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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이야기] 절망에서 희망을 보다
고정혁기자2008년 02월 23일 18:04 분입력   총 879952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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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진석(35) 2004년 11월,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 한국백혈병환우회 환자권리팀장으로 자원봉사활동 중


-암 진단 받고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일 없었으면-

저는 아내와 세 자녀를 두고 있는 가장입니다.
남들과 같이 단란하게 생활하던 평범한 가장으로 회사생활을 하던 중 시련은 찾아왔습니다.
한 계단만 올라도 심장이 쿵쾅쿵쾅 거리고, 가만히 있어도 계속되는 잦은 기침이 3주 정도 지나도 좀처럼 호전되지 않아 2004년 10월 말 동네 내과의원을 찾아 진찰한 후 피검사와 엑스레이를 찍고 나왔습니다.
며칠 후 내과의원으로부터 충격적인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백혈병이 의심된다며 대학병원에서의 정밀검사를 권유받았기 때문입니다.

동네 내과의원으로부터 소견서를 받아 문을 나서는데 앞이 깜깜했습니다.
아내의 얼굴과 아이들의 모습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가며 ‘이젠 죽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나더군요.

동네의원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2004년 11월 2일 여의도성모병원의 응급실로 입원하여 골수검사를 받았습니다.
엉덩이 쪽에 마취를 하고 골수검사용 바늘로 살과 뼈를 뚫어 골수를 채취하는 동안 그때 당시 생후 9개월 이였던 막내딸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이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던 막내딸을 생각하며 아픔을 참았습니다.

골수검사결과 급성골수성백혈병이란 진단을 확정받게 되었고 곧바로 본격적인 치료에 들어가 그 이후 모두 9개월 동안 항암치료를 받으며 힘겨운 투병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입원치료 기간은 총 4회로 첫 번째가 40일, 두세 번째가 각각 55일씩, 마지막 네 번째가 35일 동안 입원하여 입원 치료만 따져도 모두 6개월이 넘게 입원치료를 한 셈이었지요.

더욱 힘들었던 것은 백혈병으로 양쪽 안구에 출혈이 생겨 눈동자 일부분이 안 보이는 증상이 나타나고, 목 임파선 부위에 결핵으로 인한 혹이 생겨 전신마취 후 제거 수술을 두 번씩이나 받게 되었습니다.
항암치료는 받아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부작용으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혈액 속에 있는 암세포를 죽이기 위하여 고용량의 항암치료 중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겪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내 가족들을 생각하며 나를 바라만 보고 지내는 아내와 어린 딸들을 생각하자니 쉽게 포기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항암치료 중 병원 의사선생님으로부터 골수이식수술을 권유받았고, 골수이식수술을 받지 않으면 완치될 수 없으며 언제든지 재발해 죽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골수이식수술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엄청난 치료비입니다.
이식만 하면 완치될 수 있다고 하였지만, 이식 뒤에도 완치가 쉽지 않고 후유증도 만만치 않으며 더욱이 7,000만원에서 1억 원 이상의 추가적인 비용이 든다는 병원 측의 설명에 수술비 마련으로 그 후에 다가올 남아있는 가족들의 또 다른 생활고와 고통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에 차마 이식수술을 할 수 없었고 살 수 있다던 골수이식수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게 현실이었습니다.

저로 인해 앞으로 가족들에게 다가올 짐과 고통을 생각하면 할수록 더 이상의 금전적 피해를 줄 수 없다는 생각은 저 뿐만 아니라 다른 가장들도 마찬가지의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저에게 맞는 최선의 치료 방법은 항암치료 한가지뿐이라는 결단을 하고 그때 당시 의사선생님은 치료 후 생존 가망성이 10~15% 뿐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었지요,
‘그래! 내가 그 10% 안에 들면 되는 거야!’ 라고 말이죠.
아직도 그때 생각이 납니다.

항암치료 선택 후 의사선생님을 믿고 열심히 참고 견디며 투병생활을 한 결과 백혈병 암세포의 재발없이 잘 치료를 받았으며 2005년 7월 21일 드디어 입원실을 나오며 ‘아! 다시는 들어오지 말자.’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퇴원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 퇴원은 했지만 아직 몸은 힘든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서 백혈병에 관하여 공부를 하게 되었고, 그 이후 백혈병환우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백혈병 및 혈액질환 환우들을 위한 백혈병스터디를 한다고 하여 참여하게 되었고, 당시 아무것도 모른 채 항암치료만 하고 골수이식을 하지 않았기에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다가 백혈병 스터디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급성골수성백혈병 M2 t(8,21) 로서 골수이식을 하지 않더라도 치료성적이 골수이식보다 더 좋은 결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의 소식이었지요.
처음 입원했던 병원의 말만 듣고 암울하고 불안한 마음을 품고 살았지만 백혈병 스터디를 통하여 새로운 의학정보와 공부가 이렇게 마음을 평안하게 해줄 수 있을지는 진정 몰랐었습니다.

백혈병 스터디를 통하여 이젠 혈액검사지, 골수검사지, 염색체검사지 보는 법을 배웠고, 백혈병에 사용되는 항암제의 종류와 그 부작용 또 부작용의 대처법 등 의사선생님들이 행하는 의료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으며, 차후 재발 시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 인연으로 다른 환자분들을 위하여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처음에는 한 달에 한번 병원 외래 때마다 백혈병환우회에서 새로운 백혈병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전화 상담과 방문 상담을 시작하였으며 지금은 뜻을 같이하는 몇몇 봉사자들과 함께 매일 환우회에 나와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환자분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 이렇게 큰 보람과 행복이 되는지 이전에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날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불안해하던 마음을 이제는 떨쳐버리고 항상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라고 하나님께서 봉사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백혈병이라는 고난을 주신 것 같습니다.
그 고통과 아픔을 겪어 보았기에 어려운 사정을 들어주고 같이 눈물을 흘리고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덤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저를 알지 못하는 수많은 헌혈자들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주변 분들이 계셨기에 제가 현재 여기에 서 있을 수 있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정을 행복하게 지켜가고 있습니다.

저의 작은 소망이 있다면 앞으로 돈이 없어서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들과 저와 같이 병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잃고 빈곤층으로 추락해 버리는 경우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앞으로도 더 노력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사람이 살고 싶은 마음이야 한결 같은데도 돈이 없어 병을 치료할 수 없는 현실, 질병 때문에 빈곤층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돈 걱정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더욱 열심히, 감사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답니다.

뒤로월간암 200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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