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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항생물질을 오래 사용하면 듣지 않는 이유?
고정혁기자2009년 07월 10일 13:14 분입력   총 882895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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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생물질의 공격에서 살아남는 세균의 출현

내성은 항생물질에 따라붙는 가장 골치 아픈 문제다. 즉 세균에 대항해 같은 항생물질을 계속 사용하면 세균이 이에 대응하는 능력, 즉 내성(저항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매스컴 등에 자주 ‘원내 감염(병원 감염)’이라든가 ‘MRSA’라는 말이 등장한다. 원내 감염이란 병원 안에서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원내 감염 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MRSA(메티실린 내성 황색 포도구균)의 감염이다. 식중독을 일으키는 세균으로 알려진 황색 포도구균은 보통 사람의 모발이나 피부 등에 존재하지만, 건강한 사람의 경우에는 이 세균의 영향은 전혀 받지 않는다. 그러나 병원 등에서 면역력이 저하된 환자의 경우에는 포도구균이 몸에 번식해 폐렴이나 수막염, 패혈증 등을 일으키고, 심한 경우에는 사망하는 수도 있다.

MRSA는 이 황색 포도구균이 메티실린이라는 항생물질에 내성을 갖게 된 세균이다. 이렇게 ‘내성균’으로 바뀐 포도구균은 메티실린뿐 아니라 다양한 항생물질에 내성을 보이게 된다. 따라서 일단 MRSA에 감염되면 항생물질로 감염증을 치료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이 같은 내성을 가진 포도구균에 대해서는 반코마이신과 같은 소수의 항생물질만이 살균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이 반코마이신 역시 지금은 그 약효의 저하가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내성균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비단 MSRA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항생물질에 내성을 가진 결핵균도 증가하고 있어, 이미 소멸됐다고 여겨졌던 결핵 감염이 다시금 확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고령자에게 폐렴을 일으키는 폐렴구균도 페니실린에 대해 강한 내성을 지닌 것이 20% 정도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폐렴구균은 어린이 중이염도 일으켜, 최근 소아과에서는 난치성 중이염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사실 내성 문제는 항생물질이 발견된 직후부터 발생했다. 1940년대 초에 페니실린이 듣지 않는 세균이 등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페니실린뿐 아니라 다른 항생물질에도 내성을 가진 세균이 차례로 등장했다. 이에 따라 내성균에 대항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잘 변화하지 않고 세균이 분비하는 효소의 영향을 잘 받지 않는 구조의 항생물질이 합성되었다.
그러나 이들 항생물질에 대해서도 곧바로 내성을 가진 세균이 등장했다. 실제로 병원에서 새로운 항생물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불과 몇 개월 내에 그 약이 더 듣지 않는 내성균이 출현한다고 한다.

● 세균의 내성이 확산되는 원리

세균의 내성은 처음에는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해 일어난다. 세균의 증식 속도는 매우 빨라 불과 30분 내에 분열해 그 수가 2배로 늘어난다. 이를 단순 계산하면 1개의 세균은 10시간 후면 100만 개, 하루 뒤에는 100조 개 이상으로 증식하게 된다. 또 세균의 유전자는 변이를 일으키기 쉬워 분열·증식하는 과정에서 세균의 성질이 점차 변화한다. 이렇게 증식한 세균 중에 1개라도 항생물질에 저항력을 가진 세균이 나타나면, 항생물질을 투여했을 때 대부분의 세균은 죽어도 그 세균만은 살아남아 증식하게 된다.

더욱 골치 아픈 것은 1개의 세균이 내성을 갖게 되면, 이 세균이 분열·증식해 숫자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내성이 단기간에 다른 세균 전체로 퍼지게 된다. 그 이유는 세균에게는 다른 세균에게 마치 전염병처럼 ‘내성을 확산시키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균은 내부의 핵에 유전자 물질인 DNA를 갖고 있지만, 이 외에도 작은 DNA 고리를 갖고 있다. ‘플라스미드’라고 부르는 이 DNA 고리는 세균끼리 접촉해 유전자를 교환할 때 세균에서 세균으로 전해진다. 이때 만일 항생물질에 내성을 보이는 내성 유전자가 플라스미드에 있다면, 이 플라스미드를 전해 받은 다른 세균 역시 같은 내성을 갖게 된다.

세균이 내성을 퍼뜨리는 메커니즘은 이 밖에 또 있다. 바로 ‘트랜스포존’이라는 유전자군에 의한 것이다. 트랜스포존상에 있는 유전자는 ‘점프하는 유전자(도약 유전자)’라는 이름처럼 DNA가 원래 있던 장소에서 자유롭게 다른 장소로 옮아가는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세균끼리 접합할 때는 상대 세균의 DNA로도 이동할 수 있다. 또한 세균에 감염된 바이러스가 내성 유전자를 매개하는 경우도 있다.

내성 유전자는 이렇듯 다양한 방법을 통해 다른 세균으로 퍼져 간다. 게다가 내성은 같은 종류의 세균끼리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세균에게도 퍼진다. 예를 들어, 포도구균이 내성을 갖게 되면, 이 세균의 주위에 우연히 있었던 용련균도 내성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

● 항생물질과 내성균의 끝없는 전쟁

1954년 내성균에 비장의 카드로 등장한 반코마이신은 거의 모든 항생물질에 내성을 가진 MRSA에 대한 특효약으로 간주돼 왔다. 그러나 1987년 마침내 이 반코마이신에도 내성을 가진 세균이 출현했다. 이 세균은 사람의 장 속에 살고 있는 장구균으로, 이 같은 반코마이신 내성 장구균을 줄여 ‘VRE’라고 한다.
VRE의 출현은 유럽의 축산업자가 식용으로 기르는 가축에 반코마이신과 비슷한 항생물질을 마구 투여할 결과라고 알려져 있다.

이후 2000년에는 반코마이신에 내성을 가진 세균(VRE)도 죽일 수 있는 리네졸리드라는 항생물질이 개발되었다. 리네졸리드는 세균이 단백질을 전혀 합성할 수 없도록 하는 강력한 약이다. 그러나 등장한 지 1년 뒤에는 이 새로운 항생물질에 대해서도 내성을 가진 세균이 발견되었다.

항생물질 연구의 제일인자였던 우메자와 하마오는 “과학은 내성균과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과학 쪽이 내성균보다 훨씬 앞서 달리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암에 효과적인 항생물질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사람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메자와 하오미의 말과는 달리 현실은 세균이 변이하는 놀라운 속도로 항생물질을 추월하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약은 우리 몸에 어떤 작용을 하는가>, 아자와 사이언스오피스 편저, 전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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