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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 - 자연과 생명체, 그리고 치유력
고정혁기자2010년 04월 19일 12:49 분입력   총 879787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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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조 | 순리치유법 순리원·거제민속박물관 운영. 아동문학가.

생명체에는 치유력이 있다. 생명체에 치유력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생명체라고 할 수 없다. 자연은 치유력이 있다. 자연도 커다란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생명체가 치유력을 잃으면 그것이 죽음이다. 죽음은 생명체가 치유력을 잃을 때를 말한다.
생명체에는 자기재생력이 있다. 다시 말하면 생명체가 되는 첫 번째 조건은 자기치유력이 있어 우리 몸속에 들어온 세균 같은 이물질을 스스로 잡아먹고 정화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이 힘이 자기치유력인 것이다. 생명체에는 이 정화작용으로 자정작용이 생겨나 생명체가 늘 살아 있는 것이다. 자정작용이 없다면 얼마 못 가 죽고 만다.

한강물이 오염으로 죽어갈 때가 있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자정작용이 남아 있어서 살아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속에 이물질이 들어왔을 때 백혈구가 이 물질을 잡아먹어 자정작용을 해 줄 수만 있다면 그 세균은 죽고 몸은 깨끗해지니 살아날 수 있었다.

과학자들은 50년 전보다 이상 기온 현상이 10배는 더 나타난다고 한다. 남극은 이상 고온으로, 북극은 이상 결빙이 생긴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한쪽에 이상기온이 생기면 다른 한쪽은 그 비례만큼 또 다른 이상을 일으킨다. 한쪽에 강우량이 많아지면 다른 한쪽은 상대적으로 비가 내리지 않아 기갈이 생긴다. 이러한 현상은 바로 지구라는 큰 생명체가 몸살을 앓고 이상현상을 일으킨다는 말이다.

요즈음 “지구를 살리는 50가지 방법”이라는 책이 대단히 인기를 얻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환경오염에 시달려 자성하고 있기는 한데 아직도 이 지구가 어떻게 몸살을 앓고 이상현상을 일으키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피부로 덜 느끼는지 아니면 비뚤어진 인간성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큰 생명체인 지구가 파괴되어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생명체가 자정작용을 못 하게 된다면 이것은 여간 큰일이 아니다.

대자연의 섭리는 변함이 없다. 자연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우리가 자연의 순리를 속이고 순리를 역행하고 있을 뿐이다. 자연은 말이 없다. 자연은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이 되면 해가 진다. 한 그루의 나무는 봄이 되면 움이 트고, 여름이 오면 시원한 숲을 만들어 주다가 가을이 되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주고 겨울이면 앙상한 가지로 남는다.
이렇게 되는 것이 순리이다. 누구도 단 한 번도 이 순리를 어기려 들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는 벌은 고민할 틈이 없다. 누가 시키지도 않건만 열심히 일한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오직 자연에 순응할 뿐이다. 그들은 이 꽃 저 꽃을 옮겨 다니며 꿀을 모으지 않는다. 만약 꿀벌이 마음대로 옮겨 다닌다면 꽃들은 자연도태와 잡종으로 변해 생태계에 큰 혼란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들은 이 질서를 깨트리지 않는다.

메이플라우라는 새가 있다. 하와이에 사는 이 새는 7천Km 떨어진 알래스카 등 북극 지방에 가서 알을 낳고 어미 새는 털이 보송보송한 어린 새를 두고 떠나와 버린다. 이것도 어기지 않는다. 춥다 해서 다른 곳으로 변경하려고 하지 않는다. 뱀장어도 마찬가지이다. 연어, 송어, 숭어도 꼭 같이 귀소본능의 법칙을 따라 한 번 정해진 그 길을 변하지 않고 지키고 있다.
자연에 철저히 순응하는 삶이다. 이것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일이기도 하고 파괴자가 되지 않는 길이기도 하다. 파괴자가 없으면 피해자는 없다. 이것이 자연의 순수한 법칙이다.
자연은 피해자도 없고 가해자도 없다. 그러면서도 자정작용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나치게 번성하면 천적에 의해 줄어들어 생태계는 스스로 조절작용을 한다.

그런데 인간은 자연에 도전했고 자연을 역행하여 인간만이 유일하게 자연에 가해자가 되고 말았다. 대자연의 섭리는 가해자, 피해자가 없다. 그러나 자연의 가해자가 되면 가해자는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고 만다.
자연에 없는 가해자, 피해자를 누가 만들었는가? 인간이 만들었다. 지식이 이렇게 만들어 놓고 말았다. 지식이 가해자,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다면 자연의 순리에 따라가야만 하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못한 것이 인류를 불행하게 만든다. 이상기온을 만들고, 산성비가 쏟아지게 하고, 대기오염, 수질오염, 농약오염 각종 오염과 공해를 만들어 버리고 만 것이다. 답답한 일이다.

인간이 원하는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에게 모두 유익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자연의 자정작용을 막는다. 여기에 인간의 힘과 지식으로 억지로 자정작용을 시키면 자연의 가해자가 될 뿐이고 가해자는 반드시 피해를 입기 마련이다.

현대의학이 발전한다지만 현대의학의 힘으로 고치지 못하는 질병은 새롭게 생기고 늘어났다. 식량이 풍부해졌다고는 하지만 기아에 허덕이는 이들은 더 늘어났다. 인공 댐을 만들고 저수지를 만들어 전천후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가뭄과 수해는 더 늘어간다. 자연의 대순환을 어기고 역행한 결과 자연이 우리에게 거꾸로 가해자가 된다. 우리는 피해자가 된다. 자연을 가해했다가 우리가 지금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5% 선에 머물던 정신질환자가 오늘날 15%로 늘어났다. 비뚤어진 인간은 비뚤어진 사회를 만든다. 부르짖는 것만으로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 우리에게 이런 현상이 일어났느냐고 부르짖어도 소용이 없다. 고학력과 지식의 양은 늘어만 가는데 지식의 무거움이 오히려 사람을 비뚤어지게 만들고 있다. 지식은 번뇌를 만들고 실천을 못 하게 하고 있다.

자기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고 사회를 바꾸려고 한다. 자기 자신을 먼저 바꾸어야 한다. 말을 하면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옳은 말은 뱉으면 그 말에 자신의 생명을 내던져야 한다. 그러나 생명을 던지는 지식인은 많지 않다. 용어마저도 불확실성을 갖고 있다.
“그렇게 비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만 이렇게 여깁니다.” 하는 식의 온화한 말은 말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지성인들이 만들어 냈을 뿐이다.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말까지 만들어 공공연히 쓰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뒤로월간암 200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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