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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갖게 되는 기회
고동탄(bourree@kakao.com)기자2020년 02월 11일 14:50 분입력   총 5793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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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아이에게 잔소리를 많이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최선을 다해라”는 말입니다. 저도 어릴 적 이런 식의 교훈 섞인 잔소리를 선생님이나 어른들에게 자주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은 아무도 그런 잔소리를 하지 않아서 가끔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을 하곤 합니다. 최선이라는 말을 사전에 찾아보면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온 정성과 힘”, “여럿 가운데 가장 앞에 서 있음” 그리고 “가장 좋은 선택” 등 입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실현하는 것이 바로 최선을 다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가장 좋은 선택을 한 후에 갖고 있는 모든 열정을 쏟는다면 어느 순간 그 분야에서는 다른 사람보다는 앞서 있는 상태가 됩니다.

사전적인 의미를 떠나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끝까지 간다는 뜻도 있습니다. 간혹 마라톤 경기 중계를 보면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뛰는 선수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얼굴에는 괴로운 표정이 역력하고 근육에는 경련이 일어 걷기조차 힘들 텐데 모든 고통을 참으면서 뛰기를 계속합니다. 그리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결승점에 도착하면 그 경기에서 1등한 사람보다 더 큰 박수를 받습니다. 관중은 경기의 순위보다는 그 선수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어떤 한 가지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으며 힘든 고통을 참아 내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갖고 있는 커다란 힘과 의지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지난 올림픽에 있었던 장면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여자 5,000m 달리기 경주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중반 레이스가 지날 즈음 한 선수가 넘어져 땅바닥에 구르다 그만 다른 여자 선수의 발을 걸었습니다. 바로 뒤에 따라 오던 선수도 같이 땅바닥에 넘어지면서 두 선수는 모두 부상을 입은 채 바닥에 넘어졌습니다. 뒤따라오던 선수는 경쟁자였지만 한순간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넘어뜨린 선수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일어나야지. 끝까지 달리자!” 이런 귓속말을 하면서 자신을 넘어뜨린 선수를 일으켜 세웁니다. 부상이 심했던 선수들은 서로를 부축한 채로 끝까지 레이스를 달립니다. 관중석에서는 뜨거운 박수와 환호성이 터지고 비록 금메달은 아니지만 결승선을 통과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인간미가 더해지며 감동은 배가 됩니다. 관중석에 있던 사람들, 중계를 보던 시청자들은 모두 뭉클한 감동을 느꼈을 것입니다. 금메달과 같은 성과만이 목적이었다면 그들은 바로 경기를 포기했을 테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결과보다 더 소중한 무엇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경기 후 인터뷰를 통해서 트랙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인생을 재미없이 공허하게 살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달리기 선수가 넘어지는 순간 ‘이 경기는 틀렸어!’라고 미리 결론을 내고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면 그 선수들은 올림픽 게임의 재미를 별로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서로를 부축하면서 순위와 관계없이 트랙을 뛰었던 이유는 결과보다는 그 순간의 열정과 최선을 다하려는 스스로의 다짐을 실천했던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순간이라면 고통도 즐길 수 있는 마음이 됩니다. 긍정의 힘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요.

막무가내로 무조건 괜찮아, 좋아라고 외치기보다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명분을 밑바탕에 두고 있어야 진정으로 괜찮고, 좋아지는 것입니다. 고통도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노력으로 같은 결과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과정 속에서 즐기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면,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다면 즐거움은 더욱 커집니다.

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는 후회가 별로 없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서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후회가 생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제대로 노력하지 않은 것과 잘못된 선택에 대한 후회입니다. 모두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회스런 감정이 생깁니다. 위의 이야기에서 올림픽에 출전했던 두 선수가 끝까지 트랙을 달리지 않고 곧바로 경기를 포기했다면 그 선수들은 아마 미래에는 그 일을 두고두고 후회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 보여준 아름다운 인간적 면모와 최선을 다했다는 두 선수의 모습은 아주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깊이 자리 잡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한 모습에 후회스러운 마음이 함께할 자리를 없어 보입니다.

또 최선은 가장 좋은 선택입니다. 그러나 가끔 어떤 선택은 스스로를 괴롭힐 때도 있습니다. 결과를 만들어야 되는데 길을 잘 모르는 경우에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그리고 선택을 하지만 간혹 잘못된 선택을 해서 난감해지는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선택이라 해도 거기에 집중하여 조금이라도 성과가 생겼다면 그것처럼 값진 것은 없을 것입니다. 선택의 기로에 서있는데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는 것이 최선을 다한 잘못된 선택보다 더 나을까요. 무엇도 선택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자신이 갖고 있는 에너지가 소모되고 결국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섣부른 판단이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면 바로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암과 투병하는 것처럼 자신의 온힘을 쏟아서 최선을 다해야 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최선이 의미하는 여러 가지를 모두 합해서 집중해야 좋은 성과가 나옵니다. 특히 선택은 큰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암을 진단 받으면 치료를 위한 의료시스템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담당 의료진은 수술 가능 여부를 따져서 가능한 환자에게는 수술을 진행한 후에 항암치료를 권합니다. 수술이 불가능하다면 항암치료를 먼저 하고 수술을 나중에 하는 경우도 있으며 너무 늦게 발견되어 항암치료만 하다가 병원의 치료가 마무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료 시스템은 내가 갖고 있는 능력 중에서 선택의 문제만 해결하면 됩니다.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이 생겼다면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달리기 선수들이 넘어졌을 때처럼 미리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령 암에 걸린 이유를 따져 보다가 이 병은 유전이기 때문에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암이라는 병은 치료하는 병이기도 하지만 관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관리에 최선을 다할 때 좋은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 오며 그만큼 삶의 질도 올라갑니다. 건강에 있어서 남들보다는 더 앞에 서게 됩니다.

암과 투병하면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결국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며 그만큼 치료의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미리 결론을 내리지 않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들을 심사숙고하여 선택한 후 정성을 다해서 그 일을 합니다. 어차피 결과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며 그저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뒤로월간암 202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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