도에서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아이들의 생존을 위한 실전연습이었다. 더듬더듬 지팡이를 짚고 나가다 전봇대라도 만나면 가만히 서서 방향을 가늠해보고, 어떤 아이는 벽이 맞닥뜨리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 매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려 어쩔 줄을 몰랐다.

'아, 하느님! 어찌하여 당신은 저 어린 생명들에게 저리도 가혹한 형벌을 주셨습니까?'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밀면서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이 글은 그때 자원봉사를 하며 아이들에게 했던 말을 정리한 것임을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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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이렇게 만나게 돼 정말 반갑다.
너희들은 이 아저씨가 어떤 사람일지, 어떻게 생긴 사람일지 무척이나 궁금할 거야. 그치?
먼저, 난 너희들이 날 선생님보다 아저씨라고 불러주는 것이 좋겠어. 작가 아저씨! 아니, 그냥 '작가아찌' 라고 불러주는 것이 더 좋겠다. 실제로 난 인터넷 글을 쓰는 사이트에서 많은 사람과 어울리고 있는데 여기서도 난 작가아찌로 통하고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고 있거든?
알았지? 좋아, 그럼 이제부터 너희들도 날 작가아찌로 부르기다?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일단 너희들의 상상에 맡겨둘게. 실제로 너희들은 상상력의 도사잖아? 조금 전에 내가 들어올 때 너희들은 내 발자국 소리를 듣고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고 했다가 조금 실망했지? 발자국 소리가 전혀 안 나서. 하하...

이 아저씬 걸음을 걸어도 발자국 소리가 잘 안나. 몸집은 레슬링 선수만큼 큰데도 말이야. 발자국 소리뿐만 아니고 난 문을 여닫아도 소리를 잘 안내. 밥을 먹을 때도 그렇고. 조용조용, 슬금슬금... 하도 이렇게 소리가 안 나게 행동하고 방이나 사무실 같은 곳도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들어가니까 날 보고 깜짝 놀라는 사람들도 많아.
그런데 너희들한테는 이게 통하지 않을 거야. 너희들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내 움직임 하나 하나까지도 마음으로 읽고 있을 테니까 말야.

이 아저씨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할까? 그래야 예의이니까 말야. 이름은 박원석, 중학교 3학년과 이제 유치원에 다니는 일곱 살짜리 꼬맹이, 두 아들이 있지. 너희들만큼 사랑스러워. 너희 엄마 아빠가 너희들을 사랑하는 것만큼 나도 그 애들을 사랑하고 있고.
그리고 아저씨는 20년 동안 방송국에서 글을 썼단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방송작가라고 부르지. 방송에서 나오는, 너희가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들려나오는 진행자, MC 아나운서 탤런트들의 말을 일일이 다 써주는 사람들이 바로 방송작가야.
방송작가가 '아' 하고 써 주면 그 사람들은 '아' 하고 발음해야 돼. 작가가 '아' 하고 써 줬는데 그 사람들이 '아' 하고 읽으면 난리가 나. 방송작가들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인지 이제 알겠지? 하하...

난 이렇게 20년 동안 KBS MBC SBS TBS 같은 방송국에서 엄청나게 많은 글을 썼어. 하루에 원고지를 2백 장이 넘게 쓸 때도 있었다? 지금까지 쓴 원고를 쌓아놓으면 너희들 키 몇 배는 충분히 되고 남을 거야. 어때? 조금은 존경스럽지 않니?
나는 이 글을 통해 매일같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식을 전해 주고, 또 꿈과 사랑을 심어주려고 노력했어. 어렵고 힘든 사람이나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기쁜 일이 있으면 같이 기뻐해 주고, 실망이나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참 보람이 있는 일이었거든.

그런데 내가 왜 오늘부터 너희들에게 글 쓰기를 가르쳐 주려고 마음을 먹게 되었을까. 이게 조금은 궁금하겠지? 궁금하지 않니?

