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 전문가칼럼
완전한 몸-본성치유를 통해 얻은 가족의 성장
고정혁기자2011년 03월 11일 10:56 분입력   총 879830명 방문
AD

서재건 | 암대체요법 연구소 연구소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암전문병원 행복한 병원장 역임. 의료법인 성은의료재단 이사장.
문의 //amdoctor.or.kr / 070-8825-0675


진실한 공감이 하나됨을 이루게 하였다

그렇게 환자 부부는 함께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남편은 나와의 면담시 한 약속대로 회사에 한 달간 무급휴가를 신청하였다. 입원 당일 저녁식사와 회진을 마친 후 병실에서 부부와 함께 상담하였다. 아내는 성격유형상 자유로움과 감성을 충분히 누려야 건강해지는 성격인데 집에서 놀이방을 하겠다고 하여 시작된 스트레스가 너무 장기화된 것 같다고 말하였다. 여기서 분명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스트레스가 없이는 거의 대부분의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의 몸은 스스로를 지켜낼 치유력과 면역력을 유지한다는 사실이다. 결국 나는 장기적 스트레스가 동반되지 않은 암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하루 종일 어린아이들과 작은 가정집에서 지내는 동안 처음의 열정은 사라지고 감옥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가졌다고 했다. 활동적이고 자유로운 감성표현이 선천적인 성향의 사람으로서는 똑같이 변함없는 공간, 변함없는 일상,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감성을 누릴 수 없는 환경이 너무나 끔찍한 지옥 같았던 모양이다. 이렇게 지옥 같다고 느끼는 공간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스트레스는 더욱 가중되었지만 무슨 일이든 시작하려면 신중하고 일단 시작한 일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남편의 말(전형적인 ISFJ 유형)이 마음에 걸려 쉽게 그만 둘 수 없었다 한다. 그렇게 자신이 스스로 시작한 일을 스스로 그만둘 명분을 찾지 못한 채 5년이란 시간을 지내다보니 마음과 몸의 유기적 협력관계가 깨어져 면역력과 치유력이 발휘되지 않은 것이었다.

아내는 남편에 대한 미움도 컸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감정은 아랑곳없이 그저 최선을 다하라는 말만 하는 남편이 무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편과 양가의 집안 어른들이 모두 자신의 병이 암인 것을 알고 돕고자하여 이것을 해라, 저것을 해라 하는 것들을 거역하지 못하였지만 기분이 편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음 한편으로는 ‘그래 결국은 모두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잖아. 아무도 나를 도와주거나 내 아픔을 대신할 수 없잖아. 내가 아프다고 말하거나 항암치료를 받기 싫다고 말하면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 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저 치료 잘해라. 꼭 이겨내라, 용기를 잃지 말라고 할뿐이지 결국 이 고통은 나만의 고통이야. 나만의 고통일 뿐이라고…’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한다.

아내가 진정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었다. “나 힘들어, 나 좀 도와줘”, “나 답답해 누가 날 좀 이곳에서 꺼내줘”, “ 나 무서워, 이 병이, 수술이, 항암치료가, 방사선치료가 그리고 죽는 것이”, “나 외로워, 누가 좀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아내의 입에서 이런 말들이 나오리란 것을 꿈에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 남편은 당황했지만 나와 함께 아내의 내면의 소리를, 그 속사람이 느끼고 있는 깊은 상처와 신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내를 함께 위로하였으며, 남편이 아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하여는 내가 대신하여 설명하였다. 남편의 성향이 세심하고 사리분별력이 있는 성격이지만, 남편은 아내가 강하고 자존심이 센 여성으로 여기고 있었기에 다 잘 이겨내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고. 그리고 일관성이 있는 성격인 탓에 상처를 건드리지 않고 격려하기위해 한 말들이 아내에게 그런 상처가 될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이어 남편은 진심으로 아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을 눈물로 사과했다. 아내가 그렇게 감정적으로 상처가 있는 것을 몰랐던 것을 깊게 뉘우쳤다. 아내가 퇴근 후 자신과 함께 공원주변을 산책하거나 주말에 영화나 공연을 원할 때 매일 피곤해하면서 무슨 소리냐며 무시했던 것을 사과했다. 치료과정 중에도 아내의 마음을 살피기보다 양가 가족들의 의견을 중시하느라 아내의 감정적 필요에 무심했던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하였다.

