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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우체통] 따뜻한 말 한마디
고정혁기자2008년 09월 09일 14:14 분입력   총 874883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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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암(癌)』을 펴낸 지 어느덧 10개월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과 열정으로 통권 10호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암 투병으로 몸과 마음이 힘겨운데도 기꺼이 웃으며 사진 찍어주시고, 원고 보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원고자 분들과의 만남의 자리를 마련하리라, 마음먹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모두 건강하셔야 합니다. 그때까지만 건강하시라는 건 아닙니다. 그 후에도 건강하셔야 합니다.

이번 달부터 “편집실 우체통” 이라는 꼭지를 만들었습니다.

이 코너는 『월간 암(癌)』을 만들어가는, 의료인도 암환자도 아닌 ‘우리’의 렌즈에 담긴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첫 편지는 암환자를 돌보는 의사선생님께 드리는 부탁입니다.

 의·사·선·생·님·께·드·리·는·부·탁

무엇이든 첫 출발이 중요합니다. 잘못 길을 가다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지만 애당초 첫 걸음, 첫 마음이 잘 갈무리되어 있는 것보다야 못합니다. 멀쩡한 사람이 느닷없이 ‘암’ 환자가 되는 것만큼 황당하고 기막히고 충격적인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하늘이 노랗다, 빙빙 돈다, 멍하니 아무 생각 없다가 밤이 되어서야 실감이 난다 등등.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온갖 감정들이 아우성치다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짐작이야 한다, 공감을 한다지만 당해보지 않고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그 두려움의 크기와 깊이는 우주의 블랙홀과 같아서 모든 것을 일순간에 빨아들여 몸과 마음이 온통 암흑으로 물들고 맙니다.

암 완치율이 높다고 하지만, 아직 ‘암’은 ‘병’을 확인하는 것이 아닌 죽음의 ‘암 선고’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 무섭고도 두려운 죽음의 ‘블랙홀’을 앞두고 환자들의 ‘희망’이라는 동아줄을 쥔 사람이 바로 의사선생님입니다.

처음으로 암 확진을 하는 그 순간, 마지막 한 마디는 희망을 담아주세요.

환자나 보호자도 바보는 아니라 상황이 어찌되는지 조금만 지나면 다 찾아보고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의사가 가망이 없는 환자에게 허언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병이 깊어 예후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 완치를 시켜준다는 둥 거짓말을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곳도 있기는 합니다. 광고를 해서 환자를 모으고 완치라는 당근으로 비싼 치료비를 요구하는 합니다. 환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줍니다. 동아줄이라도 잡아보려는 절박한 손길에 썩은 동아줄을 내미는 이들입니다.

암이라는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몸무게가 14킬로 빠졌다는 어느 환자의 말이 기억납니다. 밥을 굶은 것도 아닌데, 심신의 충격이 너무 커서 몸이 그리 반응하는 것입니다. 다른 암환자들의 상황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동소이합니다.

“상황은 이러하지만, 이런 치료법이 있으니 함께 열심히 치료해 봅시다.”

“통계상으로 지금의 상태로는 80%가 6개월 미만이지만, 그렇다면 20% 안에 들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암을 확인하는 순간, 이런 말을 하면 환자에게 허언을 하는 것일까요?

희망은 통계와는 무관합니다. 0기에도 말기에도 희망은 통계를 뛰어넘어 내일을 꿈꾸게 만듭니다. 0기, 말기, 남겨진 시간의 길이는 다르나 내일, 이 하루만은 같습니다. 첫 블랙홀에서 빨리 빠져나와 마음을 추스르고 현실을 인정하고 앞날을 대비하기 위해 가장 큰 힘을 줄 수 있는 이가 바로 의사선생님입니다.

몸은 병들었음을 알게 되면서 마음에 병이 드는 것이 암입니다. 따뜻한 격려의 한 마디는 일시에 몸의 병을 고쳐내지는 못해도 마음에 심하게 드는 멍을 어루만져 줄 수 있습니다. 마음은 마음으로 고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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