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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토픽] 선천성 뇌종양에서 금메달리스트가 되기까지
고정혁기자2009년 07월 10일 13:19 분입력   총 882549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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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재권 //blog.naver.com/moon0692

스콧 해밀턴(Scott Hamilton), 1984년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우리에게는 김연아 선수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미국 NBC 방송의 피겨 스케이팅 해설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선천성 뇌종양으로 어린 시절 병마와의 싸움을 계속해야 했고 언제나 승리를 거두었다. 1997년 고환암을 선고받았으나 병마와 잘 싸웠으며, 2004년 다시 뇌종양을 선고 받았으나 낙천적인 마음과 용기를 가지고 극복하며 현재 ‘스콧 해밀턴 치유 사이트’를 통해 암에 걸린 사람들을 돕고 있다.

그가 세상에 극복하지 못할 것이 없음을 몸소 증명하고 있는 것은 어머니 덕분이다. 그의 어머니 도로시 해밀턴은 여러 번의 유산 끝에 스콧을 입양했다. 어려서부터 질병으로 목숨이 위태로웠던 그에게 그녀는 주문을 외듯 “넌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진 그에게 그녀는 “새로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이라고 격려했고, 투병생활로 보기 안타까울 정도로 살이 빠졌을 때 “마침내 다이어트의 왕도를 찾았구나!”라고 말하며 그가 낙천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스케이트에 내 삶을 걸었다. 빙판 위에서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내달렸다. 어머니의 믿음이 나를 만들었다. 그날 밤 나의 경기는 오로지 한 사람, 내 어머니를 위한 것이었다.”

지금부터 시작될 이야기는 스콧이 말하는 그의 영웅, 어머니 도로시 해밀턴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여태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그중에는 대통령도 여럿 있었고 왕실 가족을 비롯하여 재계의 CEO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나의 어머니 도로시 해밀턴이 가지고 있는 용기와 강인함, 품위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스케이트를 시작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나에게 힘이 되어주셨다. 건강 문제뿐 아니라 내가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준 스승이시다. 어머니는 견디기 힘든 최악의 상황에서도 낙천적인 성격과 에너지와 열정을 버리신 적이 없다.
언제나 낙천적이었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도 쉽게 헤쳐 나왔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어설픈 설교를 할 필요가 없으셨다. 어머니는 생활의 지혜를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어머니는 당신 스스로 그렇게 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곧바로 실천하게 하셨다.

