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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안식처 만들기
고동탄(bourree@kakao.com)기자2025년 10월 30일 10:17 분입력   총 190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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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진목 (파인힐병원장)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앓고 있는 병이 있다. 바로 ‘월요병’이다. 의학적 질병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사람이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월요일 아침만 되면 몸과 마음이 처지고 힘들며, 더 심각한 경우에는 회사에 나가는 것 자체가 싫어지는 때도 있다. 이와 관련해서 수년 전부터 ‘회사 우울증’이라는 말도 생겼다. 실제로 많은 직장인들이 회사 우울증으로 힘들어 한다. 회사 우울증은 심각한 병이라고 볼 수는 없다. 스트레스가 많은 직장인들에게 나타나는 심리적 현상에 붙여진 이름일 뿐 질병은 아니다. 우울증은 질병이고 전문적인 치료를 요하는 반면, 회사 우울증은 질병이 아니며 심리 현상의 하나라는 점에서 구분된다. 물론 회사 우울증이 실제 우울증으로 진행될 수도 있지만, 그 자체로는 의학적 질병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프리카 초원을 상상해 보면 얼룩말과 기린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장면이 연상된다. 이 평화를 깨는 놈이 있으니, 바로 사자이다. 얼룩말이 사자를 만나는 순간 평화는 깨어지고 도망을 쳐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 연출된다. 만일 도망이 여의치 않아서 사자가 근접하게 되면 싸울 상대가 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목숨 걸고 싸우는 수밖에 없다. 뒷발을 맹렬히 찬다. 실제로 얼룩말의 뒷발에 차여 치명상을 입는 사자도 있다고 한다. 얼룩말이 사자를 만났을 때 ‘도망갈 것인가?’ 또는 ‘싸울 것인가?’라는 의미로 과학자들은 ‘flight or fight response (도피와 투쟁 반응)’이라 이름을 붙였다. 이때 분비되는 호르몬들이 있는데, ‘코르티솔’과 ‘에피네프린’이다.

