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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영역에 있는 암환자들
고정혁기자2010년 09월 01일 10:30 분입력   총 879513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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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욱 | 서울아산병원 방사선 종양학과 부교수

“교수님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며칠 전 진료실에서 아주 힘든 항암치료를 막 마친 50대 남자 환자께서 나에게 한 질문이다. 이 말은 “더 필요한 치료나 지시가 있으신지요?”나 “운동은 얼마나 해야 하나요?”와 다르지 않다. 퇴원 후의 생활지침을 묻는 말이다.
“이제까지 너무나 힘든 투병을 했으니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일단 일주일 집에 가서 쉬시고 다음 주에 봅시다”라고 대답했지만, 환자나 가족의 얼굴은 내 말을 이해하고 그렇게 따르겠다는 표정은 아니다. 아마 내 답변이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환자나 보호자들은 병원에 더 있다가 완전히 좋아지면 집으로 가겠다고 하는 분도 있다.

사람들이 살다 보면 누구나 아플 때도 있다. 이때 의료기관을 찾아 치료를 받게 되는데 치료의 최종목적은 병이 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사회적인 활동까지도 포함해서 말한다.
모두가 병원에서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되찾아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 바로 정상적인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모든 환자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암으로 진단받고 놀란 마음에 정신없이 힘든 투병 생활을 마치고 퇴원하는 암환자는 담당의사가 “치료가 잘되었다”라고 해도 마음이 불안한 것이 인지상정이다.

사실 의사들이 시원하고 확실하게 좋아졌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병이 발견되어 치료받고 병이 다 나으면 집으로 가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 되겠지만, 치료는 종료되었으나 집에 가기에는 2% 부족한 환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암과 투병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곧바로 정상생활을 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위의 암 환자처럼 힘든 투병생활을 한 환자들은 일차적으로 의사가 아무리 병이 치료되었다고 선언하더라도 몸은 예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좀 더 의료적인 보살핌을 받기 원한다. 그다음으로 자신이 생활을 잘못하여 병이 났다고 생각하는 환자들은 퇴원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 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가기보다는 새로운 지식으로 무장하여 좀 더 건강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위의 두 가지 경우 모두 병원에서는 환자가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런 경우 병원과 집 사이에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사실 우리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학교에서 집으로, 또는 학교에서 독서실, 다시 집으로. 이렇게 행동반경이 정해져 있었다. 비록 가끔 오락실이나 탁구장을 다니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사회가 변하면서 요즘 아이들은 학교에서 학원으로, 또 다음 학원으로, 그리고 집으로 오는 것이 일반적인 생활이 되었다.

다른 예를 들면, 산모들이 예전에는 집에서 아이를 낳다가 60, 70년대부터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집으로 왔다. 하지만 요즘은 의레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산욕기를 거치고 집으로 온다. 시설의 청결도나 서비스를 보면 깜짝 놀랄 정도이다. 산모나 가족들의 만족도도 높다. 사교육 문제가 국가적으로 심각한 지경에 학교와 집 사이에 학원이 꼭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산모에게는 병원과 집 사이에 있는 산후조리원이라는 중간 단계가 꼭 필요한 것 같다.

마찬가지로 힘든 투병생활을 마친 환자들에게도 병원과 집 사이에 경계영역에서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시설과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은 사회의 변화와도 관계가 있다. 예전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집에 환자가 있으면 그 환자를 보살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그렇지 않다. 특히 주부가 아픈 경우,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할까? 직장이 없으면서 건강하고 가까이에 사는 친자매나 친정어머니가 보살펴준다면 이상적이겠지만 현대화 사회에서는 항상 있는 케어기버(care giver)란 힘든 일이다. 이런 여성 환자들은 집으로 가는 경우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집에 있지 않아야 쉴 수 있는데 가정주부들이 집 말고는 딱히 갈 곳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 한 TV 다큐멘터리를 보니 암환자들이 투병하려고 숲으로 찾아가 눈물겨운 생활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누구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지도 않고 먹고 자는 것을 스스로 해결하면서 숲에서 자신의 병을 치료하려 하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을 군인으로 본다면 공수특전사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하나에서 열까지 스스로 해결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이런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암환자를 위한 요양병원 내지는 요양시설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지만 아직 수요에 비해 시설도 부족하고 프로그램에서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힐리언스 선마을에서도 암 치료를 받은 후 심신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프로그램이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암환자가 병원치료를 마치고, 혹은 치료 중간에 편안하게 쉬면서 필요한 도움을 받고 암 관리와 식이요법, 암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서 병원과 집 사이의 경계영역에서 힘들어하는 암환자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힐리언스 선마을 외에도 이런 새로운 시도가 건강한 우리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뒤로월간암 200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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