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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우들과의 하룻밤
고정혁기자2011년 08월 26일 16:57 분입력   총 880780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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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1일~12일, 1박2일 일정으로 암환우들과 캠프를 다녀왔습니다. (주)고려인삼공사의 후원을 받아 매년 6월 초에 진행되는 캠프인데 벌써 3회째를 맞이했습니다. 집과 요양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짧지만 캠프에서는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구로역에 삼삼오오 모여 오늘 캠프 가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어서 잠을 설쳤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어은돌에 도착하니, 눈앞에 펼쳐진 넓은 바다와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 낸 갯벌, 맨발로 뛰노는 사람들, 멀리 보이는 등대와 둥실둥실 떠있는 고깃배. 여기저기서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점심 시간입니다. 환자라고 입맛이 없다고 누가 그럽니까? 된장국에 김치와 푸성귀 등 차림상은 단출한데 기본 두 그릇입니다. 저는 속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아니, 다른 환자들도 그런가. 우리 암환우들은 매번 왜 이렇게 잘들 드실까.' 먹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번집니다. 식사를 마치고 바닷가를 산책합니다. 사진도 찍고 깔깔대며 웃는 모습이 딱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온 소년, 소녀들입니다.

드디어 박금순님의 웃음치료 시간입니다. 직장암이지만 앞으로 50년을 목표로 투병하신답니다. 일반인들이 보면 이상해 보일수도 있는 동작과 웃음소리가 왁자지껄하게 울려 퍼집니다. 시간이 언제 가는지도 모르게 흘러갑니다. 울어도 눈물이 나지만 웃을 때 나오는 눈물은 걷잡을 수 없습니다. 참을 필요도 없습니다. 웃음보가 다 터져서 사라질 때까지 그냥 같이 웃으면 됩니다. 아무 걱정도 없고 아프지도 않습니다.

웃음치료가 끝나고 자원봉사를 나온 분들은 저녁을 준비합니다. 숯불을 피우고 야채를 썰고 50여 명이 먹어야 할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저녁식사는 조개구이와 갓 잡은 싱싱한 자연산 생선회와 갑오징어, 그리고 매운탕과 싱싱한 야채들입니다. 모두 웃고 떠드느라 배가 고팠나 봅니다. 탁자 위에 음식을 갖다 놓기가 바쁘게 사라집니다. 저는 서빙을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모든 걸 잊고 맘껏 드시고 기운 내라는 기원을 담아서 음식을 분주히 나릅니다.

저녁을 먹고는 서로의 투병이야기를 공유하는 시간입니다. 투병한 지가 몇 년이 지나 나름의 노하우가 있는 암환우도 있고, 초보 암환우도 있습니다. 수첩을 꺼내어 서로의 이야기를 메모하기도 합니다. 특히나, 암에 걸려서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용서했다는 환우의 이야기는 모두를 숙연하게 합니다. 말기암에서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물어보니 한결같이 용서하고 사랑하고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라고 이야기합니다. 함께 온 초보 암환우도 언젠가는 그들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고 공감하게 되는 순간이 오시기를 바라봅니다.
어느덧 밤은 깊어갑니다. 밤바다를 거닐며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 아픈 마음을 보듬어줍니다. 우리는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과는 또 다른 새로운 가족이기도 합니다.

다음날 아침. 자원봉사를 나온 고려인삼공사 직원들은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암환우들은 도란도란 또다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아침부터 무슨 할 말들이 많은지 작은 방은 새벽 5시부터 시끄럽습니다. 어느덧 바다와 등대와 이별할 시간입니다. 작년, 재작년에도 왔는데 그때 같이 왔던 암환우들의 얼굴이 선명합니다. 작년에는 참석했지만 이번에는 참석 못하신 분들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일 년이 우리 암환자에게는 참으로 긴 시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이곳에서의 하룻밤이 즐겁고 행복한 꿈만 같습니다. 이제 꿈에서 깨어나 다시 일상으로, 현실로 돌아갔을 때 충전된 행복한 꿈으로 용기 있게 투병생활 해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염원을 바닷가 조약돌에 묻어 두고 내년을 기약합니다.

마지막으로 매년 캠프를 함께 해준 고려인삼공사와 식사를 준비해 주신 직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뒤로월간암 201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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