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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을 거머쥔 살충제 DDT
고정혁기자2008년 11월 13일 01:00 분입력   총 884329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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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섬은 세계에서 세 번째 큰 섬이다. 아열대 기후로 고온다습해서 모기가 들끓는다. 모기는 말라리아를 옮긴다. 여기 한 마을에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를 퇴치하기 위해 이 살충제를 대량으로 뿌렸다. 효과는 탁월하여 모기는 눈에 띄게 감소하였고 사람들은 말라리아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을 기뻐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큰 문제를 자꾸 불러일으키며….
맨 처음 도마뱀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하지만, 어떠랴. 도마뱀이 천천히 움직인다고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 것을. 그 다음은 고양이가 곳곳에서 죽어갔다. 하지만 이 또한 어떠랴. 고양이가 죽는다고 사람이 피해를 입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다, 어느새 온 마을에 쥐가 들끓기 시작했다. 쥐는 페스트나 발진티푸스같은 무서운 전염병을 옮기는 매체이다. 이뿐이 아니었다. 집의 나무기둥이 벌레에게 쏠려 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집의 나무기둥을 파먹는 벌레는 나방유충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였을까?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살펴보면 전혀 관계없는 도마뱀, 고양이, 나방, 쥐와의 연관성이 모두 보인다. 살충제로 인한 모기박멸로 시작된 먹이사슬의 파괴의 연결고리이다.
먼저, 살충제로 모기가 죽었다. 모기는 많이 죽었지만 바퀴벌레는 살아남았다. 당연하다. 3억 5천만년동안 지구에 군림하면서 최초의 식물이 싹을 틔우는 모습을 보고, 공룡이 생겨나고 사멸하는 모습도 지켜본 엄청난 생존력을 갖춘 곤충의 조상 뻘이 된다. 대신, 살아남은 바퀴벌레는 몸에 살충제를 축적하게 되고 이 바퀴벌레를 도마뱀이 잡아먹는다. 대신, 바퀴벌레가 갖고 있던 살충제는 고스란히 도마뱀에게 전해진다. 이 살충제는 몸속에서 지방에 용해되어 축적되어버려 배설작용으로는 잘 배출되지 않아 먹는 만큼 계속해서 쌓이게 된다.
그러니,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살충제는 양이 많아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드디어 도마뱀에서 반응이 나타나는데 신경계통이 손상되어 움직임이 둔해진다. 적이 나타나면 재빨리 도망쳐야하는데 그렇지를 못하니 천적인 고양이에게 많이 잡아먹힌다. 고양이는 살충제를 많이 갖고 있는 도마뱀을 주로 먹게 된다. 잡기가 쉬우니까. 그리고, 농축된 살충제가 쌓여 고양이가 전멸하다시피 죽어갔다.
쥐의 천적인 고양이가 죽으니 쥐들이 번성하는 건 당연하다. 쥐가 들끓으면 쥐를 매개로 하는 질병이 퍼지기 시작한다. 쥐의 이가 옮기는 발진티푸스가 기뻐하던 말라리아의 자리를 대신했다.
그렇다면 나방은? 나방을 누가 먹는지를 알면 된다. 바로 도마뱀이다. 몸이 느려서 움직이지 못하는 도마뱀이 나방을 잡아먹지 못하게 되자 나방이 번성하게 되어 나방유충들이 들끓은 것이다. 급기야 나방유충은 집의 나무기둥을 갉아먹어 집을 무너지게까지 했다.

결국, 1955년에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영국 공군의 도움으로 낙하산에 고양이를 매달아 보르네오섬에 떨어뜨립니다. 일명 ‘고양이공수작전’!!! 쥐를 잡을 고양이가 전멸되어 빠진 연결고리를 채워넣은 것이다.
먹이사슬을 무너뜨리고 개체를 옮길 때마다 그대로 농축되어 무서운 결과를 낳는 이 무시무시한 살충제의 이름은 무엇일까?

바로 DDT이다.

‘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이라는 읽기 힘든 합성된 물질은 약자로 DDT라는 살충제로 알려져 있다. 1874년 독일 화학자에 의해 처음으로 합성되고 이후 1939에 이르러서야 살충제로서의 효능이 발견되었다.
너무도 광범위하게 사용된 DDT는 전쟁 중 수천만 명의 군인과 피난민, 포로들의 몸에서 이를 박멸하는 것을 시작되었는데 당시 바로 어떤 유해한 증상도 나타나지 않아 무해하다고 믿었다. 1차대전에서 발진티푸스를 옮기는 이로 5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잃었는데 2차대전에는 DDT를 듬뿍 뿌림으로 발진티푸스의 창궐을 막았다. 겨울철 총알보다 더 무섭게 생명을 앗아간 발진티푸스가 발발 도중에 바로 멈춰버린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였다.
노벨상 수상의 영예까지 받았는데 이는 원래 목적인 해충구제보다 전쟁과 그 이후 무수한 사람의 목숨을 구한 공로였다.
문제는 DDT개발자인 폴 뭘러조차 DDT가 곤충을 죽이는 메커니즘을 완전히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험실에서 최초로 만들어졌고, 최대의 찬사를 받았지만 최악의 해악을 남기고 결국 금지된 DDT!!!

