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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병을 일으키나
고정혁기자2011년 07월 06일 14:59 분입력   총 874773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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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질병에 하나의 원인이 있다는 생각은 합리적 관점이 아니라 체계적 신념에 가깝다. 결핵균이 결핵에 걸리는 데 필요한 원인이라도 결핵균을 보유한 사람이 모두 결핵에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같은 원리로, 폐렴 연쇄상 구균은 폐렴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입 안에 이미 폐렴 연쇄상 구균이 살고 있음에도 그들은 폐렴에 걸리지 않는다. 건강한 성인의 5~10퍼센트, 건강한 아이의 20~40퍼센트가 폐렴 연쇄상 구균을 보유하고 있다. 비슷하게, 열원충(기생충의 일종)이 말라리아를 유발하고 학질모기가 열원충을 전파한다. 그런데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1940년 육군이 연구한 결과, 공습 위협과 같은 심리적 압박이 발병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승리한 부대보다 패배한 부대에서 발진티푸스와 이질이 훨씬 더 확산된다는 것도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임상 연구는 다음과 같은 사실도 밝혀냈다. 서로 다른 요인이 감염 위험에 대한 개인의 반응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세균 감염 외에 질병의 발생과 경과를 설명해줄 다른 요인이 있다. 여러 감염균에 노출된다고 해서 정말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잘 아는 궤양을 살펴보자. 1980년대 초에 밝혀진 사실은 상당히 유명하다. 학자들은 수년간 노동 스트레스 같은 심리적 요인을 연구하다가 박테리아를 발견하게 되었다.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가 위에 있을 때 궤양이 일어났다. 그런데 1983년 이 사실을 처음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비웃었다. 식단과 스트레스 같은 요인이 궤양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며, 박테리아는 위산이 있는 곳에서는 당연히 자라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베리 마셜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접시에 배양해 놓은 헬리코박터 균을 마셨고, 자신의 예언대로 위염에 걸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박테리아(원인)가 위궤양(결과)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정말 발견된 것처럼 보였다. 박테리아가 주범이라는 단일 원인 모형이 곧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다시 말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가 궤양을 일으키므로, 궤양을 치료하기 위해 항생물질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곧 다음과 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세계 인구 가운데 3분의 1에서 3분의 2가 위장에 헬리코박터 균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들 모두가 위염이나 궤양에 걸리지는 않는다. 궤양 발병 사례의 15퍼센트는 장에 헬리코박터 균이 전혀 없었다. 흥미롭게도 마셜은 2005년에 궤양의 원인을 연구한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았다. 언론은 이에 대해 1980년에 마셜이 매우 절박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사람들이 마셜의 주장을 무시하자 그가 극단적으로 헬리코박터 균을 마셔버렸다는 것이다. 그의 아내와 가족은 정말 겁에 질렸다. 이 사실은 무엇을 암시할까? 마셜도 처음부터 조금은 긴장하고 불안했다는 뜻이 아닐까? 박테리아가 마셜에게 위염을 유발했다는 사실은, 박테리아가 어떤 병을 유발하려면 정신적으로도 긴장해야 한다는 증거도 되는 것 같다.

마셜의 사례에서 단일 원인 모형은 어떻게 되는가? 상황은 상당히 복잡하다. 면역과 기질, 저항력 같은 요인까지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병을 일으키는 요인을 얼마나 더 고려해야 할까? 이런 요인들은 도대체 몇 개나 더 찾아야 할까? 신문과 텔레비전이 자살을 보도할 때 자살률이 높아지므로 언론 보도도 자살 '원인'에 포함시켜야 할까? 아니면 아예 '원인'을 말하지 말고, 원인을 사건의 상관관계라는 말로 바꿔야 할까?

우리는 병에 걸리는 과정이 이렇게 복잡하다는 것을 안다고 하면서도, 단일 원인에 계속 끌리는 것 같다. 우리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면서 사태의 복잡성을 인정하지만, 실제로는 사태가 너무 혼란스럽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왜 아플까>, 대리언 리더, 데이비드 코필드, 동녘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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