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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이 초대한 반갑지 않은 생명체
고정혁기자2011년 04월 30일 14:54 분입력   총 878471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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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동물처럼 단순한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유기적인 존재요,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암 치료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주다 포크먼 박사가 2008년 1월 타계했습니다. 그는 하버드대학 의대 교수이자 보스턴 아동병원 혈관생물학 연구실장으로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는 학술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덴버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려고 하던 중 심장마비로 별세한 것입니다.

포크먼 박사는 1998년, 종양에 대한 혈액 공급을 차단하는 안지오스타틴과 엔도스타틴이라는 새로운 물질을 개발해 쥐의 종양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뉴욕타임스> 1면 머리기사로 크게 보도된 바 있습니다. 이 소식은 한국에서도 1면 머리기사로 보도되었습니다. 1998년 5월 5일 어린이날을 강타한 <조선일보> 기사 가운데 일부입니다.

‘왜 암이 말끔히 제거된 환자에게서 몇 달 뒤 애초 안 보였던 다른 전이암이 나타나 생명을 앗아가느냐’는 질문은 무려 100년간 암 연구학자들을 괴롭혀 온 의문이기도 했다. 그는 89년 이에 대해 ‘큰 암 덩어리가 다른 조그만 전이암은 성장하지 못하도록 혈관 신생을 막는 억제제를 생성하지만, 수술로 애초의 암이 제거되고 나면 이 억제제도 없어져 다른 암들이 마구 성장하게 되는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포크먼 박사팀은 실제 쥐 실험에서 큰 암덩어리가 작은 암들의 성장을 억제하는 것을 확인했고, 인체 내 단백질인 플라스미노겐에서 이 억제 물질 안지오스타틴을 발견했다. 이 결과 이 억제 물질 안지오스타틴을 일단 암 덩어리가 제거된 쥐 20마리 중 10마리에게 주입하자 전혀 2차 전이암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 반면에 나머지 10마리에는 모두 또 다른 암이 번져 있었다.
포크먼 박사팀은 이어 암이 생성하는 또다른 단백질 물질이자 전이암을 더 강력하게 막는 엔도스타틴이라는 억제제를 발견했다. 엔도스타틴을 계속 주입하면 암 크기는 무해한 수준으로 축소돼 끝까지 유지됐다. 더욱이 다른 화학 치료제와 달리 엔도스타틴의 경우 암이 전혀 내성을 갖지 못했다.

이제 다음 차례는 이들 두 혈관 신생 및 전이암 억제 물질이 갖는 위력을 합성하는 단계. 포크먼 박사는 두 물질을 합쳐 25일간 쥐들에게 주사한 결과 “암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고, 현미경으로도 찾을 수 없어 완전히 제거됐다”고 밝혔다.
이 두 물질의 또 다른 장점은 치료에 따른 부작용이 최소한 쥐에게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

포크먼 박사팀은 지난 4년간 쥐를 상대로 이 두 물질의 실험을 거듭한 결과, 피부암을 포함한 각종 형태의 암을 완전히 제거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결론에 대해 미 국립암연구소를 비롯해 이 실험 결과를 함께 지켜본 미 의학계 인사들은 한 마디로 “실험 결과가 경외스러울 정도”라는 반응을 보였다.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암 권위자인 제임스 왓슨 박사는 “포크먼 박사가 2년 내 암을 치료해 낼 것”이라며, “그는 이제 찰스 다윈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문명을 바꾼 과학자들의 대열에 끼게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경고의 목소리도 높다. 그동안 암 연구가 쥐 실험에서는 뛰어난 효험을 보였지만, 실제 임상 실험에서는 실망적인 결과를 보인 예가 많았다는 것. 포크먼 박사도 “쥐라면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지만 인간에 대한 효과를 예측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다.

이 소식이 전해진 당시에는 3~5년 이내에 모든 암이 박멸될 것 같은 전율을 느꼈지만, 문제는 그 뒤로 아무런 소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결과는 뻔합니다. 환자를 실망시킬 뉴스는 보도하지 않는 게 예의입니다. 포크먼 교수가 개발한 안지오스타틴과 엔도스타틴이라는 항암제는 동물에서 모든 암을 박멸시켰을지 모르나 그동안의 임상 실험 결과 사람에게는 효과가 미미했습니다.

포크먼 박사의 실험을 왜 사람에게는 적용할 수 없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동물 실험에서는 발암물질을 동물에 주입하여 억지로 암을 만들어 냅니다. 이 경우, 암은 외부의 침입자이기 때문에 모든 면역 체계가 총동원되어 이를 저지합니다. 그래서 동물 자체의 모든 시스템은 암을 배격하는 쪽으로 에너지가 집중합니다. 동물의 경우, 암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고 몸이 암을 거부하는 쪽으로 총력전을 펴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항암제를 주사하면 당연히 암은 줄어들거나 박멸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경우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사람 몸에 있는 암은 나쁜 생활 습관과 외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말은 인체의 모든 시스템이 암을 지지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암은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굳게 믿습니다. 암이 생길 수밖에 없는 시스템 그리고 암이 이길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서 아무리 강한 항암제를 쓴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암이 인체 내의 생명 현상에 필수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상태에서 초대받지 못한 손님을 쫓아내는 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암을 치료하려면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암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암은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 의학 기술의 발달과 전혀 무관하게 지금도 암은 극복할 수 있는 병이다. 단, 조건이 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우리 스스로 ‘암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일이다. 두 번째로 병원의 의료 서비스가 철저하게 환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동안 암 병동은 ‘죽음의 대기 장소’ 혹은 ‘절망으로 둘러싸인 죽음의 교도소’ 쯤으로 여겨져 왔다. 병상에서 허망하게 죽어가는 죽음이 암에 대한 오해를 확신시키고 공포를 증폭시키며 의료계와 보험업계와 미디어의 이익에 의해 다시 재생산되는 과정을 거쳐, 암이라는 모두 벌벌 떠는 현실을 만들어 온 것이다.

아주 극소수의 암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암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제 몸집을 키우는 데 급급하다. 암도 생명의 일부인지라 모체를 죽이면 자신도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을 제어할 브레이크가 없을 뿐이지, 암이 지닌 ‘살해 본능’은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다.

그러나 암환자는 암 때문이 아니라 공포 때문에 또는 영양 결핍에서 오는 합병증으로 숨을 거둔다. 환자 스스로 몸을 돌보고 치유할 수 있는 희망을 품는다면 암은 얼마든지 정복할 수 있는 병이다. 절망에 빠져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암에게 진 것이 아니라 암의 공포라는 보이지 않는 유령에게 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암은 없다>, 황성주, 청림출판

뒤로월간암 201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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