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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이야기] 초대하지 않은 손님을 위하여
고정혁기자2008년 02월 23일 18:15 분입력   총 878881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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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일(60세) | 사찰생태연구소장(//cafe.daum.net/templeeco). 사단법인 보리 이사장. 사찰의 생태를 지키기 위해 사찰생태연구소를 설립하였으며 암투병중에도 쉬지 않고 ‘108 사찰 생태기록 남기기’ 등의 사업을 벌이고 있다.
 

2003년은 교직을 떠나 시민단체를 만들어 환경운동을 시작한 지 만 10년이 되는 해였다.
필자의 환경운동은 생활환경이 아니라 자연환경이 주제였고, 자연환경 가운데 생태운동이 주제였다.
생태주의는 이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다.

그해 10월, 시민들과 함께 새만금 갯벌 간척사업 현장으로 갔다.
새만금 파괴 현장을 돌아보고 난 뒤 거전마을 갯벌로 이동하여 갯벌 생태체험 현장교육으로 들어갔다.

그즈음 밤이면 식은땀이 비 오듯 해서 자다가도 옷을 갈아입어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체중이 줄거나 밥맛이 줄거나 하지는 않았다.
환경, 언론, 문화 분야로 문어발처럼 벌여놓은 일들을 하느라 여느 때처럼 열심히 뛰어다녔다.

새만금 가던 날은 아침 감기 기운이 좀 있었다. 그래서 지도교사와 회원들만 갯벌로 들여보내놓고 바닷가 바위 위에 앉아 쉬었다.
점차 기온이 떨어지더니 바람까지 세차게 불었다. 몸이 으슬으슬 추웠으나 숨길 데가 없었다. 몇 시간 동안 기침을 해댔다. 그만 감기가 들고 말았다.

그런데, 서울로 돌아와 동네 병원을 찾았으나, 낫지 않아 몇 차례 더 다녔다.
열은 내려갔으나, 기침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의사가 천식 같다고 했다. 부랴부랴 인터넷에서 천식학회를 찾아서 홈피에 들어갔다.
천식학회를 이끄는 교수 한 분이 건국대학교 병원에 계시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건대병원을 찾았다. 2주일간 통원 치료하여 천식은 거의 완치에 이르렀다.

그런데, 마지막 날 X레이를 판독하던 교수가 갈비뼈 뒤에 뭔가가 숨어 있는 것을 어렵사리 찾아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CT를 찍어보자고 했다. S병원으로 옮겨서 CT를 찍었더니 1.3센티의 종양이 발견되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의사는 초기에 발견하여 다행이라 했으나,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의사가 권유하는대로 조직검사를 받기로 했다. 그런데, 입원실 관계로 10일 후로 예약해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조직검사를 기다리던 중, 한의원을 하는 한 친구가 초기니까 대체의학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위암을 앓았던 또 다른 친구가 옆에서 거드는 바람에 대체의학에 몸을 맡기기로 하고, 조직검사를 취소하였다.

필자가 당시에 받은 대체의학요법은, 조선족 교포가 침을 놓고, 포도즙 같은 액체와 스포츠 음료 같은 정화수(?)와 한약 탕제를 먹는 요법이었다.
대체의학과 함께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어 야채즙과 현미차 등 적당한 식이요법도 병행했다.
정화수를 먹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설사를 했다. 독성이 빠져 나가는 증거라고 했다.
3개월 설사에도 불구하고 체중은 다행히 줄어들지 않았다. 3개월 동안에도 밤마다 식은땀을 옷이 젖도록 흘렸다.

그러나, 전혀 차도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수술 기회마저 놓치겠다 싶어서 일산 암센터를 찾아갔다.
조직검사를 하고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2주 만에 퇴원을 했다.

공기가 나쁜 서울 도심의 집으로 들어가기가 조심스러워, 숲이 있고 한적한 고양시의 한 아파트로 임시거처를 마련하고 회복에 들어갔다.
그러나, 식욕이 엄청 떨어져 한 끼에 죽 한 그릇도 버거웠다.
수술 과정에서 체중이 7킬로그램이나 빠졌는데, 도무지 개선의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수술 후에도 계속 식은땀이 나서 밤중에 속옷을 갈아입곤 했다.