***DDT에게 쏟아진 찬사

▶DDT를 개발한 폴 뮐러는 공공의 건강에 기여했다하여 1948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말라리아, 발진티푸스, 이질 등 질병퇴치에 사용되어 5백만 명 이상의 생명을 구했다고 추정했다.
▶살충제로 해충박멸에 사용되어 농작물 생산량을 30% 내지 50%까지 증산시켰다고 발표했다.
▶DDT를 소량 함유한 술까지 등장했다. 취기를 돋운다고 알려졌다.
▶DDT라이스(쌀), BHC햄버거(벤젠헥사클로디드) 등 먹거리에다 살충제인 DDT의 이름을 붙였다.
당시 DDT에 쏟아진 찬사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천천히 나타났던 DDT의 해악

▶해충이 순간 사라지나 해충과 함께 천적까지 박멸한다.
▶저항력을 키워 오히려 해충이 증가한다.
DDT이전 12종에 불과하던 해충이 DDT이후 1960년대 저항력을 갖추고 65종으로 오히려 늘어났다.
현재 말라리아원충은 DDT마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내성을 띄고 있다.
▶일단 들어오면 분해되지도, 배설되지도 않고 대부분 지방조직에 축적되어 간다.
먹이사슬을 따라 올라가면서 점점 축적된다. 위쪽 먹이사슬일수록 오염 정도가 심각하다.
▶매우 안정적이라 분해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동물의 반감기는 8년, 자연계는 15년 이상이 걸린다.
▶물고기 대량폐사하고, 일부 새들 멸종위기 등 생태계 파괴되었다.
▶사람에게는 신경계손상, 간암, 뇌종양, 뇌출혈, 고혈압 등 유발한다.
▶더 강한 살충제 개발을 부추겼다.
그 후 독일에서 개발된 디엘그린은 독성이 DDT의 5~40배에 이른다.

*이후 DDT는…
1972년 미국에서 사용 금지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1976년 DDT생산 금지, 1979년 사용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말라리아 퇴치 등을 목적으로 아직까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중국에서 살충제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DDT의 손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30년 후 지금도 남아있는 DDT

▶수입되는 중국산 식품 속에서 계속 검출된다.(중국에서는 DDT를 아직도 농약으로 사용한다.)
▶DDT에 노출된 2세대의 여성들의 임신율이 크게 떨어진다.(자녀들에게까지 영향)
▶알프스 고원지대, 아프리카, 에스키모 등 DDT가 전혀 쓰이지 않고 청정지역인 곳에서 높은 농도의 DDT검출된다. 먹이사슬, 공기, 비, 눈 등의 순환과정의 결과이다.
▶낙동강의 어류와 조개류에서 75년 이후 금지된 DDT가 지금도 검출되고 있다.

“자연의 사슬 가운데 열 번째 고리를 끊든, 첫 번째 고리를 끊든, 곧 자연의 사슬은 파괴되고 만다”고 한 알렉산더 포프의 말처럼 인간 역시 그 사슬을 벗어나 생존하고 있지 않다. 인간은 결코 자연의 지배자가 아닌 자연의 피조물이다.
이러한 해로운 결과, 어느 것도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며,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찾아온 것이었다. 정부과 기업, 그리고 일반 대중에까지 이런 위험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DDT의 해악을 맨 처음 알리고 “환경문제와 생태계 보호”라는 문제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 사람은 바로 『침묵의 봄』을 쓴 레이첼 카슨이다. 출간 된 후 2년도 채 안 돼 죽었지만 그녀는 20세기를 빛낸 100인 중 한명으로 선정되었고, 그녀의 투쟁대상이던 DDT를 20세기 최악의 아이디어 100가지 중 한 가지로 선정하도록 했다. 환경보호국이 신설되고 유해 살충제의 사용을 금지시키는 등의 운동을 이루어 냈다. 전세계적인 환경운동을 탄생하게 한 놀라운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침묵의 봄』이 외치던 위험들은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다.

뒤로월간암 200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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