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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는 절대 말기가 아니다
고정혁기자2010년 11월 08일 18:03 분입력   총 881171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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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식 | 샘병원 통합의학센터 난치병 암 연구소장

위기에 처할 때의 반응은 사람마다 다양하지만 대체로 부정한다, 포기하고 무릎을 꿇는다,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등으로 나뉜다. 위기가 된 문제는 내 환경과는 무관하게 찾아오지만 관리하고 다스려가면서 인생은 배우고 자라며 성숙해진다.
문제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더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다루면서 처리하는 방법에 있다. 겉으로 보면 암환자 같아 뵈지 않는 4기 환우들이 많다. 실제로 암을 이겨낸 4기 암환자도 꽤 된다.

암 4기 진단을 받았다고 모두 똑같은 잔여수명과 똑같은 암의 진행속도를 갖지는 않는다. 표현이 좀 그렇지만 때깔이 아주 좋은 4기와 때깔이 안 좋은 4기가 있다. 암의 크기, 림프절 침윤, 전이 등으로 병기를 나누지만 비슷비슷하다. 병기가 진행될수록 암을 지닌 사람의 면역 등 방어력이 좀 더 망가졌다고 이해하도록 하자.
그러니 병기에 연연하지 말고 말과 글에 절대 속지 마라. 누구도 내일 일을 모르고 장담하지 못한다. 아니, 오늘 밤이라도 내 생명이 어찌 될지 알 수 있겠는가. 누가 명절에 집에 내려가며 부모님께 “오늘 고속도로에서 먼저 갑니다”라고 하직 인사를 하겠는가?

병원에서 듣는 남은 기간 몇 개월이라는 표현에 속으면 그날부터 온 집안은 초상집이 된다. 물론 오늘 죽어도 여한 없다는 사람에게는 속 시원히 준비하도록 그런 말을 고지해도 되겠지만, 가뜩이나 죽음이 두려운 사람에게 절망만을 심어주게 되니 보호자는 알아도 환자가 알 필요는 없다고 본다.

4기는 죽을 사(死)가 아니라 사기를 북돋는 의미로 받아들이자. 5기가 있다면 오기로 버티자. 우습지만 6기는 육갑 떨듯이 미친 듯 바보처럼 살면 되고, 7기는 칠칠하면 오히려 낫는다. 사적인 견해로는 4기는 말기(호스피스 수준의 정도)와 구별하여 표시하였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암 진단을 받았다고 절대 사형선고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절망 대신 희망의 동아줄을 잡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보호자도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는 절망에 차 있지 말고 자연치유력을 높이는 등 아직 해줄 것이 많다는 희망을 환자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괜히 수치에 좌절하여 무력해지는 것보다는 통계상 많은 생존자가 있다는 데 희망을 갖자. 또한, 통계가 나의 모든 것을 결정짓지 못할뿐더러 통계란 나 개인에게는 0%, 아니면 100%가 될 뿐이다.

수술이 불가능하다 해서 그 자체가 치료 불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포자기하지 말자.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해서 의학적 통계를 참고하는 것은 무방하나 비탄에 빠지지는 마라. 어차피 장기전이므로 검사가 좀 좋아져도 절대 들뜨지 말고 좀 나빠져도 절대 실망하지 마라.

검사 결과, 수치 하나하나에 희비가 교차한다면 면역만 떨어지고 삶의 질은 엉망이 되고 만다. 암표지자 증후군(표지자 변화에 따라 울고 웃는 증세)이 되지 말고 차라리 바보가 되라. 따지고 물고 늘어지고 집요하게 질문하기보다는 덜 예민하고 무던한 편이 훨씬 낫다.
암 진단을 수용하고 냉철하게 치료를 받되 예후까지 통계를 꼭 수용할 필요는 없다. 통계수치에 좌절하지 말고 희망의 눈으로 보아야 그 희망이 내 파트너가 되어 내 손을 잡아준다.
누구든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절대 잃지 말자.

뒤로월간암 200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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