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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 세포의 수명을 알려주는 텔로미어 시계
고정혁기자2010년 03월 16일 17:05 분입력   총 883207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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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 | 서울내과의원 원장. 저서 <암예방법과 치료법> <암 치료법의 선택> <희망을 주는 암 치료법> 등.
www.drcancer.or.kr 서울시 강동구 성내동 107-6
상담 전화 (02) 478-0035

우리 몸의 정상세포는 일정한 질서와 자율적인 조화를 이루며 분열․증식하다 수명이 다하면 노화하여 사망한다. 즉 인간의 모든 정상세포는 분열 횟수가 정해져 있어 50~100회 정도 분열하면 더 이상 분열하지 않고 늙어 죽는다. 그러나 암세포는 정상세포와 달리 분열의 한계가 없어 무제한 증식함으로써 생명을 위협하는 암이 된다. 정상세포는 정해진 수명이 있으나 암세포는 수명이 없어 죽지 않는 불사(不死)의 세포다. 이처럼 암세포가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의 세포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염색체는 분열을 거듭할수록 염색체의 양쪽 끝에 위치한 텔로미어(telomere)란 단백질이 약간씩 짧아진다. 이 텔로미어는 세포의 수명을 알려주는 시계 역할을 하여, 텔로미어가 어느 길이 이하로 짧아지게 되면 마지막으로 세포가 죽도록 ‘스스로 소멸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세포분열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되어 세포의 분열은 정지되고 결국 노화되어 죽게 된다.

반면에 암세포는 텔로머라제(telomerase)라는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를 가동시켜 텔로머라제 효소를 만들어내 텔로미어를 수리함으로써 암세포의 수명이 줄어들지 않게 한다. 따라서 암세포는 노화 과정이 정지되어 늙지 않는다. 즉 암세포가 늙지 않고 세포분열을 무한히 할 수 있게 되어 영원불멸의 세포가 되는 이유는 이 텔로머라제라는 효소 때문이다.

여기서는 텔로미어와 텔로머라제란 무엇이며, 텔로머라제와 인간 노화의 관계, 텔로머라제와 암의 관계, 그리고 텔로머라제 억제암 치료제의 특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세포의 수명을 알려주는 텔로미어 시계
1930년대의 유명한 유전학자의 뮬러(Muller)는 염색체 양 끝에 특수한 구조가 존재하며, 이 구조는 DNA가 서로 결합하는 것을 방지하여 염색체의 안정성을 높임으로써 염색체를 보호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뮬러는 이 구조를 염색체의 끝에 있다 하여 텔로미어라고 명명하였다. 텔로(telo)는 영어의 end란 뜻의 희랍어 telos에서 유래하며, 미어(mere)는 영어의 part란 뜻의 희랍어 meros에서 유래한 것으로 텔로미어(Telomere)는 말단 부위란 뜻이다.
인체의 각 세포 안에는 하나의 핵이 들어 있고, 이 핵 안에는 46개의 염색체가 들어 있다. 이 염색체는 실처럼 가늘고 긴 DNA(핵산)라는 물질이 규칙적으로 꼬여서 형성된 것이다. DNA는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이라고 하는 4개의 핵산 염으로 구성되어 있다.

1978년 미국인 학자 블랙 번(Blackburn)은 연못에 사는 작은 미물(Tetrahymena라는 단핵세포)의 염색체 끝에 존재하는 텔로미어의 구조가 예상 외로 아주 짧고 단순한 염기 배열이 계속 반복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후 여러 과학자의 연구 결과 사람의 텔로미어는 4개 핵산 염 중 주로 T와 G가 여러 번 반복되는 구조, 즉 TTAGGG라는 6개의 염기 서열의 짧은 DNA조각이 규칙적으로 반복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 인간 세포의 각 염색체의 양 끝에 존재하는 텔로미어는 TTAGGG라는 6개의 염기 서열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데, 세포가 젊은 시기에는 이러한 염기 서열이 약 1,000개 이상 있다. 정상인의 경우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10~20개의 염기를 소실하게 되어 그 길이가 점점 짧아지게 된다. 이처럼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지면서 세포는 노화한다.
약 50~100번 정도 분열하게 되면 텔로미어가 모두 소실되고, 텔로미어가 모두 소실되면 그 다음에는 염색체가 손상을 받아 결국 노화되어 죽게 된다. 텔로미어의 길이는 각각의 세포가 앞으로 몇 번을 분열하고 사망할 것인가를 나타내므로 이로써 각 세포의 수명을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텔로미어는 노화의 정도를 가늠하는 생체 내 분자시계인 셈이다.
이제까지 연구에 따르면 조로증(早老症)인 프로게리아(progeria) 환자의 평균 수명은 12년 8개월이다. 어린 시절이 없이 빨리 늙어버리는 이들 환자가 지닌 텔로미어는 보통 사람과 비교할 때 선천적으로 짧다. 이처럼 텔로미어가 짧으므로 수명도 단축된다.

1996년 7월 5일 오후 4시 영국 에딘버러에 있는 로슬린(Roslin)연구소의 이안 윌멋 박사가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탄생시킨 세계 최초의 복제 양(羊) 돌리(Dolly)가 정상적으로 태어난 양보다 빨리 늙어가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복제 양 돌리의 수명이 짧아져 일찍 죽을 가능성이 있는 것도 텔로미어의 길이가 같은 또래 양들에 비해 훨씬 짧기 때문이다. 복제 양 돌리라는 이름은 6살 난 어린양의 유방(乳房) 세포에서 복제됐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젖가슴이 큰 것으로 유명한 미국 컨트리 가수 돌리 파튼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고 한다.

인간의 모든 세포는 보통 분열하는 횟수에 한계가 있어 일정한 생존기간이 정해져 있는 반면, 암세포는 짧아지는 텔로미어를 다시 길게 해주는 텔로머라제라는 효소가 활성화됨으로써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노화 과정이 봉쇄되면서 암세포는 죽지 않고 무한정 세포분열을 일으켜 걷잡을 수 없이 증식하게 된다. 즉 암세포는 세포의 수명을 알려주는 텔로미어 시계가 가지 않는다. 이처럼 제때에 소멸되어야 할 세포들이 소멸되지 않아 발병하는 것이 암이다.

뒤로월간암 2009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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