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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이야기]삶이 기쁨과 감사로 바뀌고
고정혁기자2008년 04월 04일 15:01 분입력   총 878630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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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가명 28) | 2002년 초 갑상선암 2기 발병. 현재는 건강하게 생활 중.

2002년 2월 갑상선암 2기 판정
2002년 3월 수술
2002년9월 방사선치료 시작(8차 완료)


대학 졸업을 앞둔 나는 이 시대의 청년들이 그렇듯 취업을 놓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왔었다.
대학 4년을 졸업하고 마땅히 맘에 맞는 직장을 고르기는 너무 역부족이었다.
그렇다고 내 눈높이와 맞지 않는 곳으로 진로를 선택하기엔 마음이 즐겁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그런 갈등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다르게 목에 혹이 만져졌고 만지면 통증이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목은 보기 흉하게 나오기 시작했고 스카프로 목을 가리기엔 그 혹은 날마다 커져갔다. 참다못해 병원을 찾았다.
집 근처의 대학병원이었는데, 의사는 진료 후 보호자만 따로 불렀다. 그때까진 난 내 병이 심각하리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같이 병원에 같던 언니는 내가 암에 걸렸다는 얘길 듣고 그날 밤 혼자 눈이 붓도록 울었다고 했다.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했다.
주사위로 목의 혹이 있는 부분 조직을 검사하는 것인데 너무 아파서 눈물만 흘렸던 기억이 난다. 곧이어 수술을 했고 그제야 내가 암에 걸린 것이 실감이 났다.

그러나 갑상선암은 예후가 매우 좋고, 생존율도 높으며 관리만 잘하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고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병원 치료(수술 후 방사선 8차 완료)가 끝난 후 수없이 많은 식이요법을 다 시도해 보았다.
다른 암 환우들도 그렇듯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생즙부터 시작해서 현미채식은 참 좋은 방법이다.
당시엔 육식을 절제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참지 못하면 죽음이라는 생각으로 좋지 못한 식습관과는 단호하게 단절했다.

식욕을 참는다는 것은 대단한 인내를 필요로 했다.
식욕은 인간의 본능 중에 하나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본능을 억제해야 하는 상황이 갈망을 수십, 수백 배로 끓어오르게 하는지도 처음 알았다. 하지만, 난 절실했고 실천에 옮기기로 마음먹었고 실천했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먹는 방법이다. 적게 먹어야 한다. 그렇다, 소식하면서 천천히, 그것도 오래 씹어 먹어야 한다.
얼마나 쉽게 들리는 말인가?
하지만 습관으로 정착하기까진 긴 시간이 필요하다. 소식은 장수노인들의 비결이기도 하다.
우리는 식사할 때 우리의 치아개수만큼 씹어주어야 한다. 완치된 지금도 나는 식사할 땐 현미채식과 소식을 한다.

비록 투병과정뿐만 아니라 지금도 현미채식을 할 때면 신선한 채소와 가공되지 않은 현미는 내 장기와 몸을 가뿐하게 해준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가끔 단백질 보충을 위해서 신선한 해조류와 생선을 많이 먹어주었다. 암환자는 면역력이 관건이므로 병마와 싸워 이겨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단백질은 매우 중요한 공급원이다.

이뿐만 아니라 신선한 공기는 너무 중요하다. 산소는 혈액을 맑게 해 준다.
그래서 사는 곳도 과감히 시골로 옮겼다. 등산도 일주일에 한번은 꼭 다녔다. 처음엔 무리하지 않는 코스로 시작해서 점점 강도를 높였다.
등산은 운동도 되었지만 더 큰 것은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말이다.