나는 최근에 이 학교에서 너희들을 위해 도서를 녹음하고 있는 한 자원봉사자 여자 선생님을 우연히 알게 되었어. 난 녹음도서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었거든. 많은 곳에서 너희처럼 녹음도서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열심히 녹음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말야.
그런데 난 그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이 너희들을 위해 어떤 도서를 녹음해서 들려주는지가 궁금했어. 그래서 물어보았더니 시중 서점에 나와 있는 시나 동화 소설책을 녹음한다고 하더구나.
그 말을 듣고 난 한참 동안 많은 것을 생각했지. 그런 도서를 녹음해서 듣게 해 주는 것도 좋지만 너희들을 위한, 오직 너희들에게 꼭 필요한 특별한 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야.

물론 너희들은 일반 아이들보다 많은 부분이 뛰어나기 때문에 어떤 특별한 것은 필요가 없을지도 몰라. 어쩜 너희들도 그것을 원하고 있을 거구 말이지.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달랐어. 시중 서점에 나와 있는 도서는 세상의 모든 사물을 자유롭게 얼마든지 눈으로 보고 또 귀로 들으며 느낄 수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그 아이들의 눈높이와 기준에 맞춰서 쓴 책이 대부분이라는 생각. 아마 이 아저씨 말이 틀리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일반 아이들보다 한 가지를 갖지 못한 너희들, 그 사물을 본 적이 없거나 볼 수 없는 너희들에게는 너희들의 눈높이와 기준에 맞춘 그런 책, 그럼으로써 사물의 본질을 보다 더 정확히 이해하고 상상력의 날개를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거든?
그러자 난 그걸 한번 너무 해 보고 싶은 거야. 그리고 그때부터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컬러에게 했다는 말이 계속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있지?

 "나에게 보이는 것이 너에게 들린다면........"

그래! 바로 그것이었어!
나에게 보이는 세상의 이 모든 것, 하늘의 해와 구름과 바람과 새와 수풀, 강과 바다, 그리고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말로서 보다 자세히 설명을 해 줄 수 있는 사랑이니 우정이니 은혜, 기쁨과 슬픔, 희망과 성공, 이런 것들. 이것을 책으로 써서 너희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어.

사실 이 작가 아저씨는 글을 쓰는 것 밖에는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없어. 자동차 운전도 할 줄 모르고, 돈도 벌 줄 모르고, 집에서는 못도 하나 제대로 못 박을 정도로 할 줄 아는 게 없거든?
그런데 하나님이 내게 한 가지 재주를 주셨는데 그게 바로 글을 쓰는 거야. 내게 주어진 이 단 하나의 재주, 이것도 참으로 감사한 거지.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재주를 주셨을 때는 그것을 꼭 한번 제대로 써먹을 곳에 쓰라는 그런 뜻도 있었을 거야.

그래서 나는 이런 책을 꼭 써야겠다고 굳게 결심했는데 학교에서 대신 너희들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된 거야. 그러니 난 오늘 너희들과 함께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기만 해.
그리고 결심했어. 나에게 보이는 모든 것을 너희에게 들려주고 너희들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창작력을 심어주기로 말야.

누구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사람들에게는 꿈이 있어. 너희들 가운데도 헬렌 컬러나 이번에 국회의원이 된 장향숙씨처럼 훌륭한 사람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거든? 훌륭한 방송 진행자도 나올 수 있고 시인이나 소설가, 노벨상을 받는 대 문호가 나올 수도 있어.
모든 것은 노력이란다. 이 세상에 노력 없이는 되는 것이라곤 없어. 또 노력은 습관이야. 한 가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쉬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습관이 훌륭한 사람을 만드는 거야.

자신의 환경이나 처지가 불리하면 불리할수록 남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해. 남이 하루 여덟 시간 잘 때 똑같이 여덟 시간을 자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 없어. 남이 여덟 시간을 잘 때 여섯 시간을 자고, 남이 여섯 시간을 잘 때 네 시간을 잔다는 각오로 더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써 보고, 그래야 남보다 앞서 성공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니겠니?

너희들도 노력할 수 있지? 노력하는 습관을 가질 수가 있겠니? 남이 여덟 시간 잘 때 여섯 시간 자기다? 알았어? 좋아, 약속!"

뒤로월간암 200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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