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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바로알기] 엉터리 연구에 제재를 가한다?
고정혁기자2009년 07월 09일 13:24 분입력   총 879648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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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품 임상실험, 엉터리 연구가 판을 쳐

몰라서 그렇지 알고 보면 수상한 엉터리 연구들이 판을 치고 있다. 말로는 근거중심의학(EBD)이라고 대단한 양 내세우지만 연구과정이 왜곡되면 사이비의학이 되어버린다. 예를 들면 약품의 임상실험 결과가 매우 과학적이고 믿을만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다. 임상실험 초기에 조금이라도 약효가 있으면 실험을 중단하고 효과를 터무니없이 부풀려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술수를 영어로는 “cherry-picking of drug trials”라고 하는데 약품 임상실험이 마치 버찌를 딸 때 제일 좋은 놈만 골라 따듯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 선별적으로 취해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게 초기에 임상실험을 중단해버리면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까지 은폐해버릴 수도 있어서 제약회사로는 일거양득이 된다.

▲ 미국 의학 전문잡지, 제약업체와 금전관계 있는 저자의 연구 용납 안 해

그런데 조작과 왜곡이 계속 용납될 수는 없다.
그동안 엉터리 연구를 사실상 묵인하던 미국의 의학 전문잡지들이 이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마침내, 제약업체나 의료장비업체가 제공한 연구비로 연구한 논문들은 게재할 때보다 엄격한 윤리규정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많은 잡지들이 제약업체와 금전관계가 있는 저자들의 연구는 아예 용납하지 않는 ‘무관용의 원칙’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뉴잉글랜드 의학잡지의 편집인들이 거대 제약회사인 머크사가 게재된 연구논문에서 진통제인 바이옥스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부적절하게 빼버렸다고 비난하는 일이 벌어졌다. 머크사는 잘못을 부인했지만 뉴잉글랜드 의학잡지의 편집장은 제약회사와 관련이 있는 논문 저자들을 더욱 더 경계하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바이옥스는 문제가 생겨 2004년 9월부터 판매금지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레스터 크로퍼드가 FDA 청장으로 재직할 때 자신이 감독해야 하는 회사들의 주식을 소유한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된 이후 의료계의 이해충돌에 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상황이 갈수록 불리해지자 많은 의학 전문잡지들이 뒤늦게나마 옥석을 가리기 위해, 논문 저자들이 제약회사나 장비제조업체로부터 제공받는 모든 보수를 사전에 자세하게 밝히도록 요구하게 되었고 또 일부 의학 전문잡지들은 연구결과를 보다 세밀하게 조사하게 되었다.

미국의학협회지는 최근에 제약회사나 장비제조업체로부터 연구비를 받아 실시되는 모든 연구결과는 게재하기 전에 독립적인 통계학자가 2차로 검증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왜곡되거나 조작된 연구결과를 걸러내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또 <신경심리 약물학>이란 잡지도 ‘무관용 원칙’을 도입하게 되었는데, 전직 편집인이 의료장비업체와 금전적인 관계가 있는 것을 숨기고 바로 그 장비에 관한 논문을 다른 사람과 함께 써서 잡지에 게재하는 불미스런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 뉴잉글랜드 의학잡지, 제약회사와 금전관계 없는 의사 찾지 못해

그런데 제약회사와 금전적인 관계가 없는 과학자는 거의 없어서 ‘무관용 원칙’과 같은 보다 엄격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예를 들면 2002년에 뉴잉글랜드 의학잡지는 제약회사로부터 돈을 받아먹지 않은 의사를 찾을 수가 없어서 이해충돌 방침을 완화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부 비판가들은 의학 전문잡지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거대 제약회사들의 선전도구로 전락해서 제약회사가 연구비를 제공한 엉터리 연구결과들의 신뢰도만 높여주었다고 비난하고 있다. 제약회사들이 가장 큰 광고주들이기 때문에 의학 전문잡지들이 제약회사와 금전 관계가 있는 저자들이 쓴 엉터리 연구논문 즉 쓰레기 같은 논문들을 기꺼이 게재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 미국 영향력 큰 임상연구가 루벤 박사 21건 논문 자료 위조

