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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하루를 마친 부부의 기도
고정혁기자2008년 04월 02일 21:51 분입력   총 874314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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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영 | 시인이며 수필가. 남편 백혈병 2년 투병중. 보스턴에 살고 Boston Korea신문에 칼럼연재. 저서 시집『하늘』, 수필집『나는 ‘춤꾼’이고 싶다』등.

오래전, 어느 허름한 골동품 물건들을 모아둔 어두컴컴한 앤틱 샾(Antique shop)을 들어갔었다. 가게 주인은 사람이 오가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다만, 자신도 골동품처럼 그렇게 예스러운 멋을 안고 그저 앉아 있었다. 오래된 물건들(골동품)을 구경하길 좋아하는 나는 한참을 그 컴컴한 곳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구경을 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나도 그만 그 곳에서 고풍스런 모습에 빠져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작은 숨소리만이 오가는 시간이 꽤 흘렀다. 문득 지나다 생각이 먼저였는지, 마음이 먼저였는지, 몸짓이 먼저였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발을 멈추었다. 그 자리는 바로 밀레의 「만종」의 그림 앞에서였다. 오랜 세월 이 골동품 가게를 지켜 온 것처럼 액자에는 세월의 먼지들이 쌓여있었다. 겸손히 두 손을 모으고 감사해하는 부부의 마음속으로 그렇게 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두 사람의 심장박동과 내 심장박동이 만나 움직이는 듯 그런 놀라운 순간의 시간을 만났었다. 그리고 나는 먼지 쌓인 그림을 나의 인연인양 그렇게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삶이 힘겹다고, 살아가는 일이 고달프다고 느껴질 때면 가끔 밀레의 「만종」을 만난다. 하루 종일 땀 흘리며 일터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부부가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드렸던 저 정성의 기도가, 저 간절한 마음의 기도가, 오늘의 내게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붉었던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저 멀리 보이는 종탑의 희미한 빛의 의미는 무엇일까? 가끔 내게 화두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그것은 어쩌면 잊어버리고 있는 우리의 신앙의 빛은 아닐까? 내 마음에서 낡아져 가는 신앙의 빛은 아닐까? 세상의 빛에 익숙해져버린 내 마음의 참 빛은 아닐까? 그렇게 내 마음의 깊은 생각을 만나게 해주는 귀한 그림이기도 하다. 그렇다. 모두가 하루의 삶으로 바쁘다. 누구를 위함이 아닌, 내 자신과 내 가족을 위한 바쁨인 것이다. 하루의 시간동안 일자리를 주시고, 생명을 주심이 감사한 날이다. 호흡할 수 있음이 그 무엇보다 감사한 일임을 알면서도 잠시 뒤돌아서면 잊어버린다.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아무런 느낌도 없이 지낼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다면 이제는 나만을 위한 감사가 아닌, 나 아닌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 감사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만나면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의 시작이면 좋겠다. 마음으로 다가가는 나눔의 시작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평선을 넘어가는 희미한 노을을 보면서,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종탑의 그림을 가슴으로, 마음으로 만나보는 날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가슴으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날이면 감사한 날이 아닐까? 우리의 마음속에서 울려 늘 감사의 마음을 일깨워 주는 감사의 종소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밀레는 매사에 감사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그리게 된 이유를 친구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옛날에 저녁 종 울리는 소리가 들리면 할머니는 한 번도 잊지 않고 일손을 멈추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곤 했다네.”

늘 감사의 기도를 드리던 할머니 곁에서 가슴으로 마음으로 느꼈을 밀레의 그 감사를 오늘 만나고 싶다.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난 밀레는 가난한 농부들이 힘든 농사일에 투정 부리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농부들이 매일 이른 아침 만났던 땅과 하늘에 대한 감사가 있었던 것이다. 밭을 일구며 살았던 농부들의 피땀 어린 땅과 비와 해를 내려주시는 하늘에 대한 감사가 있었던 것이다. 호흡하고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을 주신 하늘에 감사한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랑을 잃지 않고 아주 작은 소박한 꿈으로 욕심도 없이 하루에 감사해 하고, 또한 내일의 작은 소망의 마음으로 살았으리라. 힘든 농사일을 마친 부부의 마음에는 하루를 건강하게 지켜주신 감사가 있었을 것이리라. 그래서 더욱 평안한 마음으로 하룻밤의 쉼을 얻었을 것이다. 그럼, 오늘의 나는 어떤 감사로 하루를 맞을 것인가? 무엇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릴 것인가? 수없이 많은 감사를 곁에 두고도 불평으로 가득한 하루를 살고 있지는 않은가? 주신 많은 감사들을 아무런 느낌도 없이 당연함의 무뎌진 양심으로, 영혼으로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앤틱 샾에 오랜 시간 놓여있던 그림의 먼지들을 털었듯이 오늘은 나의 오래 쌓인 영혼의 먼지들을 털고 싶다. 맑은 마음이고 싶다. 하루를 감사해 하는 마음으로 세상의 욕심을 내려놓는 작은 소망의 꿈을 꾸고 싶다.
뒤로월간암 2007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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