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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와 삶의질 (QOL)
고정혁기자2008년 12월 12일 20:12 분입력   총 884067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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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사망률 부동의 1위는 암(癌)이 된지 오래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암환자들은 더욱 증가할 겁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암환자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암이라는 병 때문에 힘들지만 더욱 지치게 만드는 것은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이제는 낡은 시스템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켜서 암환자의 삶이 윤택하고, 암환자가 중심이 되는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할 시기입니다.
삶의 질이라는 것은 단순히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어떻게 살았는가, 이별을 하는 과정이 어떠한 모습인가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시스템은 암환자로서의 삶이 환자 본인의 의지보다는 외부의 요소에 의해서 결정되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최초 병원에서 암을 진단받으면 담당의사는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치료 스케줄을 만듭니다. 수술이 가능하면 수술을 하고, 암세포가 많이 퍼져 있으면 항암제를 투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방사선요법으로 암을 괴사시키는 시술 등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과정에 대해서 환자나 보호자와 충분한 상의를 거쳐서 모든 부작용이나 예후 등을 설명하고 시행을 하는 것인지, 수술이나 항암제 부작용의 우려가 크다면 다른 방도를 검토하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암 진단을 받은 후 치료 단계에서 암환자는 단 한가지의 정해진 코스로 가게 됩니다. 수술이 가능하면 수술을 받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항암이나 방사선을 하는 것입니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의 전부인 셈입니다.
그러나 암환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방법이 오직 그뿐일까요?
미국이나 유럽 등의 경우에는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치료방법이 다양합니다. 의료진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각각의 치료방법에 대해서 장점과, 단점을 충분히 설명한 후에 환자와 보호자로 하여금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의료진은 길잡이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 같은 나라는 암 진단 후 현대의학적 치료를 받는 환자의 비율이 50%정도이고 나머지 50%정도는 다른 치료 방법을 선택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대체의학의 정보가 심하게 왜곡되어 있습니다. 건강보조식품 한 가지, 또는 여러 세트를 수십, 수백만원어치를 복용하면서 판매하는 쪽이나 구입하는 사람들도 그것이 대체의학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진짜 효과있는 제품이나 암환자에게 유용한 영양제 등이 돌팔이로 매도되고 있습니다. 현명한 환자나 보호자라면 옥석을 가리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합니다. 길잡이가 없어서 흔들리는 모습입니다. 바람직한 의료진의 모습은 좋은 길잡이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 기회에 암환자에게 있어서 삶의 질과 연관된 몇 가지 사항을 짚어보고 그 대안을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의료계에서 말기암 환자에게 시행하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입니다.
말기암환자의 절반가량은 병원 의료에 의존합니다. 나머지 절반 정도는 각 가정에서 대체요법에 매달리거나 아예 방치된 상태로 지내게 됩니다. 말기암환자가 일반병동에서 항암주사와 모르핀으로 통증을 달래가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암환자의 삶의 질을 현격히 떨어뜨리게 됩니다. 비용 또한 만만치 않게 소비됩니다.
2005년 조사한 자료를 보면 암 진단을 받고 임종하기 전 2달 동안 사용한 의료비가 전체 의료비에 50%에 육박할 정도로 암 투병의 마지막 시기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마지막 임종하기 몇 분 전까지 간호사가 와서 주사를 놓고 피를 뽑아 가는 광경을 목격한 보호자들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을 찾아 볼 수 없었다라고 토로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환자에게도 고통이지만, 남은 유가족들에게는 일생동안 잊히지 않을 상처로 남습니다. 의료진 또한 그러한 환자와 보호자의 심정을 헤아려야 할 것입니다. 이제 의료계에서도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증상의 치료보다는 완화를 목적으로 하는 완화의료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때입니다.
이러한 완화의료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보호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회생 가능성과 연명 가능성을 구별하지 않고 환자 본인에게 쉬쉬하며 숨이 붙어있는 순간까지 의료적인 처치를 하는 것을 자식 된 도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속에 불효했다는 죄책감이 남아서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인명은 재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흐르고 마지막 임종을 맞게 되면 뼈아픈 후회만이 남을뿐더러 임종에 대한 아무런 대비가 없었기 때문에 사후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합니다. 현명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회생가능성이 희박하다면 자연스럽고 존엄한 임종을 맞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합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환자의 고통을 가중시킵니다. 말기암 환자들은 병이 악화되면 주사와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중환자실로 갑니다. 또한 심장이 멎으면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의료행위는 환자에게 많은 고통을 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됩니다. 비용은 비용대로 지출하고 암환자의 삶의 질과 품위있는 임종은 찾아 볼 수 없는 시스템입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미국과 대만은 말기 암환자가 원치 않을 경우 심폐소생술을 못하도록 법으로 막고 있습니다. 품위있게 임종할 수 있는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는 존엄사법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문화적 정서가 그러한 법을 받아들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탓인지 국회에서 논의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출산 예정일에 옷이나, 기저귀, 젖병, 장난감 등 많은 준비를 하고 나서 출산을 합니다. 임종도 출산 못지않게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재산의 정리에서부터 살아온 시간에 대한 정리 등. 이러한 준비를 한 후에 맞는 임종은 참으로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암이라는 병이 갑작스런 사고처럼 순식간에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단 후 회생가능성과 연명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으며 아무리 말기암을 진단받았다 하더라도 최소 2개월 이상의 시간은 주어지게 됩니다. 남은 2개월의 시간동안 통증관리를 최우선으로 하되, 환자와 가족이 함께

두 번째, 암이라는 병증만 바라보는 환경입니다.
