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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플라스틱, 비스페놀A
고정혁기자2008년 12월 01일 19:12 분입력   총 885040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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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페놀 A는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카보네이트와 에폭시수지의 원재료입니다. 그리고 비스페놀 A는 내분비 교란작용이 의심되는 유기화학물질입니다.”
라고 설명을 하게 되면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비스페놀 A라는 것이 환경호르몬인가보다 하는 정도이다. 앞으로 등장하는, 그리고 새롭게 추가되는 환경호르몬의 대부분이 이렇게 낯설고 어려워 입에 붙지 않는 화학물들이다.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놀라운 ‘화학혁명’을 이루면서 등장한 엄청난 화학물질은 우리의 주변 어디에나 존재한다. 지금까지 140여종이 넘는 화학물질이 환경호르몬으로 밝혀졌고, 그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이를 파악하고 실생활에서 차단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화학물은 제품명이 아니라 제품을 만드는 원료로 쓰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금 키보드를 두들기는 옆에 생수병이 있다. 이 생수병을 아무리 꼼꼼히 본다한들 이 플라스틱 병이 비스페놀이 원료로 된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들었는지 알 길이 없다. 고작 ‘용기재질:PET’라는 글귀로 ‘오, 이건 페트병이로군’ 하는 정도가알 수 있는 전부이다. 또, 쓰고 있는 컴퓨터의 어디에선가도 쓰이겠지만 구체적으로 알 길이 없다.
이것이 환경호르몬의 해악에 대해서는 민감하지만 실생활 속에서 환경호르몬을 의식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아닐까? 어디에나 쓰이지만, 어디에 쓰였는지 알 수 없는 물질들이다.

일단 비스페놀 A가 원료가 되는 폴리카보네이트가 우리의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를 알아보자.
이 폴리카보네이트는 다른 화합물과 마찬가지로 매우 안정적이다. 이 ‘안정적’이라는 말은 ‘만들고, 사용하고,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속성으로 제품을 만들어내기에는 아주 매력이 있는 요소이다. 하지만 환경의 관점에서 본다면 안정적이란 것은 ‘견고해서 자연 상태에서는 분해가 거의 잘 안 된다’는 무서운 말이 된다.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21세기 최상의 신소재-폴리카보네이트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들어지는 것들은 주변에 너무나도 많다. 열에 강하고 파손되지 않는 ‘유리’로서 온갖 제품들에 사용되고 있다. 물병, 생수통, 젖병, 식기, 컵, CD, 신호등, 헬멧, 방음벽, 공준전화 부스, 실내체육관, 온실, 식물원, 유리대용시설 등.
환상의 신소재로 각광받는 폴리카보네이트로 인해 비스페놀 A가 환경호르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미국의 스탠포드대학 의학부의 연구 그룹에서 유방암 세포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정체불명의 물질이 그 세포에 난포호르몬처럼 작용하여 증식시키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무엇인가를 조사한 결과 폴리카보네이트제의 시험관에서 미량 녹아 나오고 있는 비스페놀 A라는 것을 알게 된다. 비스페놀 A는 불과 2~5ppb로 유방암 세포를 증식시켰던 것이다.(ppb(part per billion)는 농도의 단위로 1ppb는 10억분의 일을 나타낸다.) 그러나 조직 실험이 아니라 실제로 인체에 들어간 비스페놀 A가 암 조직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 FDA(식품의약품 안전국)가 승인한 폴리카보네이트가 아기 젖병의 소재로서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질 중 최고의 소재로 꼽혀 왔다는 걸 알아야 한다. 적어도, 비스페놀 A가 환경호르몬으로 밝혀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금은 폴리카보네이트를 사용하지 않은 안전한 젖병이 나오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95%정도는 폴리카보네이트가 사용된다고 한다.

▶경이로운 접착제-에폭시 수지
에폭시 수지도 폴리카보네이트만큼이나 낯선 용어이다. 하지만, 실제 우리주위에 아주 많다. 에폭시 수지 역시 가공되어 쓰이는 원료인데 기계적, 화학적 물성이 아주 뛰어나 토목, 건축, 전기, 점착, 도료, 보호도장, 통조림 드럼관의 코팅 등 많은 분야에 쓰이고 있다.