그런데 이런 비난이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최근에 매사추세츠의 베이스테이트 의료센터의 연구원인 스콧 루벤 박사가 1996년부터 2008년까지 의학 전문잡지에 게재한 21건의 약품 관련 논문에서 사용한 자료들을 위조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의학 전문잡지들이 게재된 논문을 취소하는 소동이 벌어졌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어버렸다.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밀면서 상부상조하면서 먹고사는 의사들과 약품 옹호자들이 엉터리 약품들이 안전하고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입증되었다는 루벤의 황당한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수많은 처방을 내려버렸는데 그건 취소할 수도 회수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가 쓴 논문에는 벡스트라, 바이옥스, 리리카, 셀레브렉스, 에펙서 같은 약품이 안전하고 효과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런 연구를 발표하면서 화이자와 머크사로부터 그는 돈을 받았고 이들 제약회사들은 물론 엉터리 논문의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어쨌든 그동안 스콧 루벤 박사는 미국에서 아주 존경을 받던 영향력이 큰 임상연구가였다. 그런데 그의 실체는 사기꾼으로 밝혀졌으니 미국의 의료계는 놀라 나자빠져 버렸다. 이런 일이 만약 빙산의 일각이라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엉터리 연구가 의학 전문잡지를 통해 그럴듯한 과학적인 논문으로 포장되고 둔갑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

▲ 의학 전문잡지 사전 재검토 과정도 유명무실

놀라운 것은 이런 엉터리 논문을 게재하는 전문잡지들이 명색으로는 한결같이 관련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사전에 논문을 재검토하는 소위 peer-review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제도는 학술지의 질을 확보하는데 꼭 필요한 제도적인 여과장치인데, 그런 장치조차 유명무실해서 복수의 다른 전문가들도 사전 검토를 통해 루벤의 엉터리 연구결과에 동조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심각한 문제는 질적으로 수준이 높은 것으로 생각되던 의학 전문잡지들에 실린 논문들도 이제는 믿기가 힘들어진 점이다. 지금 현재로는 가장 정직하고 믿을만한 의학 전문잡지는 2004년 10월부터 발행되고 있는 PLoS Medicine이다.

과연 세계적인 의학 전문잡지들이 스스로 자정노력을 통해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까? 그동안의 행적을 보면 쉬운 일이 아닐 듯하다.

참고 기사:
(1) The Wall Street Journal, "Another Shoe Drops In Faked Pain-Pill Studies" "April 7, 2009
(2) The Wall Street Journal, "Hospital Gets Subpoena Tied to Doctor's Studies" "April 7, 2009

머크사의 바이옥스란?
미국의 머크(Merck) 제약회사가 개발한 진통소염제이다.
FDA의 승인을 받은 뒤 그해 미국에서만 셀레브렉스와 함께 4,900만 건의 처방전이 발행될 정도로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아스피린 발명 이후 가장 획기적인 진통소염제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00년 7월부터 국내에서도 시판되었다.

그러나 심각한 부작용 때문에 미국 일리노이주(州) 주민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한 가운데, 약 2만 7,000명이 바이옥스 복용으로 심장질환을 일으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4년 9월 바이옥스 판매사인 머크사는 바이옥스의 전 세계적인 취하 및 자진회수를 발표했다.

무관용의 원칙(zero tolerance; 제로 톨로런스)이란?
사소한 규칙 위반에도 절대 관용을 베풀지 않는 정책을 말한다. 깨진 유리창이 있는 건물을 그대로 두면 사람들은 그 건물이 방치돼 있다고 여기고 다른 유리창을 부수면서 절도나 폭력 행위를 일삼게 된다는 범죄학자 조지 켈링의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에 근거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도 노동계의 불법시위 등에 적용하고 있다.

뒤로월간암 200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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