그 무렵 한 카페 회원이 체중을 정상으로 회복시키고, 면역력을 키우는 데는 육식이 가장 좋다고 댓글을 올려주었다.
그 말을 믿고 쇠고기와 닭고기를 거의 매일 같이 먹었다. 그리고, 친지가 권한 상황버섯과 영지버섯 달인 물도 마셨다.
홍삼이나 녹용 같은 한약재는 주치의가 반대하여 일체 먹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추가 항암치료 없이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CT를 찍었고, 이상이 없었다.
6개월이 지나자 체중이 조금씩 회복되어 정상 체중을 회복하였다.

서울에 있는 집을 팔고, 경기도 광주로 이사를 갔다. 가까이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혼자 축구를 하고, 가볍게 등산도 했다.
강의와 집필활동을 다시 재개하면서 1주일에 한 번씩 출근하여 업무도 챙길 수 있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1년 반 만에 재발이 되고 말았다. 수술이 불가능한 부위에서 재발된 것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첫 수술이 깨끗하지 못했던 탓인지 수술 부위에서도 종양이 다시 발견되었다고 했다.
체중과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육식을 과하게 했던 탓에 재발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주치의와 상의한 끝에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제1차 치료에서 종양의 크기에 변함이 없어서 3개월간 쉬었다가, 다시 2차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
2차 치료에서도 종양은 크지도 줄어들지도 않고 변함이 없었다.
다행한 것은 1년 동안 1, 2차 치료를 하면서 머리카락이 빠진 것 외에는 후유증이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손발이 약간 저리긴 했지만, 운동과 등산을 하는 데도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지금은 3차 치료를 앞두고 3개월 동안 쉬는 기간이다.
오는 1월 24일이면 다시 CT검사를 받고, 3차 항암 치료에 들어갈 것이다.
발병한 지 3년이 지났고, 수술한 지도 3년이 가까워온다.
그동안 몸과 마음이 많이 고달팠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이 큰 힘이 되었다.
삶을 보다 깊고 넓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요즘 일과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명상과 사회를 위한 심신의 봉사로 채우고 있다.
내일은 3박 4일 일정으로 남해안 지역의 자연환경을 탐방하기 위해 여러 사람과 길을 나선다.

지난 3년 투병기간 동안 몇 권의 책을 냈다. 그 가운데 애정이 가는 책이 <생명산필>이다.
지난 10여 년 간 산과 들로, 강과 바다로 여행을 다니면서 동식물 자연생명과 나눈 무언의 대화를 담은 책이다.
말하자면 ‘생명잠언록’이라고나 할까, 그 책의 마지막 장에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

평생을 살면서 우리는 늘 우리가 좋아하는 손님들만 가까이 두려고 합니다.
귀에 감미로운 말, 입에 감치는 음식, 눈에 차는 옷, 마음에 드는 사람...

우리가 싫어하는 손님들은 한 번도 초대한 적이 없습니다.
행여 그런 손님들이 문전에 얼씬할까봐 늘 전전긍긍하였습니다.

그리고, 늘 그들을 미워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 몸 속에는 내가 초대하지 않은 분이 한 분 와 계십니다.
햇수로 3년이나 되어 이제는 낯설지도 않은 손님입니다.

내 생애에 가장 두렵고 무서운 손님입니다만,
잘 대접해 보내 드리려고 합니다. 내가 초대하지 않은 손님도 손님이니까요.

매주 월요일은 일산 암센터를 찾는 날입니다.
새벽 다섯 시에 집을 나서 저녁 다섯 시에 돌아왔습니다.

버스를 타고 오가는 시간이 그 중 절반입니다.
버스를 타고 지나오면서 창밖을 내다보니
한강변에 겨울 손님들이 그득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겨울철새들입니다.

뒤로월간암 200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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