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수기
-> 투병수기
[투병이야기] 고통은 삶의 한 부분이기에
고정혁기자2008년 02월 23일 18:23 분입력   총 878488명 방문
AD

신 영 | 시인이자 수필가. 보스턴에 살며 Boston Korea신문에 칼럼연재. 저서 시집<하늘>, 수필집<나는 ‘춤꾼’이고 싶다> 등.


세상에 살면서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란 말은 그저, 남의 일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몇 년 전 어느 날, 날벼락 같은 일을 만났습니다.
‘하늘이 노랗다’는 말을 실감할 만큼… .

40이 넘으면서 건강에도 신경을 써야하기에 짝꿍이 간 검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간 검사를 하는 동안 이상한 것을 발견했는지 병원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혈액검사를 다시 한 번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았지만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뭘, 검사를 하자는 거지?” 하면서 능청스럽게 짝꿍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우리 둘이는 함께 병원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갑작스런 전화를 받았습니다. 혈액검사 결과 이상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가슴이 쿵쾅이는 일이었습니다. 병명은 ‘루키미아/백혈병’ 이었습니다.
하늘이 노래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것이 꿈이길 바랬습니다. 잠에서 깨어 아침을 맞으면 꿈일 거라고, 그렇게.

울고 또 울어도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남자의 울음은 내 가슴을 더욱 찢기게 했습니다.
똑똑하고 잘난 남자의 무너지는 ‘꿈’을 곁에서 보기가 너무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언제나 착한 남자였습니다.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변함없이 대하는 멋진 남자였습니다.

며칠은 울음으로 가득했습니다. 이 남자는 저만 보면 우는 것입니다.
아마도, 세 아이들을 어찌 키울까? 생각을 했나 봅니다.
남편 옆에서 함께 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도 상황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정신을 차리자.’

몇 번을 되뇌이며 기도를 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감사하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지켜주신 은혜가 감사하다고. 당신이 지금까지 지켜주신 것처럼, 지금 이후의 일들도 지켜달라고.

세상에 살면서 나쁜 일,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다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 뿐, 그것마저도 욕심인 것을. 괜찮을 것이라고 짝꿍에게 얘길 했습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따뜻하게 마음을, 가슴을 안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쌀쌀한 아내로 있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장기간의 싸움(병)이라면 나는 길게 오래도록 이 남자 곁에서 있겠다고. 이성을 찾으며 맑고 밝은 나 자신으로 돌아갔습니다.
마음으로 자꾸 타일렀습니다. 마음 약해지지 말자고.

짝꿍도 한 3개월을 보내며 병원 치료에 잘 임했습니다.
아이들도 더욱 강해졌습니다. 아마도, 어린 마음들에 아픔과 상처로 남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살면서 겪는 일들로 더욱 인생에서 많은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남편은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 했으며, 골프 여행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다녀왔습니다. 저 역시도 계획했던 여행을 차질 없이 다녀왔습니다.

‘일상에서 가졌던 날들과 똑같이 보내자.’

그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 남자에게도 그 일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일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매일의 일을 하면서.
그리고 2년이 되었습니다. 병원치료는 계속 받고 있지만 특별히 변한 것은 없습니다.
바로, 일상에서의 감사가 있기 때문임을 압니다.
하루를 주셨기에 아침을 감사히 맞을 수 있고 낮을 보내며 또 밤을 감사히 맞고 보내는 일 말입니다.

일상이랑 똑같이 지내는 우리를 보시며 다른 분들이 궁금해 물어오실 정도입니다.
저는 늘 축복이라 여기며 감사를 배웠습니다. 내가 평안할 때에는 몰랐던 건강함의 축복을.
다른 아픈 분들이 그냥 지나쳐 버려지지 않는 이유, 바로 그것은 내 몸으로 마음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깊음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어려움이 있었기에….

그래서,

‘어둠은 절망이 아닙니다.’
‘어둠은 바로 희망입니다.’

한 2년을 병원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 남자와 여자는 여전히 전과 꼭 같이 생활을 합니다.
아이들도 좋은 경험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아빠의 사랑을 더욱 깊이 따뜻하게 받습니다.
아내인 저도 남편의 사랑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살면서 힘겹지 않게 지낼 수 있으면 더 없는 행복일 것입니다. 하지만, 편안함이 평안함이 될 수 없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평안이 주는 안식이 생활 가운데, 얼마나 큰 힘과 용기가 되는가를 말입니다.

‘고통은 인간의 삶의 한 부분이기에…’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합니다. ‘고통’이란 말 앞에서 그만 무릎을 꿇습니다. 너무도 ‘감사한 축복’이라고.
어려운 일들을 겪지 못했을 때에는 누리지 못했던 감사입니다. 그저 편안함에 안주하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고통이 주는 갑절의 감사’를 배웠습니다.

고통이 묻어 있는 평안함을….

뒤로월간암 2007년 2월호
추천 컨텐츠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