어떤 30대 여성 분이 젊은 나이에 유방암이 걸렸습니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이 되어 수술을 통해 한 쪽 유방을 절제하였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다시 자궁에 암이 발견되었습니다. 또 자궁을 절제하는 수술을 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자궁을 절제하고 항암주사를 맞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위에 또 다른 암이 발견되었습니다. 또 위를 절제하는 수술을 했습니다. 3번의 발병과 3번의 수술을 했습니다. 그 분은 나이가 30대지만 많이 야위었고 허리까지 굽었습니다. 끊임없는 재발과 전이, 뒤따른 수술과 화학요법, 방사선치료의 되풀이입니다. 끝없이 투지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환자가 몸이 지치고 마음이 지쳐 생에 대한 의욕, 즐거움이 상실되어 갑니다.
또한 화학요법의 무분별한 남용입니다. 항암제를 사용하여 암세포를 없애는 치료방법을 화학요법이라 합니다. 현재 많은 신약들이 개발되어 있고 늘 새로운 신약과 새로운 치료기구가 등장하지만 암 치료율은 그다지 개선되었다고 보기 힘든 실정입니다. 또한 치료제는 이미 생긴 암을 부수는 역할만 할 뿐 재발이나 전이에 대한 보장은 어렵습니다. 항암제는 암세포뿐만 아니라 면역세포도 공격합니다. 따라서 항암제 투여 후 효과를 본다하더라도 그 뒤의 면역력을 키우거나 암이 다시금 재발하지 않도록 몸 안팎의 제반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부작용입니다. 머리가 빠지고, 구토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못해서 몸무게가 주는 등 항암제로 인한 부작용은 다양하고, 처참합니다. 문제는 암의 크기가 줄어들지 않으면 그러한 항암제를 바꿔가면서 종류별로 투약을 한다는 것입니다. 쉬는 시간을 줘가면서 투약을 받으면 큰 무리는 없겠지만, 간단한 백혈구 수치검사 후에 무리하게 투약을 한다는 것입니다. 무리한 항암제 남용은 결국 환자의 몸에 부담만 주는 행위입니다. 독성이 없는 항암제는 없기 때문입니다. 무리한 항암주사는 암의 크기를 줄일 수 있지만 그만큼 환자의 몸도 망가뜨리게 됩니다.

문제는 건강보험 제도에 있는데, 우리나라의 건강의료보험제도는 검사나 시술, 투약 등 행위에 대한 수가를 계산하여 지불하는 시스템입니다. 환자와 의료인이 만나서 같이 있는 시간은 계산에 넣지 않다보니, 많은 의사들이 상담보다는 처방전 발부에 시간을 보내고, 환자는 환자대로 장비와 기술에 의존하는 ‘대형병원 집착증’이 점점 더 가속화 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1, 2차 병원의 병상은 텅텅 비어도 대형병원은 발 디딜 틈 없는 왜곡된 의료시스템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대부분의 암환자들은 병원에서 의사선생님과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고 의사선생님과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의료진에 대한 불만과 불신만 커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또한 우리의 의료시스템은 암환자를 돌본다(Care)는 개념보다는 치료한다(Cure)라는 개념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어서 완치 가능성이 없다면 아예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사람보다는 암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인데 말 그대로 주객이 전도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병원치료를 꾸준히 잘 받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병원에서는 손을 놓게 됩니다. 암환자와 보호자가 이럴 때 느끼는 배신감과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며 육두문자를 써가면서 의사선생님과, 병원 시스템을 욕하게 됩니다. 이러한 시스템은 암환자의 인권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지만 아마도 힘이 없어서 시스템을 바꾸지 못하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부당함의 모든 피해는 환자와 보호자가 짊어 져야 하며 그 대가는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3년 전 서울의 모 병원에서 말기암으로 6개월의 진단을 받은 분이 있습니다. 항암제를 투여하면 대략 6개월 정도 연명할 수 있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는데, 그 분은 병원의 말에 실망하여 산속에 들어가서 나름대로 운동과, 식이요법을 하여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국민연금공단에 제출할 진단서가 필요하여 그 병원을 다시 찾았습니다. 담당의사가 의아한 눈으로 보면서 진단서를 끊어 주었는데 진단서의 내용에는 “치료 거부”라고 써 있고 담당의 서명란에는 누가보아도 아이의 낙서 같은 이름을 휘갈긴 사인이 있었습니다. 진정으로 축하해주어야 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병원 담당의 성의 없는 행동에서는 그 환자의 인격이나, 인권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입니다. 많은 암환자들이 힘겨워하는 일들 중 하나가 의료제도권 시스템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암환자의 현실입니다. 