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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일기⑤]고마웠노라 2006년!
고정혁기자2008년 04월 01일 21:45 분입력   총 879035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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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 이승섭(74)|식도암과 갑상선 아래 전이된 림프절 치료 중. 비절제 식도암 생존율 0%라는 비정한 숫자를 도전으로 2년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2005 8월 친구 정원석박사(왼쪽)와 함께

2006. 12. 31(일)

하루쯤 긴장을 풀고 느긋하게 지내봤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만큼 단 하루도 암을 의식하지 않은 날이 없었던 한 해였다.
암 투병 속에 해야 할 일들도 너무 많았기에 하루하루가 시간에 쫓기는 한 해였다.
한 눈 한 번 못 팔고 정신없이 보낸, 그러나 지내고 보니 덧없이 시간의 공전만 일삼았던 것 같은 허무함도 느껴지는….

2005년 연말까지만 해도 못 버틸 것이라는 주변의 의견과 나의 체념을 넘어 지난 해 새해를 맞이했을 때는 덤 사리를 새로 하는 감격에 젖어 있었다.
삶의 덤이 그저 몇 달만 보태져도 고마워 할 그런 겸허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았던 지난 한 해였다.
고마움에 눈물져가며. 그러기에 투병도 부지런히 했던 한 해였다.
몇 달 만이라도, 간절했던 것이 어느새 한 해를 채워버린, 2006년은 나에게 여러모로 감회어린 바 크다.


◈ 기뻤던 일

① 말끔히 치유된 식도암

놀라운 결과였다. 식도암이 말끔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식도암 절제 권유를 받고도 절제하지 않고 그저 연명 수단으로 방사선 조사 35회와 화학요법으로 항암제 주사 5차만의 치료였는데 식도암이 말끔히 치유된 것이다.
더욱이 그토록 겁먹었던 식도 협착 증세조차 서서히 가라앉았으니 어찌 아니 기쁠 수 있겠는가.
협착 증세가 아직도 조금 꼬리를 남기고 있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다.

② 1년을 채운 투병기

투병을 하면서 있었던 일, 겪었던 일을 그대로 솔직하게 기록하려 했다.
그러나 쓰다보면 마음이 격할 때는 과장되기도 하고, 써두기엔 창피스러워 얼버무려 넘기기도 했다.
그렇게 지속된 투병기록이 이제 1년을 넘은 것이다.

삶이 몇 달 만이라도 연장되기를 희망했던 내 삶이 2006년, 1년을 채웠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아직도 버젓이 살고 있다.
환자로서 산다는 것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적어도 암과의 싸움에서는 아직도 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남들은 내 외모를 보고 암환자 같지 않다고 한다.


◈ 슬펐던 일

2005 9월 가슴에 방사선 조사용 기준선을 그리고

① 폐암 전이

발병 당시 있었던 목의 전이 림프절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가 없었다. 그 탓이었는지 CT진단에서 복병이 나타났다. 폐에 암으로 추정되는 작은 점들이 네 댓 군데 발견되었다고 했다.
외과적 수술을 회피한 치료를 택했으므로 늘 암의 전이를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폐암 발생 진단을 받으니 암 환자의 비애를 톡톡히 맛본 셈이다.
더욱이 원발 식도암이 기적같이 치유된 결과를 본 후의 일이니 그 좌절감은 한층 나를 슬프게 하였다.

② 소천 소식

부음이라는 슬픈 소식이 끊이지 않은 한 해였다. 경빈낭자님의 소천 소식에 비통함을 이겨내기 힘들었었는데 얼마 안 있어 난초향기님의 친정 아버님도 투병의 보람없이 소천되셨으니 마음이 여간 애달팠던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어서 또 홍연님의 부군, 계속해서 이어지는 소천 소식들….
살아남아 평소에 인연을 맺었던 분들의 소천 소식을 접한다는 것은 비통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임을 배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명복을 비는 일 뿐인가?


◈ 보람찬 일

식도암 자료 구축 2

투병기를 지속하면서 암싸사카페(cafe.daum.net/cancer94)에 식도암 환우 가족들과 함께 식도암 관련 정보 구축을 하느라 나름대로 힘을 쏟았다.
그 결과 미흡하나마 그래도 불모지 상태였던 식도암 관련 정보들이 어느 정도 쌓여지고 있다.
새로 생기는 식도암 환우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 난감한 일

뿡뿡이 대장

일 년 내내 하루 종일토록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방귀엔 정말 손들고 있다.
방귀가 잦은 원인은 세 끼 마시는 녹즙과 끼니마다 먹는 브로콜리, 청국장 때문인가 보다.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지하철,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선 남들의 눈치가 보여 난감하기 짝이 없다. 식이요법을 계속하는 한 언제까지나 뿡뿡이 대장인가 보다.

이 외에도 기록해 둘 일은 많은데 현기증 때문에 더 계속할 수가 없다.
언젠간 채우기로 하고 미완의 장으로 새해 새 출발을 다짐할 수밖에 없다.
고령의 환자란 어쩔 수 없나보다. 살아있기는 하되 나이로 인한 능력저하로 무엇 하나 여의치 못하고 온전하지 못하니 참으로 서운한 일이다.

뒤로월간암 200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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