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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사람 냄새가 그립다
고정혁기자2008년 08월 25일 18:47 분입력   총 878235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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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사람 냄새가 그립다

 

 

 

 

글 | 신 영_시인이며 수필가. 남편 백혈병 2년 투병 중. 보스턴에 살고 Boston Korea신문에 칼럼연재. 저서 시집『하늘』, 수필집『나는 ‘춤꾼’이고 싶다』등.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작든, 크든 외로움에 시달리는 ‘우울증 환자’들인지도 모른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선택하지 않았지만 때로는 아픔이 슬픔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와 몸과 마음을 위협하며 생활마저 마비시키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 사람, 사람
      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웃음을 짓고 있다
      그들은 정말 웃고 있었을까

      사람, 사람, 사람
      쏟아 놓은 말들의 꾸러미들 속에서
      내 귀는 길을 잃었다
      마음을 담는
      소리 없는 말들이 그립다
      열어 담아 올 그 말이

      사람, 사람, 사람
      사람은 많은데 냄새가 없다
      쌀쌀한 새벽바람 마냥
      휑하니 시린 바람만 인다
      사람 냄새가 그립다
      속 사람의 냄새가
      깊은 영혼의 냄새가 그립다

      오늘은 사람 냄새가 더욱 그립다
      몹시도 그리운 냄새
      사람, 사람, 삶의 냄새
      깊은 영혼의 숲 속 냄새가...

      신 영의 시집 <하늘>

      '사람 냄새가 그립다' 중에서---

 

다만 표현하지 않고 혼자서 끙끙대며 앓다보면 스트레스는 쌓이고 또 쌓여 더운 여름 날 떠 있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누군가가 옆에만 다가서도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은 위험수위를 넘고 있는 것이다. 생활을 하다보면 그 스트레스는 ‘화’를 불러오기도 하는데, 그 ‘화’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곁에 있는 사람들, 남편이나, 아내, 자녀들, 부모님들에게 그리고 연인들에게 화살은 돌아가게 되어 있다.

사람마다의 성격 차이는 있겠지만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대며 삭이는 사람이 있다. 극복하는 일이나, 삭이는 일이 뭐가 다를까마는 ‘화의 에너지’를 바깥으로 향하고 풀어내는 이는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더 강한 입장이고, 그 ‘화의 에너지’를 안으로 끌어안고 있는 경우는 삭이는 입장일 것이다. 삭이며 달래는 일이 우선 일 경우도 있겠으나 풀어내지 않고 안으로만 쌓다보면 그 근본적인 해결이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삭였던 속상한 일들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다만 수그러들었을 뿐이다. 그 뿌리는 여전히 그 가슴속에 남아 있는 것이리라.

또 어떤 상황에서 비슷한 감정에 이르면 가라앉았던 그 감정들이 소용돌이 쳐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표출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 분노는 무서운 ‘화’로 변하고 그 ‘화’는 ‘분노의 화살’이 되어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표출되는 것이다. 가장 사랑 받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싹트게 되는 것이리라. 가장 가까이에서 사랑받아야 할 ‘대상’에게서 채워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불만족은 ‘사랑 결핍’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상대방(부모, 자식, 남편, 아내 그리고 연인이나 가족들, 친구들)에 대한 기대감의 상실이 시작되며 그 상실감이 외로움이나 소외감을 불러오기도 하는 것이다.

사랑받고 싶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을 때의 만족감은 어쩌면 아주 기본적인 욕구이며, 자신이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삶의 참 의미일지도 모른다. 이렇듯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은 또 하나의 마음 깊은 곳에 내재된 영혼의 부르짖음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 충족이 채워지지 않으면 불만족속에서 외로움은 싹트고 소외되는 느낌들이 점점 커지면 본인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우울함이 가슴에 가득 차게 되는 것이리라.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의 버림받았다는 느낌은 아픔이고 상처인 것이다. 그 마음이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이 흐르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우울이 시작되고 ‘병’이 되는 것이리라. 이 우울함에 시달리게 되면 나와 가까이에 있는 것들과 격리하고 싶어진다. 가족들과 나를, 더 나아가서는 세상과 나를 격리시키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혼자 있어서 외로운 줄 알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사람들 속에서의 외로움이 더욱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군중 속에서의 고독”을 느끼게 되면 사람들과의 만남이 부담스럽고 차츰차츰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의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보다 더욱 휑하고 황량한 느낌인 것이다. 특별히 사람들이 모이는 종교적인 모임이나 단체들의 모임에서의 실천 없는 ‘사랑이나 나눔’에 대해서는 더욱 더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어쩌면 스스로 실망해버리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풍요로움 속에서의 행복을 누리기보다는 ‘철저한 가난’이 엄습해 오는 것이다. 근본적인 ‘사랑의 빈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풍요 속에서의 빈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가지고 또 가져도 채워지지 않는 영혼 깊은 곳에서의 외로움인 것이다. 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랑 결핍’에 의한 한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세상과 더불어 살면서 때로는 견딜 수 없는 고독으로 방황하기도 하고 채워지지 않는 나의 존재감에 우울한 날을 보내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의 깊은 속에서의 근본적인 문제 풀이는 ‘사랑’밖에는 치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랑’을 주고받는 일만이 서로가 살 수 있는 길이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사람은 우리의 깊은 영혼 깊은 곳에서의 그리움이 늘 있기 마련이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자라는 나무’인 것이다. ‘사람 냄새’가 그리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사랑 냄새’를 나눠 가는 세상살이면 좋겠다.

“너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되는 세상”을 오늘도 꿈꾸어 보면서…

뒤로월간암 200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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