가장 쉽게 쓰이는 제품이 접착제인데 에폭시 수지는 금속, 목재, 시멘트, 플라스틱 등 거의 모든 것에 접착시킬 수가 있다. 예를 들면 금속과 시멘트처럼 전혀 다른 두 물질의 접착도 에폭시 수지로 한다. 온돌마루나 합판마루 등을 시공할 때 그 아랫부분에 붙이는 것도 대부분 에폭시 수지를 원료로 한 접착제이다.
또, 도료(페인트)분야에도 많이 쓰인다. 공장이나 공공장소 바닥에 녹색이나 하늘색 등의 페인트로 약간 폭신하게 도장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그 도료가 바로 에폭시 도료이다.

우리가 에폭시 수지를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뜻밖에도 바로 팬시점이다. 에폭시 수지로 만든 스티커, 핸드폰 액세사리, 열쇠고리, 부착하는 안내판(초보운전, 미세요, 당기세요, 같은 글씨 새겨져있는 것) 등등. 이것들도 모두 에폭시 수지로 만들어진다. 폭신한 플라스틱 같은 것이다.
많이 문제가 되어 제기된 부분이 바로 캔 음료인데 음료 캔의 이음부에 사용하는 코팅제로 에폭시수지를 쓰는데 겨울에 따뜻한 캔음료를 먹기 위해 데우게 되면 에폭시 수지로부터 비스페놀 A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캔 뿐 아니라 병뚜껑 안쪽에 코팅으로도 씌인다.

1996년 한 해 동안 생산된 비스페놀 A의 양은 16억 파운드에 이른다. 비스페놀 A는 DES와 분자 구조가 가장 비슷한 물질이다. 다우 케미컬 사는 비스페놀 A로 1년에 10억 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발표했다.

▶환경호르몬으로서의 비스페놀 A

복잡한 화학식은 몰라도 이제 비스페놀 A라는 것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를 인식하는 데는 충분할 것이다. 이렇게 많이 쓰이다가 버려지고 폐기되는 비스페놀 A가 실제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알려진 바가 없는 형편이다. 인체에 대해서도 비스페놀 A가 호르몬을 교란시켜 여성호르몬처럼(에스트로겐) 비슷하게 작용을 한다는 정도이다.

미국에서는 음료수 캔에 들어있는 비스페놀 A가 남성의 정자수 감소의 주범이라는 연구결과도 나왔고, 미국의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대학에서 비스페놀 A로 동물의 유방과 생식기를 손상시키고 생식세포까지 비정상적으로 분열시킨다는 동물실험의 연구결과가 발표(2003년)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깨끗하다고 알려진 섬진강 하구에서도 비스페놀 A가 검출되었으며, 통조림 차 커피음료와 같이 높은 온도로 레토르팅하는 제품, 유아용 젖병, 생수병 등에서도 검출되었다.
인체에 대한 비스페놀 A의 영향, 그리고 태아에게 미치는 범위, 동물계, 생태계 전반에 걸친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상세하기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내분비 교란작용을 나타낼 가능성이 있는 물질”로 분류되어 있을 뿐이다.

안전이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국제사회에서도 비스페놀 A에 해악이 발표되고 있는 만큼 가급적이면 특히, 아이가 접촉가능성이 있거나 입을 통해 섭취할 가능성이 높은 젖병, 분유 캔, 장난감, 식기 등은 확인해서 안전한 대체품으로 사용하는 것이 현명하리라 생각된다.
아무런 문제없이 사용되어 오던 물질들이 수십 년이나 지난 지금 이렇게나마 밝혀지는 걸 생각한다면 매년 쏟아져 나오는 수천종의 새로운 물질들의 안전성 평가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어쩌면 우리아이들이 화학실험 대상자일까? 아니면 지나친 기우인가?

뒤로월간암 200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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