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에세이[에세이]수의(壽衣) 한 벌 - 신영고정혁기자2008년 11월 12일 19:04 분입력 총 878121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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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영_시인이며 수필가. 남편 백혈병 2년 투병 중. 보스턴에 살고 Boston Korea신문에 칼럼연재. 저서 시집『하늘』, 수필집『나는 ‘춤꾼’이고 싶다』등.
“참으로 질긴 것이 목숨이라고…”했다던가. “죽어야지, 죽어야지! 이렇게 살아서 뭘 하누!” 이렇게 넋두리처럼 내뱉으시는 노인들의 이 말은 어쩌면 마음을 그대로 내어놓는 진실일 게다. 누가 처음부터 늙음을 기억이나 했을까. 철없이 뛰어 놀던 때가 그들도 분명 있었으리라. 지난 시간을 잡고 기억의 저편으로 가 보면 그네들도 그랬으리라. 동무들과 어깨동무하며 부모님의 사랑에 겨워하던 때가 말이다. 늙는다는 것은 때론 두려움이고 슬픔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무리, 아니라고, 아니라고 발버둥을 쳐도 늙어가는 일에야 어찌할까. 다만 자연의 순리대로, 신(神)의 섭리대로 순종할 뿐인 것을 그래서, 억울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을 삶일진대 왜 이리도 늘 서글픔이 앞서는 것일까.
어머니가 되는 일은 세상의 여자들에게 커다란 기쁨이기도 하지만, 그 기쁨 이전에 겪어야 할 크나큰 고통일지도 모른다. 마음에서 겪는 일들을 수없이 많은 양의 무게로 누르고 그 어려운 강을 넘게 한 후에야 어머니라는 자리에 앉게 하는 것이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랬었다. 처음 첫 아이를 가지면서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이 일렁거렸다. “정말, 내가 엄마가 되는 거란 말이지!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그렇게 기쁨과 행복 그리고 새로운 곳으로의 여정이 두렵기만 했다. 마음의 무게는 몇 날 밤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게 했었다. 아마도, 내 어머니도 자식들을 키우며 그렇게 했을 일일게다. 내 어머니도 딸이었을 테고, 그의 어머니도 또 딸이었을 게다. 그렇게 여자가 딸도 되고 어미도 되고 할미가 되는 것일 게다. 여자의 길 중에 걸으며 그렇게들 옷을 갈아입는 일일 것이다.
그리운 가슴으로 살았다. 내 어머니와의 인연은 어찌 그리도 짧았을까. 어릴 적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자랐다. 그리고 청소년기를 맞으며 부모님과 떨어져 도시에서 살았다. 그리고 20여 년 전, 더 머나먼 이국땅으로 또 떠나왔었다. 그녀가 43세가 되던 해에 늦은 막내딸을 얻은 것이다. 정말 그랬었다. 어릴 적 기억에 그 여인은 늘 희생하는 여자였다. 남편인 아버지께도 네 딸들에게도 언제나 주기만 하는 사람이었다. 당신 것은 언제나 비어놓고,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늘 준비하고 담고 기다리는 여인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가끔은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여인의 삶의 모습이 남아 가끔씩 스쳐 지나칠 때면 울컥 속모를 화들이 꿈틀거리는 것이다. 아마도 오래 전 우리네 ‘어머니의 삶’이 그랬을 것이다. 많은 대가족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것조차 모르고 살았을 여인네들의 삶이 참으로 가슴 깊이 남아 흐른다. 어쩌면 그 ‘희생’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게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최선의 선물이었을 게다.