건강서적도 많이 읽었다. 결국 투병은 본인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암환자는 학습자임과 동시에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좋은 결실을 맺는 것 같다.
나는 실제로 큰 암자에 머물면서 좋은 공기와 좋은 음식으로 내  몸에 최상의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한 적이 있다. 정말 안 해 본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병의 원인을 잘 분석해서 살아온 과정을 되짚어 보았다.
병의 원인은 복합적이고,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데 좋은 반성이 되었다.
길었던 방사선 치료과정은 처음에는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나중에는 병을 담담히 바라보게 되었다.
좀 더 강인해진 것이었다. 수없는 시행착오로 많이 지치고 좌절했지만, 나을 수 있다는 희망만은 버리지 않았다.

투병과정에서 또 하나 문제는 경제적 부담이었다.
몸에 좋다고 광고하는 건강식품은 대부분 고가이므로 경제적 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중에서도 입증이 되는 몇 가지만 선별했다.
그리고 한번 선택한 것은 믿고 꾸준히 복용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고가의 건강식품이 아니더라도 식습관 한 가지를 바꾸고, 마음 한번 긍정적으로 먹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처음엔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이 얼굴에 그늘을 주었다.
왜 나만 이런 병에 걸려야 되나, 억울하고 분하고 답답했다. 마음도 그런 상황에서 자꾸만 부정적이 되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상황을 보려고 노력했다. 투병 과정에서 여러 은인들도 만나게 되었고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젊을 때 건강을 잃었던 나는 조급해 했었는데 그런 마음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오히려 느긋하게 앞으로 남은 인생을 새로 계획하는 자세가 필요했다.
삶의 목적이 바뀌어 다시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말이다.

잊고 살았던 아니, 알지 못했던 나를 옭아매었던 성격, ‘왜 스스로를 편하게 하지 못했나?’ 하는 후회도 결국 내 탓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가난한 가정 형편으로 일과 학업에 더 욕심을 냈고 과욕이 결국 나를 쓰러트렸다.
나이 23세에 얻은 갑상선 암. 대학을 마치고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해야 했던 나에게는 인생 최대의 시련이었다.
계속되는 방사선 치료에 몸과 정신은 지칠 대로 지쳤었고, 이제는 그 원인이 결국 마음의 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젠 좀 더 자유로운 내가 되어 더욱 행복하고 건강해진 나를 만나보고 싶다.
이제 한 살, 새살이 돋았으니, 이 마음 잊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야겠다.

사랑이 부족했던 나.
모든 것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었음을 깨닫지 못했던 나.
나조차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 사랑해 줄줄 모르는 어리석은 나.

암에 걸리고 나서야 나를 사랑해야 이웃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마음공부에 너무 게을렀었다.
우리나라 학교의 교육이 그렇듯 지식만을 쌓기에 바빴고, 앞만 보고 달리기에 바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마음은 늘 편치 않았고, 여유란 찾아보기 힘들었다.
세상을 사는 데는 더 소중한 가치들이 많은데도 말이다. 그것도 깨닫지 못하고 지금껏 살아왔으니….

그리고, 내가 참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도 몰랐었다. 이제는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큰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이제는 나의 삶이 주님의 종이 되었으면 좋겠다. 좀 더 겸손한 자세로 어려운 이웃과 나누며, 신음하는 이웃에게 외면하지 않고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아~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이렇게 귀중한 것도 모르고 앞만 보며 살았겠지?
동전에는 양면이 있다. 어떤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이제는 좌절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뒤에 숨겨진 또 다른 깨달음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암 투병하면서 변한 나의 인격이 부족함을 채워주는 자양분이 될 거라 생각하고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살 것이다.
좀 더 인내하며 부족한 사랑을 완성케 하려는 하나님의 배려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난 지금 무얼 먹고 무얼 마실까 고민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도맡아 하시고 나의 길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참 잘한 것이 두 가지 있다.
암에 걸린 것과 내가 주님을 믿는 것. 언젠가는 모든 사람 앞에서 웃으며 말할 것이다.
난 암에 걸렸었고 그래서 난 변했다고. 그것도 내 삶이 기쁨과 감사로 180도 바뀌었다고 말이다.

뒤로월간암 2007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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