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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삶을 치유하는 사이먼튼 암 프로그램
고정혁기자2009년 06월 09일 17:37 분입력   총 880401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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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희 | 이주희 이완연구소장. 의사. 임상심리사. 서울대학교 의학과 졸업.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인류학, 철학, 심리학 수학. (네이버 카페 아우토겐수련 //cafe.naver.com/autogen)

암을 고칠 수 있을까? 암이 치유되어 다시 건강해질 수 있을까? 병을 고친다고 말한다. 병이 치유되어 다시 건강을 되찾았다고 말한다. 그것이 우리의 언어습관이다. 암은 불치병이라고 말한다. 고치지 못하는 병이라는 뜻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도 말한다. 이것이 우리의 통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그렇다. 암은 고칠 수 없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말인가? 아니다.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삶에 이르기 위한 병이란 말이 맞을 것이다. 말장난하느냐고 나무랄지도 모르겠다. 얼른 결론을 말해야겠다.

암을 고칠 수 없다고 한 것은 고칠 수도 없거니와 더더군다나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쳐야 할 그리고 고칠 수 있는 대상은 따로 있다. 바로 삶이다. 암이 오는 것은 당신의 삶에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이다. 삶을 치유하자. 암은 전령으로서의 임무를 마치고 당신에게서 떠날 것이다.

사이먼튼 암 프로그램은 치유의 여정에 가져가는 지도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이 좋은 조건에서 환자와 만나게 된다면 그의 치유 여정에 아주 좋은 동반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이먼튼 암 프로그램의 기초가 되는 몇 가지를 소개한다.

출발점-“살려는 의지”를 갖는다는 것
암-같은 진단을 받았으면서도 어째서 어떤 환자는 건강을 회복하고 어떤 환자는 그렇지 못한 것일까? 칼 사이먼튼(O. Carl Simonton MD.)은 오리건 의과대학에서 암 전문의 과정을 밟으면서 의문을 갖게 된다. 이후 방사선 종양학 전문의로서 공군병원과 기타 종합병원에 근무하면서 방사선 치료를 받으려고 찾아오는 암환자들을 대하면서 그는 의문을 꾸준히 추적해 나간다. 그리고 그는 바로 환자의 태도, 그리고 삶에의 의지에서 나타나는 차이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았다.

사이먼튼 암센터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두 명의 환자를 예로 들어 보자.

제리 그린(가명)과 빌 스피노자(가명)는 두 사람 다 거의 같은 증상을 가진 폐암 환자였다. 암세포가 뇌로 전이되었으며 이로 인한 전이 증상까지 거의 같았다.

그린 씨는 암이라는 진단을 들은 바로 그날 자신의 인생으로부터 은퇴를 시작하였다. 힘써 해오고 있던 일들을 모두 집어치우고 집의 재정문제와 앞으로 있을 재산관계의 처리를 모두 끝냈으며 이를 마친 다음부터는 그저 텔레비전 앞에 우두커니 앉아서 멍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었다.

어느 누가 무엇을 권유해도 아무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부인의 말에 의하면 그린씨는 동통완화의 치료를 받는 시간을 놓칠까 봐 텔레비전 건성으로 보고 있었고 방사선 치료에도 좋은 반응을 보이지 못하였으며 결국 3개월 만에 사망하였다.

후에 들은 부인의 얘기에 의하면 그린씨의 양친을 비롯한 친척 대다수가 암으로 사망하였으며, 그리고 두 사람이 결혼했을 때에 그린씨는 신부에게 “나도 반드시 암으로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마치 예언인 양 말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린씨는 그야말로 자기가 예고한 대로 스스로 암을 맞아들여 아무 저항 없이 죽고 만 것이다.

다른 한 사람인 스피노자씨의 병 상태와 경과에 대한 예상은 그린씨와 거의 같았다. 그러나 암이라는 진단을 받을 때 스피노자씨가 보인 반응은 그린씨가 보인 반응과는 아주 달랐다. 무엇보다도 두드러지는 것은 스피노자씨가 암이 발병한 것을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성찰하는 기회로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스피노자씨는 암진단을 받은 후에도 일을 계속했으며 여생을 더욱 즐길 수 있는 하루하루가 되도록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과 삶을 조정해 나갔다. 그러다가 사이먼튼요법을 알게 되어 그의 병원에서 치료그룹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여기서 학습한 이미지요법을 규칙적으로 응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로 방사선치료에 대한 반응도 월등히 좋아졌고 마침내 암세포가 거의 소멸하기에 이르렀다. 사이먼튼병원에서의 치료를 마치고 1년 반 정도 지속적으로 회복되는 경과를 밟던 중 심리적으로 크게 충격을 주는 사건을 연달아 겪고는 암이 재발하여 회복하지 못하고 곧 사망하였다.

두 사람 모두 1970년대 당시 가능했던 최상의 의학적 치료를 받고 있었고, 사이먼튼 암센터에서 시행하는 치료에도 참가해 여러 가지 치료법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나타낸 치료에 대한 반응과 결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타났다. 결정적인 요소는 위의 사례 비교가 보여 주듯이 살고자 하는 의지와 치료에 임하는 태도였던 것이다.

결정하라-바로 당신이 결정하라!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또 그것을 이루려면 이러이러하게 하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로는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말이 실천으로 옮아가는 데는 결정이라고 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지불식간에 이 결정을 끊임없이 유보하고 있는 것이다.

암환자는 결정을 유보하는 정도가 심한 것 같다.
사이먼튼 암 프로그램의 유형 중에는 환자주간이라고 하는 5박 6일의 워크숍 코스가 있는데 결정 선언이라는 과정이 있어 첫날 오전 중에 환자들은 한 명씩 모든 참가자와 치료자 앞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나는 내가 다시 건강해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바대로 행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런데 워크숍 중에 보면 차마 입을 떼지 못하는 환자가 종종 있다. 몇 차례 기회가 있고 나서 자신은 도저히 선언할 수 없다고 한다. 실상 자신은 결정할 수가 없는데 사실, 여태껏 한 번도 자신이 결정을 내려본 적이 없다고 고백을 한다. 만약에 백혈구들이 그런 주인의 마음을 닮는다면 암세포가 생겨나도 이를 남으로 인식하고 잡아먹어야 할지, 나로 인식하고 그냥 두어야 할지를 결정을 못 내리고 마냥 망설이기만 할 것이다. 암세포는 암세포대로 자라고 에너지는 에너지대로 망설임 속에 사로잡혀 있는 아주 언짢은 상황이 될 것이다.

결정이 중요한 이유는 결정하는 곳에 힘이 있기 때문이다. 결정하지 못하고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고 있으면 에너지가 끊임없이 분산되며 소모된다. 치유에 집중되어야 할 에너지가 말이다. 결정은 행동에 불을 붙이는 불꽃이다.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결정에는 힘이 있다. 정신을 일깨우고 내면의 생명력이 용솟음쳐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어중간한 태도를 보이거나 단편적인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 암에 걸렸다는 것은 지금은 이쪽이냐 저쪽이냐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할 때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실행에 옮겨야 한다.

물론 다른 선택에 항상 마음을 열어 놓아 언제든지 새롭게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선택한 길이다. 바로 지금 이 길로 떠나자.”

뒤로월간암 200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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