도망가든 싸우든 근육이 긴장해야 하고, 심장박동을 빨리해서 근육으로 혈액을 모아서 힘을 쓸 준비를 하는 것이다. 긴급활동에 방해가 되는 내장운동도 정지시키고, 동공은 크게 확대된다. 그리고 실제로 도망이든 싸운 뒤에는 평화가 찾아오고 분비되었던 호르몬들은 소모되어 사라진다. 그런데 사람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닥치게 되면 코르티솔과 에피네프린이 분비되지만, 실제로 도망칠 수도, 싸울 수도 없으니 이 호르몬들은 소모되지 않고 몸속에 계속 머무르게 되며, 이런 스트레스 상황이 반복되면 이 호르몬들이 반복적으로 분비되어서 혈압을 올리고, 식욕을 떨어뜨리고, 내장운동이 약해지는 등 스트레스 상황을 만들게 된다. 얼룩말에 있어서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좋은 역할을 한 호르몬이었지만, 사람에서는 건강을 해치는 나쁜 호르몬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즉, 스트레스 호르몬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좋은 작용을 하기도 하고, 나쁜 작용을 하게도 된다는 의미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 자체가 건강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에 따라 건강에 이롭기도, 해롭기도 하다는 말이다. 실제로 긴장 상황이 계속될 때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긴장 상황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긴장 상황을 즐기는 사람들은 스트레스 상황이 건강을 해치기는커녕 오히려 좋은 건강상태를 유지한다. 의학적으로는 이런 사람에게는 코르티솔과 에피네프린 외에 도파민과 옥시토신도 함께 분비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결국 스트레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건강이 나빠지기도 하고,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스트레스를 회피할 수는 없으니, 스트레스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결론이다. 스트레스를 즐기는 성격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게 되므로, 스트레스를 빨리 잊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는 방법이 더 쉬울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푸는 방법은 사람마다 매우 다른데, 가장 많은 유형이 역시 술과 담배이고, 잠을 푹 자는 사람도 많고, 노래방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실컷 부르는 사람도 있고, 운동을 통해 땀을 흠뻑 흘려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도 많다. 맛있는 걸 먹어서 푸는 사람도 있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어 풀든지, 게임이나 영화에 몰입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의 성격과 취향이 각기 다르듯, 괴로운 감정을 잊고 행복한 감정을 찾는 방법들도 다양하다. 그런데 이러한 활동 뒤 감정 상태가 좀 편안해졌는지, 여전히 힘든지가 중요하다. 이런 활동 뒤 감정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면 단순히 스트레스 상황으로부터의 회피였지, 해결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필자가 소개하는 ‘나만의 안식처 만들기’를 잘 활용해 보기 바란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행복하다’는 글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여러 임상 실험에서 마음의 상태와 무관하게 박장대소를 하고 억지로라도 웃으면 엔돌핀이 분비되고 면역력도 상승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햇빛을 받으면서 천천히 걸으면 행복 호르몬이라는 ‘세로토닌’이 분비된다. 사실 세로토닌은 행복감보다 평안함을 주는 호르몬이고, 세로토닌이 멜라토닌으로 변환되어 수면의 질이 향상된다. 만족감과 성취감을 주는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은 목표를 성취하거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의식이 충만할 때 분비된다고 한다. 노름에 빠지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노름할 때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행복을 느끼는 호르몬으로 엔돌핀, 세로토닌, 도파민을 말했는데, 마지막으로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도 있다. 옥시토신은 원래 산모가 아기를 분만할 때 자궁의 수축을 돕는 호르몬이지만, 이와 함께 아기와 엄마 사이의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신뢰가 싹트게 만든다. 이 옥시토신은 가까운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크게 증가하며, 사람과 동물 사이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어느 휴일 아침에 눈을 뜨니 창을 통해서 밝은 햇살이 가득 들어온다. 햇살에 눈이 부시고,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나는 기분 좋게 두 팔을 힘껏 올려서 기지개를 켠다. 내 몸의 모든 근육들이 편안하게 이완되면서 시원한 느낌이 든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볍게 아침을 먹은 뒤 가족들과 함께 가까운 공원으로 향한다. 공원에 들어서니 푸르른 나뭇잎들이 울창한 자태를 뽐낸다. 따뜻한 햇살이 온몸을 감싼다. 붉은색, 노란색, 보라색, 형형색색의 꽃들이 군데군데 피어 있다. 시원한 산들바람이 얼굴에 와 닿는다. 우리는 함께 공원을 걷는다. 서로 손을 잡는다. 손으로 전해지는 서로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면서 천천히 걷는다. 평화롭게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들은 재미있는 학교 친구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또 최근에 유행하는 유머를 알려준다. 우리 가족들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깔깔대고 웃는다.

만일 당신이 이 글을 읽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고, 그 안에 흠뻑 몰입했다면 당신은 지금 행복감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가족과의 즐거운 산책을 한다는 상상만으로 엔돌핀이 분비되고, 평화로운 느낌으로 세로토닌, 만족감으로 도파민, 가족과의 스킨십과 친밀감으로 옥시토신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행복했던 추억 또는 상상 속의 행복 상황 조성으로 몸속에서 행복 호르몬들이 분비되어 스트레스를 벗어나 행복하고 안정된 마음 상태를 만들 수 있다. 이름하여 ‘나만의 안식처 만들기’이다.

물론, 사람마다 삶의 척도가 다르고 스트레스를 느끼는 상황에 대한 반응이 달라서, 편안함이나 행복감을 느끼는 상황은 다르겠지만, 위의 글처럼 자기만의 행복 상황을 만들어서, 스트레스를 느낄 때 스트레스 상황을 계속 되뇌는 대신 재빨리 ‘나만의 안식처로 들어가서’ 행복 상상을 하면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마음의 평안을 되찾을 수 있다. 행복 상황은 실제 경험했던 일이라도 되고, 영화나 소설 속에서 간접 경험했던 일도 괜찮고, 스스로 지어낸 상황도 좋다. 어쨌든 내 마음이 이완되고 행복감을 느끼는 상황을 만들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나만의 안식처로 들어가서 스트레스를 잊고, 행복 호르몬이 분비되도록 이끌면 된다.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나만의 안식처를 만들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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