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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편지] 아버지 꼭 안아드릴께요
고정혁기자2008년 02월 23일 18:42 분입력   총 878455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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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연(38세) |아버지가 간암으로 수술 받고 쓴 생애 두 번째 편지


사랑하는 아버지.

제 평생 이것이 두 번째 아버지께 드리는 글이네요.
어릴 적, 학교에서 선생님이 시켜서 쓰고는 처음이니까요.
아버지한테 사랑하는~ 이라 말한 적이 있었던가요?

TV를 봐도, 노래를 들어도, 책을 봐도 어디서도 사랑, 사랑 쉽게도 말하고, 쉽게도 서로 끌어안는데 왜 전 아버지께 사랑해요, 한 마디가 목에 걸려 안으로 눈물로 삼켜질 따름일까요.
왜 이젠 작고 왜소해진 아버지의 등 한번 껴안아 드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팔만 부축할 뿐일까요.
아버지는 언제나 아버지 그 자리에, 저는 자라나 이만큼 제 자리에 떨어져 있었어요.
제겐 아버지는 그렇게 어렵고 힘들었답니다.
장난 한번 쳐본 기억이 없고, 서로 농담하며 웃어본 기억도 없습니다.

그러던 아버지가 어떻게 순식간에 변해버릴 수 있을까요?

적에게 함락당한 듯 아버지의 모습은 무너진 성처럼 처참해 제 가슴을 찢어놓았습니다.
초췌하고 말라버린 노인이 병상에서 울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 분이 내 아버지라니, 믿기지 않아 두 눈을 비벼보기까지 했어요.
몸 여기저기 호스를 꼽고, 채 못 여민 헐렁한 환자복 아래 보이는 마른 가슴팍을 보는 순간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듯 했습니다.
울음이 터져 나올까 싶어 눈길을 내리깔고 다가가 윗옷 단추를 꿰는데 자꾸만 손이 떨렸습니다.

네 명의 자식 결혼식에도 꼿꼿하고 표정 한번 흐트러지지 않으셨잖아요.
왜 자꾸 결혼식 때 맞은 편 흰 장갑 끼고 앉아 계시던 아버지 모습만 겹쳐 보였는지 모르겠어요.

아버지.
다시 예전의 아버지로 돌아오실 수 있으시죠? 반드시 그러셔야 해요. 꼭 그러셔야만 해요.
허공에 대고 아버지하고 부르지 않게 해주실 거죠?

사랑하는 아버지.

눈물만 흐릅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달려가 곁에 있고 싶은데, 아버지, 막내 꼬맹이였던 제가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네요.
집 근처에서 시집가서 살 것을, 왜 이렇게 멀리 시집을 왔을까, 별 원망을 다 하며 밤을 보냅니다.

돌아오는 주말에 뵈러 올라갑니다. 토요일 아침 일찍 갑니다.
제가 가고나면 병실 창문으로 부축해 달래서 하염없이 보고 계신다면서요.
아이들 봐줄 사람이 있으니 월요일까지 있으렵니다. 제발, 빨리 가라고 재촉하지 마세요.

사랑하는 아버지.

가서 꼭 안아드리렵니다. 제가 아기였을 때 막내 다칠까 조심조심 안아주셨듯이요.
그리고, 꼭 말하렵니다.
사랑해요, 아버지. 막내가 이렇게 컸어요.
부디, 힘들어도 잘 견뎌주세요. 막내를 위해서요. 정말 아주 많이 많이 사랑해요 라구요.

-멀리 병원에 계신 아버지를 그리며 막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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