감정적으로 하나됨이 치유의 힘이 되다

이렇게 두 사람이 지난 십여 년간 감정적으로 하나 되지 못했던 시간을 뛰어넘어 완전한 하나됨의 시간을 가진 후 나는 두 부부를 축복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두 사람을 왜 가족으로 만드셨는지를 깨닫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부인에게 우선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것을 권면하였다. 남편에게도 이성보다는 아내의 감정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하도록 권면하였다. 아내는 그 이후부터 자신의 생각을 먼저 감정과 진리에 일치시키기로 했다. 항상 마음과 감정을 살펴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리고 솔직하게 자신의 필요와 감정을 남편과 상의하도록 하였다. 그리곤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을 때마다 나와 상담하도록 하였다.

내가 이들 부부에게 내린 처방은 본성치유의 하나인 감성치유였다. 왜냐하면 아내가 상처 입은 인격의 영역이 바로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식사와 강의를 들은 후 두 부부는 함께 차를 타고 태안 전역을 관광하게 하였다. 물론 점심은 병원에서 미리 도시락으로 준비하여 주었다. 오후 기도회 시간까지 부부는 태안의 해수욕장, 수목원, 휴양림, 여러 관광지 등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데 주력하였다.

아내는 너무 행복해 했으며 병원의 직원들뿐만 아니라 다른 병실의 환자와 보호자로부터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다른 환자들은 나도 저런 남편의 사랑을 받아 받으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하며 시샘하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주말이 되면 가족들이 병원을 방문하였다. 그들은 너무나 밝아지고 건강해진 환자를 보고 놀라워했으며 나에게 찾아와 고맙다고 꾸벅 절을 하였다.

사실 내가 한 일이라곤 환자의 치유력이 소진되고 발휘되지 않는 감성영역을 판단하고, 남편을 포함한 가족들이 환자를 도울만한 열정적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여 깊이 그들이 감성적인 공감을 이룰 수 도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지성이 한 일이 아니다. 내가 비록 MBTI 분석경험이 많다 할지라도 언제나 부부를 하나의 감정이 되도록 돕는데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나를 통해 부부에게 필요한 것을 알려주도록 한 것이며 부부에게도 함께 역사하셔서 서로를 완전히 공감하도록 이끄신 결과다. 그러므로 감사와 영광을 받을 분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이 부분이 받아들여지고 믿어져야 이후에 언급할 영성치유가 이해될 수 있고 경험될 수 있다.

영적 공감은 강하게 전이된다

나는 이들 부부가 입원한 날 저녁 병원에서의 상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미 3년이 되었건만 너무나 생생하다. 병실을 들어가니 남편이 아내의 침대 곁에서 손을 잡고 있었다. 의자를 하나 내어 나도 병실 곁에 앉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만 했다. 그들 부부가 내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회진을 하러 온 것뿐인데 내 영은 이들의 영의 이야기를 들어야한다고 느꼈는가 보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가 2시간이 넘도록 길어진 것이다. 나는 아무런 목적과 의도가 없었으나 하나님이 내 입을 열게 하셨고 아내의 영을 깨워 진실한 내면의 소리를 제한 없이 풀어내게 하셨다. 남편도 아무 기대 없이 앉아 있다가 아내의 진실한 내면의 상처가 내뱉는 신음소리에 영이 깨여 회개하고 울고 용서를 빌게 된 것이다.

만약 일반적인 상담이었다면 단번에 이런 단계로 들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성공적으로 자신의 감정의 단초를 찾아낸다 하여도 완전한 공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여러 장벽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당시 우리 세 사람은 완전한 공감을 이루었던 것이다. 서로에 대해 어떠한 경계심도 없이 한 영 즉 성령에 의해 인도받으며 최고의 하나됨을 이룬 것이다.

병실을 나오며 나는“이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공감의 시작이 남편을 통해 시작되었는지, 아내를 통해 시작되었는지 혹은 나를 통해 시작되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이다.

이 공감은 이 부부가 입원해 있는 4주 동안 지속적으로 다른 병실의 다른 환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다른 병실의 환자와 보호자들은 매일 아침 강의시간에 그 젊은 아내가 좋아지는 것을 눈으로 보았으며 사랑의 감정의 회복이 아내를 정말 예쁘게 한다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다른 병실의 환자와 보호자들도 자연스럽게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게 되었다.

