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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궁금하다] 암환자의 심리 반응 단계
고정혁기자2009년 06월 03일 16:44 분입력   총 883588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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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인생수업(Life Lessons)≫이라는 책으로 더 알려진 시카고 대학의 정신과 의사 고(故)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암 환자가 임종을 맞는 단계에는 5가지가 있다고 밝혔다.

●1단계 : 부정 ‘당신이 죽으면 죽었지 나는 아니다.’
환자가 자신이 암이라는 사실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진단이 잘못되었을 것이라며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며 진료를 받기도 한다. 암이란 죽음을 의미하며, 아직 나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2단계 : 분노 ‘왜 하필 나인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짓 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는데, 그 결과가 암이라니……. 다른 사람들은 나쁜 짓 많이 해도 오래오래 사는데 왜 하필 나에게 이런 큰 병이 생겼단 말인가.’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시기이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화를 내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3단계 : 타협 ‘그래 인정은 한다.’
여기저기 알아봐도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확실하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암에 걸린 것이 아니라고 발버둥쳐 봐야 자신만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과,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아직까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고 조건부로 받아들인다.

즉 ‘자녀가 결혼할 때까지’ 또는 ‘손자를 볼 때까지’라는 식으로 말이다. 운명이나 신에게 타협을 구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절이나 교회에 많은 헌금을 하기도 하고, 평소에 하지 않던 봉사활동도 한다. 그렇게 좋은 일을 하면 암이 천천히 성장하고 수명이 연장될 것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한다. 평소보다 더 활기차 보일 수 있다.

●4단계 : 우울 ‘그래 내 차례다.’
타협의 단계를 통해 좋은 일도 하고, 종교에 귀의해 보기도 하고, 병원에서 열심히 치료도 받아 보지만 몸 상태가 점차 나빠지면서 ‘우울’의 단계에 접어든다. 이 단계에서 환자는 극도의 상실감을 경험한다. 암이 진행되면서 몸은 더욱 힘들어지는데다 우울하고 무기력해진다. 먼저 죽은 가족들이 생각나고, 이유 없이 눈물이 나기도 한다. 또한 심리적 무기력감에 사로잡힌다. 이때 자칫 ‘힘내세요’하는 식으로 접근하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5단계 : 수용 ‘이제 더 이상 무슨 소용이 있나.’
자신의 운명에 더 이상 분노하거나 우울해하지 않으며, 대개 지나간 자신의 감정들을 이야기하거나 차분해진다. 환자 스스로 임종에 대한 준비를 하기도 한다.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도움과 지지가 필요한 시기이다. 죽음을 수용해 순응하면 죽음을 넘어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죽음을 수용하는 시점에서부터는 죽음은 더 이상 걸림돌이나 장애가 되지 않는다.

이 5단계를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환자에 따라서는 각 단계가 순서대로 나타나지 않기도 하고, 여러 가지 단계가 한꺼번에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환자는 죽을 때까지 죽음을 수용하지 않고, 분노나 우울의 단계에서 멈춰 선 채 힘들게 죽음을 맞기도 한다.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든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 5단계를 겪는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환자도 가족도 편안해진다. 가족은 환자의 심리를 충분히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환자가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패티슨 교수는 암 환자가 느끼는 두려움을 다음의 8가지로 구분했다.

① 누구도 가 보지 못한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② 가족이나 친지, 동료,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두려움
③ 가족을 비롯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헤어진다는 두려움
④ 자신의 육체가 없어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⑤ 병에 따른 자기 지배 능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
⑥ 고통에 대한 두려움
⑦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세상을 살아 왔나’하는 식의 주체성 상실
⑧ 병들어 어린아이처럼 될지 모른다는 퇴행에 대한 두려움

환자가 느끼는 두려움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아도 사람인 이상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의료진과 보호자가 환자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하며, 옆에서 해 주어야 할 일이 많다.

<진료실에서 못다 한 항암 치료 이야기>, 김범석, 아카데미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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