떨어져 살기에 더욱 그립고 안타까웠는지도 모른다. 주지 못해서 안타까운 모녀의 사랑일 게다. 늙은 어미라서 미안하다고 늘 막내딸을 만나면 더 주고 싶어 하시고 안타까워하시던 내 어머니였다. 그 어미의 깊은 사랑을 알지도 못하고 그저, 막내라는 이유 하나로 욕심을 채우며 살았다. 지금도 그 버릇이 가끔 남아서 남편에게 또 욕심을 부리는 아내이고 만다. 줄 주는 모르고 받기만을 좋아하는 철없는 아내이고 세 아이들의 엄마인 모습에 더욱 내 어머니가 그리운 오월을 맞았다. 문득, 어머니가 그리워 며칠을 울었다. 부르면 금방 달려오실 것만 같은 그리운 그 이름 ‘어머니’를 부르고 또 부르고 있었다. 너무도 그리워서 견딜 수 없을 만큼 목이 메이는 보고픔으로….
우리들 곁을 떠나신 지 언 8년을 맞으니 잊을 때도 된 것 같은데, 해마다 오월이면 더욱 짙은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늘 떨어져 살기에 부모님을 그리워는 하지만 그 무엇 하나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했었다. 늘 곁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돌보는 자식은 따로 있나 보다. 주말이면 시간을 내어 막내 언니와 형부가 그 일을 도맡아 했었다. 어머니가 79세가 되던 해에 우리들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느 가을 날, 막내 언니로부터 다급한 전화 목소리를 들었다.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얘기를 울먹이면서 막내 동생에게 전하고 있었다. 급하게 비행기 티켓을 찾았지만, 쉬이 자리가 나질 않았다. 남편이 고맙게도 비지니스 클래스 자리를 찾아 마련해 준 그 ‘비행기 표’는 영영 잊지 못할 고마움으로 남았다. 막내며느리가 안쓰러우셨는지 시어머님의 말씀이 “얘, 엄마는 그렇게 끝까지 딸을 위해 좋은 자리를 준비해 주신단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준비를 하던 중, 한국에서의 전화를 받았다. 이미 이별을 하셨다고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오라고 말이다. 너무도 슬픔이어서일까. 울음이 나오질 않았다. 그렇게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은 슬픔이 슬픔인지도 모르고 달려가고 있었다. 도착하니 모두가 정신이 없었다. 가까스로 장례식에 참석할 날짜에 도착을 하였다. 하얀 옷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다. 잠을 곤히 청하고 있는 말간 여인이 아름다웠다. 좁은 어깨에 작은 몸집 금방이라도 날개를 달고 날아가고 말 것 같은 맑은 모습에 걸쳐진 수의(壽衣)는 날개옷 같았다. 그 날도 그렇게 슬픈지 몰랐다. “엄마, 엄마! 하고 부르며 마음 한편에 흐르는 아름다운 슬픔은….”
나중에야 그 슬픔이 엄청난 슬픔인 줄을 알았던 것이다. 며칠이 지나서야 어머니의 장롱의 서랍들을 차근차근 챙겨보기 시작했다. 언제적 속옷들인지 모를 비닐에 담긴 새 옷들이 서랍에 켜켜이 담겨져 있지 않은가. 누군가 선물했을 물건들이 주인이 찾아주길 기다리다 지쳐 구석에 놓여 있는 것이었다. 참 슬픔이었다. 저토록 아끼고, 또 아끼며 살았던 한 여인의 삶이 내 가슴을 치고 또 치고 있었다. 무엇에 쓰려고, 저렇게 아껴서 어디에다 쓰려고 그랬을까. 정말 화가 치밀었다. “나는 저렇게 살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마음에 다짐을 하면서 언니들과 옷 정리를 하였다. 그 쌓아둔 옷들은 그대로 입지도 못하고 정작 입고 갈 옷은 따로 있었던 모양인 게다.
곱게 입고 떠날 수의(壽衣) 한 벌에 족했던 그 여인의 삶이 더욱이 아름다웠던 이유일 게다. 세상의 것에 연연해하지 않았던 늘 희생의 자리에서 묵묵히 있었던 한 여인의 삶은 그토록 아름다웠다. “어차피 인생은 준 것이 남는 것임을 일깨워 주었다.” 곱게 차려 입은 수의(壽衣) 한 벌에 행복해 하는 그 여인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떠남은 또 다른 만남의 약속일 게다.뒤로월간암 200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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