최고의 병원으로부터 외면당한 말기 암환자들만 있는 병원의 분위기가 밝아지고 희망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날 밤에 일어나 강한 감정적 공감은 병원 전체로 확대되었고 다른 환자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 돕는 치유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부부 사이에 나타난 변화

아내는 나날이 예뻐지고, 잘 먹었으며, 계속하여 빠지던 체중이 다시 늘어났다. 얼굴에는 첫 사랑에 빠진 10대 처녀에게서나 볼 수 있는 도화 빛이 피어났다. 그런데 남편은 점점 말라갔다. 왜 그럴까? 아내가 점점 좋아지는 것을 확인하고 있는 남편은 왜 자꾸 말라만 갈까?
사실 각 사람의 성정과 감정을 잘 이해한다면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남편은 ISFJ유형, 즉 임금 뒤의 권력형이다. 이 유형은 선천적으로 육체는 연약하게 태어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현실을 지혜롭게 다루는 능력이 탁월하다. 다른 사람의 필요나 조직의 필요를 잘 파악하고, 사람의 감정을 잘 파악하는 능력을 선천적 재능을 타고난 유형의 사람이다.

아내는 직관형이라 현실적 대처능력이 떨어지는데 오랫동안의 암투병으로 인해 더욱 현실감각이 퇴화되었다. 게다가 선천적으로 감정적인 성향으로 태어났는데 오랫동안 감정적인 상처로 인해 감정조절능력도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보니 스파크형인 아내의 감정은 고조된 기쁨의 감정에서 극심한 우울의 감정까지 진폭이 큰 경향성이 더욱 심했다.

남편이 챙겨주는 대로 유기농 식품을 잘 먹던 아내가 간혹 비이성적이고 몸에 분명히 나쁠만한 라면을 먹고 싶다고 말하거나 채식위주의 식사를 하도록 권유받았는데 회를 먹고자할 때 남편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처음에는 아내를 달래다가 도저히 설득이 안 되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남편의 심정을 위로한 후 아내와 직접 통화하여 절대적으로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철저한 식이요법을 강하게 주장하기보다는 그녀의 감정을 지지하고 조심스럽게 식이요법의 변형된 형태를 취하였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다른 대부분의 암환자에게는 철저한 식이요법을 권유하고 있다)

이것을 남편이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나는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그녀의 선천적 경향성인 감정을 존중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바로 환자 곁에서 간병하는 남편의 심적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살이 빠지고 얼굴이 핼쑥해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가족들에게 나타난 변화

가족들은 매주 토요일 오후에 3시간 정도 면회를 와주었다. 환자가 매주 볼 때마다 놀랍게 건강해져가자 가족들은 드디어 나의 진료를 신뢰하게 되었다. 한 주말에는 캠코더를 가져와 방문객들마다 돌아가며 환자에게 완쾌를 기원하는 말이나,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게한 후 그것을 녹화하여 환자가 그것을 보며 행복해하도록 격려해주었다. 얼마나 멋진 가족들인가?

감성이 환자를 치유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는 가족들이 할 일들이란 거의 없었고 무엇을 했어도 실제로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일반적으로 보호자들이 하는 행동은 이렇지 않은가?

힘내라. 용기를 잃지 마라. 얼마나 힘드니. 뭐라도 많이 먹고 힘이 있어야 암을 이길 수 있으니 어서 먹어라. 00병원이 용하다더라. 그곳에 진료예약을 해줄까? 이것이 암에 특효라는 식품이라기에 가져왔다 먹고 힘내렴. 아무것이나 먹지 말고 의사가 하는 말만 믿어. 항암치료를 하면 부작용이 심하다는데 어떡하니. 이런 머리가 다 빠졌네? 많이 힘든가 보구나. 한방병원의 보약을 먹으면서 항암치료를 해야 하니 꼭 챙겨먹어라. 집안일은 걱정 말고 네 건강이나 신경 쓰렴. 지난번에 같은 병실에 입원했던 00는 지난주에 죽었다더라. 무조건 걸어야 산다더라. 매일 만보씩 꼭 걸으렴. 그렇게 못 먹어서 어떡하니 제발 이것 좀 먹어봐라. 도대체 치료할 생각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이렇게 안 먹고 누워있기만 하면 어떡하니? 등.

안타깝게도 이런 가족들이나 방문객들의 말은 환자의 감성을 다운시키고, 더 책임감을 지어주는 것이고, 용기를 꺾어 좌절하게 만드는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병과 관련된 모든 말들이 환자의 치유의지를 꺾는데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가족들의 모습은 어떤가? 물론 이들도 자세한 환자를 대하는 요령을 배우지 못했을 때는 앞의 방식으로 환자들을 돕고자 하였다. 그러나 환자를 돕는 방법을 알게 된 후에는 훨씬 지혜로워졌다.

