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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당신은 통계가 아니다
고정혁기자2008년 04월 01일 21:43 분입력   총 879160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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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얼마나 살 수 있을지를 말했다면 그것은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이다.
환자 자신이 더 이상 길이 없다고 믿는다면, 그리고 끝없이 이어질 고통을 견뎌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 상황에서 유일한 탈출구는 바로 죽음이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 있더라도 희망과 삶의 의지를 꺾지 않는 환자들이 있는 반면, 무력감에 빠지고 자신의 상황이 절망적이라 생각하며 죽음에 대한 저항을 포기하는 환자들도 있다.

의사가 환자의 병이 진행될 과정을 공식화하려는 것은 치료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통계에 의거해서 환자가 얼마나 살지 예견하는 것은 몇 가지 기본적인 문제를 무시한 행위이다.

통계는 다수의 패턴이며 집단을 다룬 것이지, 개인에 관한 것이 아니다. 병의 표준적인 증상들은 같을지 몰라도 환자의 나이, 성별, 생활양식, 건강 상태, 병의 진행 단계와 전이 범위, 의사에 따라 다를 수 있는 치료법, 입원해 있는 병원의 종류의 질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요인들에 환자의 자세, 낙관주의, 살려는 의지를 더한다면 통계에 따른 의사의 예상은 충분히 빗나갈 수 있다.

사실 많은 사람이 모든 종류의 암에서 회복되었다.
어떤 암도 치료될 수 있다.
어려운 조건을 이겨내고 정해진 시한을 훨씬 넘어서까지 살고 있는 환자들의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다음과 같은 점들을 알아 두자.
 

1. 통계학자들에겐 한 개인이 주어진 1년 안에 죽든지 한 해를 더 살든지 그래프상에서 거의 달라질 게 없지만, 환자 자신에겐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치료 결과 통증에서 해방된 보람되고 즐거운 몇 년을 더 살 수 있게 된다면 특히 그렇다.

2. 통계치로 취급될 것인지, 인간으로 대접받을 것인지는 오직 본인만이 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구토, 혈구 수치 저하, 탈모 등의 부작용이 있는 주사를 맞는 치료와 부작용이 적은 알약을 먹는 치료가 있는데, 통계에 따르면 전자가 3개월을 더 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 후자보다 선호된다고 하자.
이때 생명을 연장하는 것과 부작용 가운데 어떤 것을 택할지 결정할 사람은 환자 자신이다.

3. 광견병이나 홍역 같은 일부 질병은 진행 과정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런 병들은 사망이나 회복은 보통 예상된 시간 안에 일어난다.
하지만 관상 동맥성 심장병, 류머티스 관절염, 암 같은 병은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어떤 환자들은 1, 2년밖에 못 살고, 어떤 환자들은 15년 이상을 살기도 한다.
암이나 동맥 경화로 인한 심장, 신장, 뇌의 질환은 변수들이 너무 많아서 어떤 교과서에도 실릴 수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4. 호지킨씨병 3기니 4기니 하는 말은 병을 기계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의사는 환자의 느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환자와 동떨어진 무엇으로 병을 평가해야 한다.
병을 1기니 2기니 나누는 것은 치료를 위한 수단이지, 환자의 생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딱딱한 사실들만 다루다보면 환자의 불타는 삶의 의지를 고려 대상이 되지 않고, 수치들만 생각하다 보면 희망의 무한한 가치를 간과하게 된다.
어떤 의사라도 환자의 희망과 목적의식을 박탈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누구나 아무 질병 없이 오래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며, 이상의 세계에선 아무도 병에 걸리지 않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무병장수란 아주 소수만이 누리는 축복이다.
아직 치료법에 밝혀지지 않은 질병들도 존재하며, 그것들은 대부분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불치병 환자라도 의학적 사실이나 수치에 연연하지 않고, 엄격한 식이요법 대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르고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사는 데 골몰한다면 상상도 못했던 만큼 생명을 연장할 수도 있고, 생각 이상으로 삶의 주도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며, 앞으로 무수한 세월이 남아 있는 것보다 더 의미 있게 살 수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과 창의력을 지녔다.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 생명이 위태로운 병에 걸렸을 때보다 적기는 없다. 이 시기에는 무엇이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은 암 진단을 받고 며칠이 지난 뒤 아직 자신이 살아 있음을 발견했을 때, 충격이 자신을 죽이지는 않았으며 좀 더 기간이 단축되었을지는 몰라도 아직 미래가 있음을 깨닫는다.
처음에는 딜레마에 빠져 ‘이제 어쩐다지?’ 하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 고통의 안개 속을 헤쳐 나오는 방법은, 멈춰 서서 자신에게 남아 있는 선택들을 신중히 생각해 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방법을 골라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암환자를 위한 생존전략》, 조얼 네이선, 친구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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