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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期)와 말기(末期)는 다르다
고정혁기자2009년 01월 15일 19:33 분입력   총 881749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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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식| //lifenpower.co.kr 대한의사협회 지향위 보완의학전문위원. 샘안양병원, 동서신의학병원 보완의학 암연구소장

***4기(4 期)는 사기(死期)가 아니다
***그리고 4기(4 期)와 말기(末期)는 다르다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 후 진단결과가 혈액암을 제외하곤 대개 0기서부터 4기까지로 나옵니다. 이때 사용하는 방법이 TNM(종양크기, 림프절 침윤, 전이여부)을 사용하며 그 후 치료방침을 세우고 수술, 항암화학요법, 방사선치료 등을 시작합니다.
물론 외적인 검사로 병기를 추정하기 때문에 수술 후에 병기가 차이가 나게 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알다시피 기계로 발견할 수 있는 암 크기는 아무리 작어도 수mm 내지 1cm는 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모래알 같은 병변이 복막에 퍼져있어도(=복막파종) 검사로는 나오지 않기도 하는 것입니다. 특히 간이나 난소, 췌장 등은 한참 후에야 조금씩 증상이 나타나므로 조기진단이 치료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면역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이미 암에 걸려 면역이 저하된 상태로 병원에 가서 꼭 해야 하는 검사과정조차 몸을 약하게 해서 검사하다 지치는 경우도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허나 정확한 진단을 위한 정밀검사이므로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하겠지만 이로 인해 면역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은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물론 원발병소를 발견하지 못하는 원인불명의 암도 있습니다.

그 후 검사결과가 나오기까지 환자와 보호자의 심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하루가 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과도한 긴장감과 초조, 불안, 허탈감, 아쉬움, 분노, 원망, 좌절, 비애감 등으로 본인은 물론 집안 전체의 분위기가 어두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결과를 보러가는 날까지 면역력도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퀴블로 로스의 5단계의 정신변화가 왔다 갔다 합니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등….

이 상태에서 진단이 4기가 나오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공황상태가 생기기도 합니다. 4기의 결과가 안 좋다보니 이때부터 온가족이 여러 방면으로 암 공부에 몰입하기 시작합니다. 현대의학치료의 가망성과 기타 여러 의학 장르를 검색해보고 질문을 시작합니다. 그들의 엷은 귀는 이것저것 가리는 분별력을 상실케 합니다. 암, 암치유, 암치료, 항암이란 글자만 눈에 보여도 동공이 그곳을 향하게 됩니다. 이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주위의 부정적인 말과 환경입니다. 즉 들리는 말과 분위기입니다.
4기는 ‘별수 없더라’, ‘해봤자 고생만 하더라’, ‘4기는 어차피…’ 등의 말은 환자와 가족의 힘을 빼앗고 절망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그리고 투병기간 내내 칠흑 같은 분위기속에서 지내게 됩니다.
4기라면 오히려 사기를 높이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반대로 더 사기가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마치 축구시합에서 자살골을 먹을 때 느끼는 절망감과 비슷할지도 모르나 축구시합은 그래도 90분 정도 뛰면 끝나지만 암과의 시합은 살아있는 한은 평생 가야합니다.

그러나 “통계는 통계일 뿐 개인적으로는 모두 다 다릅니다.”
같은 암, 병기라도 같은 경과는 절대 없습니다.
4기라는 것은 어쩌면 인생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의미를 생각하고 한번 대판 전쟁을 치루는 용사처럼 사기(士氣)진작의 기회로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걸림돌보다는 디딤돌로, 밟히기보다는 밟는 기분으로, 위기를 기회로, 눌림보다는 누리는 방향으로 말입니다.
특히 4기와 말기(末期)는 엄연히 다릅니다. 아니 앞으로는 병기를 나누어서 표현하지 않는 날이 올 것입니다. 4기에서도 살아나는 분들도 분명히 계십니다. 역으로 1기라고 안심해도 안 됩니다. 우스운 표현이지만 만약에 5기라 한다 해도 오기로 이길 수 있다고 합니다. 여명기간이 6개월 미만인 경우에 보통 말기라고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추정입니다. 덜 진행된 병기보다 말기에서 더 오래 잘 사시는 분도 꽤 되십니다. 또 오히려 겉모습이 3기 환우보다도 양호한 분도 꽤 됩니다. 제가 아는 분은 4기지만 2년 넘게 건강하게 지나고 있으며 어떤 분은 수년째 병소가 그대로 체체파리에 물린 것처럼 자고 있다고 합니다.

병기가 개인적인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고 오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러니 “몇 개월 남았다”라는 표현도 어찌 보면 아무 득이 안 되는 표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암보다 더 속절없고 골치 아픈 병도 많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닥치는 교통사고, 뇌졸중으로 쓰러져 지금도 중환자실에서 살아가시는 분, 당뇨합병증으로 고생하시는 분, 투석으로 생명을 연명해가는 분, 중환자실의 식물인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의사든 환자든 내일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자포자기의 종말론적인 말이 아니며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의미 있게 지내자는 것입니다. 하루를 10일처럼 보내면 1년을 10년처럼 사는 것과 같습니다. 암에서 벗어나도 누구나 한번은 가므로 아예 지금 삶과 죽음의 가치관을 터득해놓으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지금 걸을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웃을 수 있고 숨 쉬는 것, 발가락을 움직이는 것도 감사의 조건이 다 됩니다. 그렇게 힘들었던 용서도 하게 됩니다. 비 안 새는 집이면 감사, 어떤 차든 걸어가는 것 보다 빠르면 감사, 밥 끼니 때우면-1년에 500만 명의 아동이 굶어죽습니다-감사하게 됩니다.
그렇게도 비우고 싶어도 못 비우던 욕망까지도 비워져지게 됩니다. 집 앞의 역사에 추위를 피해 찾아오는 분들을 보면 내 집도 없지만 잘 곳이 있다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처럼 암이 주는 이득도 따지고 보면 참 많습니다.

언젠가 점심때 마늘을 먹고 상담실에 들어오니 환자분이 절 보더니 속으로 웃음을 참고 계셔서 담배냄새는 옆 사람에게 악영향을 미치지만 마늘 냄새는 옆에서 맡기만 해도 암에 좋다고, 그리고 이 냄새는 내 영역표시라 말하며 서로 마주보고 한참 웃었습니다. 또 정상적으로 주차를 시키고 일을 보고 돌아와 보니 어느 분께서 친절하게 못으로 깊게 차를 긁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못으로 힘주어서 긁어놓아도 구멍은 안 나고 비도 안 샙니다. 달리는 데는 전혀 지장도 없습니다. 지금도 잘 달립니다.
아무리 비가와도 압력밥솥은 비가 안 새며 튼튼한 둑은 어떤 폭풍우에도 건재하게 잘 버팁니다. 성난 파도가 용감한 해병을 길러내고 튼튼한 집은 바람 불고 홍수가 나야 안다고 했습니다. 분만의 고통은 아기에게 튼튼한 호흡기를 선물합니다.

어떤 것도 고통 없이 얻는 것은 없습니다. No Cross, No crown!!

사랑하는 환우여러분!
절대로 병기에 연연하지 말고 조금은 바보처럼 강하고 당당하게 싸우십시오. 힘내십시오.

뒤로월간암 2008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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