지혜로워진 이유는 첫째, 환자의 몸에서 치유가 일어나야 한다는 원칙을 알았기 때문이며 둘째로는 환자의 선천적 본성이 감성적이라 감성적 영향에 매우 민감하단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며, 셋째로는 구체적으로 병을 연상시키거나 관련되지 않는 방법으로 감성을 나누는 방법에 대하여 처음 방문시 찾아왔던 20명의 가족들이 나의 설명을 듣고 다 이해하였기에 서로 지혜를 모아 병문안을 계획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즉, 환자를 돕는 방법을 정확히 배우고 알았기 때문이다.

본성치유를 통해 얻은 온 가족의 성장

이 가족들은 경험을 통해 암이 왜 걸리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암의 원인이 단지 음식을 잘못 먹거나, 가족력이 있거나, 큰 유해환경에 노출되거나 하는 것 이외에 숨겨진 원인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사실 모든 생명체는 사실에 반응하기보다는 감정에 반응한다는 진리를 알아야 한다. 생명체가 아닌 것들은 눈에 드러난 사실적 증거로 기준을 삼아야하지만 생명체는 감정과 느낌이란 기준이 면역력과 치유력의 척도가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다 이 진리를 알고 있으며 매일 경험하고 있다. 좋은 음악을 듣고 자란 식물이 성장이 빠르고 병해에 강하기 마련이다. 사랑과 칭찬을 받은 아이가 더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는 것도 당연하다. 반면에 부모나 선생의 조급한 성정에 따라 아이의 본성을 무시하고 억압하면서 좋은 음식을 많이 먹이고 많은 공부를 강제로 시켜도 자신의 체력이 되거나 실력이 되지는 않는다.

가족들은 이 귀한 경험을 통해 암을 예방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자신의 속사람과 겉사람을 일치시키는 것이며 특히 생각과 감정을 하나 되게 하기위해 최대한 스스로에게 정직해지는 것이다. 진정으로 가족을 사랑하고 위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 방법이란 내 본성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본성에 맞추는 것이었다. 본성에 따르지 않는 현대의학만으로는 암을 치유할 수 없다는 사실도 새로이 배운 것이다.

이제 그들은 앞으로 집에서도 여전히 암환자를 건강한 가족으로 대하며 치유를 도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단 한 달만의 성과로 보기에는 너무 환상적이지 않은가? 지난 5년간의 치료에 비해 너무 대조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더 이상 가족들은 환자 앞에서 애써 슬픈 표정을 지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진실하게 사랑하고 풍부한 감성을 나누면 되는 것이다. 만일 환자의 고통이 느껴지면 그 고통을 공감하며 슬피 울 수 있다. 그것은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환자는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아픔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당연히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아주 좋은 치료가 된다.

그렇지만 그 고통이 자신으로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라면 애써 울상이 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울상을 지어본들 환자와 자신에게 모두 어색할 뿐이다. 오히려 환자의 기분을 올리기 위해 유머를 준비하고 연습하여 웃게 해주는 것이 좋다. 말로 하기 쑥스러워하거나 관계 형성에 익숙지 않은 가족이라면 편지를 쓰거나, 사진이나 캠코더를 이용해 좋은 추억의 영상기록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도 있고, 약간의 정성과 돈을 들여 환자가 먹을 수 있는 유기농 식품들을 꾸준히 제공할 수도 있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해주는 것이다.

한데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상대방을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표현할 때는 무엇인가를 주거나, 대신 해주거나 하는 것으로 대체하여 표현한다. 자신의 사랑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데 정말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것 같다. 결혼한 부부가 평생 사랑한다는 말도 안 하고 살거나 집에서도 키스나 포옹하는 것을 어색해하는 등 사랑의 직접적 표시를 안 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한국인들의 절반 이상이 감성적인 성향이 강한데 이들이 주로 만성병이나 난치성 병을 앓고 있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상대방이 직접 느낄 수 있는 감성적 표현의 부족 때문이라고 본다. 만약 이들이 충분한 감성적 표현의 풍부함을 누릴 수 있다면 병이 걸려도 급성병에서 치료되고 말지 만성병, 불치병 그리고 암으로 발전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뒤로월간암 2010년 3월호
추천 컨텐츠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