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에세이희망편지 - 이 생에서 얻어야 할 것들고정혁기자2010년 08월 26일 20:38 분입력 총 878941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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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중년 남자가 있다. 이 남자는 오래전 아내에 대한 사랑이 식었고, 자식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그의 출세를 도와줄 사람이나 높은 지위에 있어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외에는 친구가 없다. 그는 강남의 커다란 아파트에 산다. 이 아파트는 요즘 강남에 시대의 유행에 따라 새로 지어진 곳이다.
남자는 매일 밤, 강남의 고급 유흥가를 친구들과 다니지만 진지한 대화가 오가는 법은 없다. 또한, 가끔 경마장이나 카지노를 찾아 도박을 즐기기도 한다. 이 남자의 직업은 벤처기업의 사장이다. 운이 좋아 많은 돈을 벌게 되었고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중을 받는다.남자가 일에서 얻는 기쁨은 자만심이 주는 기쁨이었고, 친구들과 고급 유흥업소에서 얻는 기쁨은 허영이 주는 기쁨이었다. 반면 도박을 통해서 얻는 기쁨은 진짜 기쁨이었다.
그렇게 살아가던 중 나이 마흔다섯 살에 옆구리에 통증이 왔다. 통증은 점차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내로라하는 의사들도 치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병원만 아니라 여러 곳을 전전하는데 의사를 포함하여 병을 고치려 하는 많은 사람들이 값만 터무니없이 비싸고 효과는 없는 약을 여러 가지 처방해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곤해지고 장에는 불이 붙은 듯 통증이 생겼고 식욕은 떨어졌다. 본인 스스로나,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곧 그가 죽을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이러한 상황은 남자의 많은 동료에게는 슬픈 일이 아니다. 가깝던 회사의 부사장은 그가 죽으면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할 생각을 하고 있다. 주인공의 부인은 남편의 죽음 자체가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남편의 재산이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갈까 봐 걱정한다. 주인공의 딸은 자신의 결혼 계획이 엉망이 될지도 모른다고 불평한다. 이제 주인공은 이 세상에서 살아갈 날이 몇 주 남지 않은 시점에서 자신이 지상에서 얻은 시간을 낭비했고, 겉으로는 품위가 있지만 속으로는 황폐한 삶을 살아왔음을 뼈저리게 인식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성장, 교육, 일을 돌이켜 보며 다른 사람들 눈에 중요해 보이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자신의 이익과 감수성을 희생해 왔는데, 이제야 그들은 자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어느 날 새벽, 주인공은 통증에 시달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에 저항하고 싶다는 충동, 항상 억눌려왔던 그 모호한 충동이 어쩌면 정말로 중요한 것이며, 나머지는 모두 진짜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의무, 생활방식, 가족, 술친구들, 나의 분야에 속한 사람들이 고수하는 가치, 이 모든 것이 진짜가 아닌지도 모른다.’
짧은 인생을 허비했다는 느낌과 함께 주위 사람들이 사랑한 것은 나의 지위와 돈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 병을 얻고 곧 죽을 처지가 되니 번뇌와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데 누구의 사랑에도 의지할 수가 없었다.
주인공이 가장 괴로웠던 것은 아무도 그에게 동정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죽음을 앞두고 이제 병든 아이처럼 동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순간들이었다. 주인공은 누군가 안아주고, 입맞춰주고, 울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주인공이 숨을 거둔 뒤 이른바 친구들이 조의를 표하러 왔으나, 그의 죽음으로 인해 술값 잘 내던 친구가 사라졌음을 아쉬워할 뿐이었다. 한 친구는 주인공의 죽음을 보며 언젠가는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깨닫고 공포에 사로잡혔지만, 곧 이 일은 주인공이었던 회사 사장에게 일어난 일이며 자신에게는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된다는 것, 만일 그런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우울해질 것이라는 관습적인 생각으로 다시 편해질 수 있었다.위의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요즘 시대에 맞게 약간 변형해 본 것입니다. 이 소설을 통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세속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것, 술이나 도박보다는 진실과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죽음이 바로 눈앞에 있을 때 주인공은 지금까지의 삶이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왔음을 알게 됩니다.
요즘의 세상은 물질 만능주의로 치닫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돈이며, 돈 밖에 믿을 게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부자 되세요”라고 말하는 광고 문구는 돈 없는 사람을 죄인취급하고 저처럼 아이를 키우는 아빠들은 아이들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합니다. 이렇게 함께 흘러가며 대부분의 사람은 마음속에 불안이 자리 잡게 되고 그 불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증폭되어 갑니다.
암에 걸렸다는 것은 그 불안의 최고 정점으로 순식간에 사람을 올려놓지만 위의 이야기처럼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올바른 위치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진심으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비록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할지라도 누구도 비난하지 않고, 주위의 사람들 또한 진심 어린 애정을 보여줄 것입니다. 지난 과거의 부적절한 행동이나 생각을 바꾸고 단순하고 순진하게 지내는 모습은 암에 걸려 롱런하고 있는 많은 암 승리자의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죽음을 앞두고 우리가 정말 후회하는 일은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돈을 실컷 써보지 못해서, 산해진미를 맛보지 못해서, 좋은 집에서 살지 못하고 명품 옷을 입지 못해 아쉬워하지는 않을 겁니다. 물질만능시대라고 떠들지만 그럴수록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는 더 높아갑니다. 죽음 앞에서 치장은 사라집니다. 쥐고 갈 수 없는 돈 대신 가슴속에 무엇을 채워가시렵니까?
뒤로월간암 200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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