암에 걸린 사람보다 암이라는 병증만 바라보는 의료진과 그러한 상황을 부추기는 시스템을 바로잡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착되지 않은 호스피스 제도의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의 의료법에는 아직 호스피스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습니다. 2007년 4월 만들어진 “말기 암환자 전문의료기관 지정 기준 제안안”이 처음으로 호스피스에 대한 기본적인 기준을 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보건복지부에서 2004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국 74개 의료기관에서 호스피스를 운영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시설이나 규모에 대해서도 아직 명확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의 나라인 대만의 경우 암환자의 90%정도가 가정 호스피스 지원을 받고 있으며 정부의 보조로 전액 무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대만의 경우 2000년부터 호스피스 제도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는데 올해 결과보고를 보면 암환자가 일반 병동에서 삶을 마무리 하는 것보다 64%정도의 비용을 절감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전국에 6천여 개의 방문 간호소(Visiting Nurse Station)를 설치하여 가정 호스피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건복지부에서 재가 암관리사업을 실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암환자들은 이러한 제도가 있는지 조차 모른 채 투병을 하고 있으며, 또 재가 암관리를 받기위한 자격조건 또한 까다로워 아무나 신청할 수도 없는 상태입니다.

얼마 전 경기도 포천에 있는 한 호스피스를 방문했습니다. 의료보험공단의 직원이 며칠 상주하며 수가 개발을 위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업무를 하는데, 정작 호스피스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노인요양병원이 포화상태가 된 것처럼 어설픈 시스템으로 자격도 안 되는 호스피스가 난립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정작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는 이들은 “당장의 문제는 병상 부족도 보험급여 적용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더 큰 문제는 환자들이 “너무 늦게 오는 것”이라며 “호스피스 취지를 살리려면 통상 3~6개월 정도 남은 시점부터 관리가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평균 1주일 정도를 남겨놓고 온다”라고 말합니다. 호스피스는 임종하러 가는 곳이 아닙니다. 호스피스 제도가 발달되어 있는 유럽이나 영연방 국가들을 보면 호스피스에 들어갔다가 호전되거나 완치가 되어 퇴원하는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호스피스를 이용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호스피스 제도는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의 고통과 불안까지 아우르는 전인의료이기 때문에 호스피스 대상은 환자와 가족으로 범위가 넓으며 사별 후에 남아 있는 가족의 정서까지 관리에 포함됩니다. 그래서 각 호스피스에서는 주기적인 사별자 모임이 있어서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사망자의 1/4이 암으로 사망합니다. 전체 말기암환자는 5만 8천 명 정도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호스피스 기관에서 관리를 받는 환자는 천여 명 정도에 불과 합니다. 나머지 5만 7천 명 정도는 지금 이 순간도 고통 속에 방치돼 있는 셈입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적 여건이 호스피스가 발달한 다른 나라와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진정으로 환자를 위하는 길은 편안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웰빙(Well Being)이 중요한 것처럼 웰다잉(Well Dying)도 중요합니다. 삶의 완성은 죽음의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완성의 시간을 병원 응급실의 차가운 바닥에서 맞이한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치료(Cure) 중심의 의료 환경을 보호(Care) 위주의 환경으로 바꿔야합니다. 또한 의사와 환자간 충분한 대화와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는 처방위주의 의료보험수가 환경 또한 바뀌어야합니다. 임종에 임박할수록 따뜻한 손길과 마음이 그리워집니다. 삶의 질을 높인다는 것은 그러한 따뜻한 느낌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임종을 맞이할 때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와 생활수준이 비슷한 대만에서는 벌써 7년 전에 법으로 정해서 암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정부차원에서 발 벗고 나서고 있습니다. 국회의사당은 바로 이러한 내용들을 검토하여 법으로 만드는 곳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암환자 분들이 고통과 신음하여 기나긴 겨울밤을 지새우고 있습니다.

뒤로월간암 200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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