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에세이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고정혁기자2011년 06월 17일 16:14 분입력 총 879307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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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 한 사람이 나무를 꺾다가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돌과 돌을 부딪쳐서 돌의 끝을 날카롭게 하면 나무를 꺾는 일이 아주 쉬울 거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곧장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나무를 꺾는 일이 한층 수월해졌습니다. 바로 인간이 만들어낸 최초의 물건인 돌도끼의 탄생과 더불어 석기시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후부터 인간은 정말 많은 것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주위를 둘러보니 인간이 만든 것들로 온통 둘러싸여 있는 것 같습니다.
1976년 영국의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 박사는 밈(Meme)이라는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밈은 사람이 만들어낸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밈도 유전자처럼 진화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는 '지구에 존재하는 것은 유전자와 밈(meme)이 전부 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글자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같은 예술부터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만들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를 살면서 많은 것을 만듭니다. 새로운 밈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친구에게 보내는 문자 한통까지도 모두 밈의 범주에 속합니다.
인류가 최초로 만들어낸 도끼는 인류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최초의 도끼를 만든 사람의 의도는 단순히 일을 좀 더 편하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 외의 다른 의도로 돌과 돌을 부딪쳐서 돌도끼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요즘과 같이 복잡한 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어떤 밈을 만들 때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의도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야기한 밈(meme)이라는 개념은 유전자처럼 진화하는 특성이 있어 '그 사람', 혹은 '그 물건'의 의도 역시 함께 진화하기 때문입니다.
암(癌)이라는 병을 생각해보면 암이라는 병이 늘어난 것만 아니라 암이라는 밈(meme)도 진화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암이라는 병은 아주 희귀한 병이었습니다. 물론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이 부족하여 암에 걸린 줄도 모르고 앓다가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았겠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처럼 100만 명에 육박하는 암환자가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암환자의 증가와 더불어 병원의 의료장비는 최첨단을 달리게 되었습니다. 최첨단의 방사선 기기인 토모테라피니, 사이버나이프니 하는 것들은 그 장비의 구조만으로도 인간이 이룩한 과학적인 진보에 감동하게 됩니다. 표적치료제와 같은 항암제는 더는 암으로 고통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은 희망을 줍니다.
암을 치료하는 모든 방법은 어차피 인간이 만들어낸 방법이기 때문에 그 치료법의 탄생을 알게 되면 치료법을 만든 사람의 의도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 의도에 따라서 치료법이 진화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암에 걸리면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이 말은 곧 인간이 만든 것들로부터 멀어지라는 뜻입니다. 나의 삶이 밈(Meme)에 종속적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밈의 주인이 되라는 뜻입니다. 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인간의 창조물들은 모두 인간에게 이로운 것들이었지만 과학이 발전하면서 만들어지는 인간의 창조물들은 인간에게 이로운 것만 있지 않으며 오히려 사람을 옥죄기도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약간의 분별력만으로도 눈앞에 있는 밈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것입니다.
호주의 원주민들은 바다에서 육지로 매년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며 몰려오는 우기를 거대한 뱀이 구름 속에서 짝짓기하며 비가 내리게 하는 것이라고 상상했습니다. 그 당시 그 원주민들이 아는 것을 토대로 매년 일어나는 현상을 가장 의미 있게 설명하는 가설이었습니다.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비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천둥과 번개가 치는 우기를 하늘과 땅의 기온차이와 증기냉축, 바람 속도 등을 토대로 설명합니다. 이 이론은 뱀 이야기보다 우리에게는 훨씬 타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후의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뱀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원시적인 이야기라 할지 누가 알겠습니까? 암의 치료를 첨단 기계 장치나 신약에만 의지한다면 미래의 후손이 듣는 뱀 이야기가 되지는 않을까요?뒤로월간암 201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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