어머니의 인생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결혼 초에는 여러 번 유산했고, 분만 중에 두 아이를 잃으셨다. 쌍둥이를 낳았지만 누나만 살아남았다. 그 같은 상실감 속에서도 어머니는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상처받지 않으셨다. 그 대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새로운 제안을 하셨다.
“우리 여기서 주저앉지 말아요. 살다 보면 나쁜 일도 있겠죠. 하지만 언제나 하고 싶었던 일을 하자고요. 그러면 우리도 좀 더 나아질 거예요. 그리고 나는 아이들을 많이 갖고 싶어요.”
그 후 부모님은 나를 입양했고, 몇 년이 지나서는 남동생을 입양하셨다.
가족사진을 보면 우린 생김새가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이 우리를 한 가족으로 묶었다. 나는 어머니와 유별나게 가까웠다. 내가 이름도 알 수 없는 병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경우가 많았으니 내게 각별한 마음이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가족의 생계도 책임져야 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나를 위해 최대한 시간을 내주셨다. 잠에서 깨어보면 어머니는 내 침대 옆 의자에 앉아 계셨다. 내가 병원에 있을 때면 병원과 집 사이를 출퇴근하다시피 하셨다. 앤 아버, 미시간, 톨레도, 오하이오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병원이라도 나를 위해 어디든 운전을 하고 다니셨다. 전문가를 만나기 위해 보스턴에 있는 어린이 전문병원까지 찾아가기도 하셨다. 어머니는 아무리 피곤해도 내 앞에서는 절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가냘픈 팔과 다리, 엉덩이 등 어느 한 군데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주사바늘 자국이 빽빽한 아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온 신경을 쏟으셨다. 집을 떠나 있는 내가 불안을 느낄까 봐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애를 쓰신 것이다. 어린 내 눈에 비친 어머니는 지치지 않는 불사조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어머니가 얼마나 힘드셨을지 안다. 어머니는 나를 병마로부터 지키기 위해 크나큰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내 병은 발병할 때 징후 없이 나타나더니 사라질 때도 아주 불가사의했다. 그 원인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최근에야 선천적인 뇌종양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어머니는 내가 무슨 병으로 그리 힘들어하는지도 모른 채 반평생을 나를 간병하는데 바치셨다. 나를 가슴으로 낳은 당신이기에 더욱 마음 졸이며 사셨을 것이다. 나는 건강을 위해 운동도 할 겸, 정상적인 아이들과도 어울릴 겸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눈에는 내가 스케이트를 좋아할 뿐 아니라 소질도 있어 보였나 보다. 어머니는 내가 스케이트를 계속 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당신의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그 후 어머니는 휴학을 몇 번 더 해야 했지만 결국 학위를 땄고, 볼린 그린 대학의 교수가 되셨다.
그리고 학교에서 결혼생활과 가족문제에 대해 상담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에게는 정말 딱 알맞은 일이었다. 어머니는 생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하느님께 더 많은 시간을 부여받기도 한단다. 그러나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우리 손에 시간이 있을 때 1분 1초라도 충분히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어머니는 당신의 시간을 가족과 제자들, 손길이 닿는 데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선택하도록 돕는 데 최선을 다하셨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당신 걱정을 할까봐 당신의 근심과 고통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셨다.
내가 병으로 살이 너무 빠져 안쓰러울 정도가 되었을 때도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침내 다이어트의 왕도를 찾았구나.” 화학요법 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빠졌을 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새로운 머리모양이 어떠니? 이게 요즘 최신 유행이라는 구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다. 내가 스케이트를 계속할 수 있도록 후원자를 찾아주려 애쓰셨다. 내 인생의 무대에서 어머니가 퇴장을 하더라도 누군가가 그 역할을 대신 해주길, 병치레가 잦은 아들의 미래가 좀 더 확실해지길 진심으로 바라신 것이다.

어머니는 나의 재능에 대해 확신을 하셨다. 내게 성공에 대한 믿음을 심어 주셨고, 주문을 외듯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셨다. 나는 스케이트에 내 삶을 걸었다.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보답하는 길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스케이트로 성공하는 길밖에 없었으니까.
빙판 위에서 나는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내달렸다. 내 능력을 펼쳐야 할 때 최상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무엇보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기대가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앞을 내다보는 혜안이었음을 확인해서였다.
어머니의 믿음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날 밤 나의 경기는 오로지 한 사람, 내 어머니를 위한 것이었다.

그 후 나는 안타깝게도 병이 재발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교육은 아직도 나를 인도해 주고 힘을 준다. 다시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어머니는 화학요법 치료를 받을 때에도 좌절하지 않았고 낙관적이었으며 품위를 지키셨다. 어머니 생각을 하면 나도 견뎌낼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한 번 더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뇌종양 진단을 받은 순간 어머니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했다.
어머니라면 구름 뒤에 숨어 있는 밝은 태양을 찾아내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새롭게 생각을 전환할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는 암 선고를 받거나 혹은 더 힘든 상황에서도 운명이 자신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셨다. 그 대신 시련 속에서 강인해지는 법을 터득하고 자신을 단련시키셨다.

어머니는 언제나 강한 모습으로 새로운 날들을 선물처럼 즐겁게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인생에 적극적으로 다가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은 분이셨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걸어가신 어머니의 발자취는 나의 이정표가 되어 가슴 깊이 남아있다.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바람 부는 날에도 구름 뒤에서는 밝은 태양이 빛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가 우리에게 주어진 찬란한 선물임을 기억하세요. 비가 개인 후의 맑은 하늘을 기억하세요.”

뒤로월간암 200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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