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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도암 8년의 기록 - 파란만장한 투병
고정혁기자2011년 12월 26일 10:39 분입력   총 863805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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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경식


2004년 7월경에는 농촌진흥청에서 1박2일로 농사일, 야채 기르는 교육 등을 받았다. 주말농장을 빌려 모든 채소를 길러서 먹게 되었고 야채스프 만드는 재료도 직접 길러서 해먹게 되었다. 그동안은 유기농으로 야채스프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를 유기농 판매점에서 구입해야 하는데 많은 양이 없어 여러 곳을 찾아 다녀야하니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직접 내 손으로 길러서 만들어 먹으니 번거롭기는 해도 약효도 더 좋은 것 같은 생각까지 든다.


그러다 12월 하순경에 음식물이 내려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그런 다음 밥을 먹게 되었다. 이전에는 모든 음식을 갈아서 먹었는데 그것마저도 목에 힘을 주지 않으면 넘어가지 않았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음식이 내려가는데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서서히 통증과 목에 걸리는 증상도 사라지고 몸무게는 조금씩 불어나게 되었다. 매일 야채스프요법, 현미스프요법, 커피관장, 식이요법, 등산과 웃음치료요법의 반복이 일상생활이었고 스트레칭과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기도도 빠트리지 않았다.


2004년, 확실한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7, 8월경에 이런 일이 있었다. 대변을 보고 난 후에 뒤처리는 물을 이용해서 닦는 습관이 있어 물로 뒤처리를 하는데 항문에서 무엇이 잡히는 것이다. 나는 행여 이것이 암인가 하는 생각에 항문외과를 찾아 진찰을 하였더니 치질이었고 수술을 하게 되었다. 약이나 항생제 주사는 몸에 좋지 않다 하기에 수술만 끝내고 약과 주사는 맞지 않으니 의사선생님이나 간호사 선생님께서 날 정말 독한 사람이라 했다.


또 잊지 못할 사건이 있다. 2005년 2월경에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져 목을 다쳐 정형외과를 찾았다. 병원에서는 CT촬영을 해서 아픈 부위를 확인한다고 했는데 나는 암환자니 촬영하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촬영을 하지 않으면 치료가 불가능하니 환자에게 큰 부담이 없는 MR 촬영이라도 하자고 하셔서 그럼 기왕이면 목을 찍는 김에 식도 쪽도 보이게 촬영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목에 있던 통증도 없어지고 살도 오르고 혈색도 좋아 누구나 건강해 보인다고 말해줬지만 속으로는 늘 궁금했었다.


식도의 암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기왕 촬영을 한다면 이참에 식도의 암도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없어졌을까, 아니면 조그맣게 줄어들었을까, 어쩌면 그대로 있을까, 맘 졸이며 기다리는데 의사선생님이 오시더니 악수를 청하시는 게 아닌가. "축하합니다. 암이 없습니다." 그때의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할 길이 있을까. 평생 그토록 감사하고 행복한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너무나 기분이 좋아 아내에게 전화로 암이 없어졌다고 알려주었다. 아내는 한 걸음에 병원으로 달려와 의사선생님을 뵈었고 의사 선생님은 환자 본인과 가족들의 관리, 생활이 잘 되어 얻은 결과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다친 목에는 기브스를 하고 이번에도 약과 항생제 주사는 맞지 않고 행복한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돌아왔다.



몸이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되자 나는 가게를 해보고 싶은 맘이 들었다. 그러나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그러지를 못하고 매일같이 산과 집을 오가는 생활을 하다 보니 다시 예전의 생활습관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2005년 3월 나는 이상구 박사 세미나에 2차 참석을 하게 되었다. 접수대에서 접수하면서 나는 내 병이 식도암 4기 진행성인 것을 알게 되었다. 2004년 6월경에 같이 한방에서 생활하신 분의 소식을 물어보니 2004년 8월경에 사망하셨다고 한다.


세미나 봉사자분이나 직원들이 한마디씩 한다. 2004년 여름에 오실 때는 금방 돌아가실 분 같았는데 이렇게 건강해져서 오셨다고. 세미나 중에 체험담 발표를 하게 되었다. 일 년 동안 생활한 것과 야채스프요법, 식이요법을 있는 그대로 얘기했더니 이상구 박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김경식님이 야채스프를 먹어서 병이 나은 것이 아니고 맹물을 마셔도 믿음을 가지고 생활하였기에 이런 좋은 결과를 얻은 거라고. 야채에서 얻은 물이니 먹고 좋다고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말고 적당하게 먹으라면서 칭찬을 하셨다. 이때도 8박9일을 즐겁게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규칙적으로 생활하게 되었다.


2005년 다시 채소 기르는 것을 배우려고 수원에 있는 농촌진흥청에 가서 1박2일 교육을 받고 화전이라는 마을에 주말농장을 얻었다. 도심에 사는지라 암환자에게 깨끗한 공기와 자연의 향기가 부족하다고 생각되어 집안에 산세베리아를 시작으로 해서 화초를 화분에 심어 들여놓기 시작한 것이 하나 둘 늘어나 어느새 70여 개를 훌쩍 넘어갔다.

결심이 굳지 못해 그런지 나는 집에서 내 스스로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 생각처럼 오래 가지 못하곤 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자주는 못가지만 세미나나 교육에 참석하면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일어나면 자연스레 산으로 향하던 걸음이 집에 와서 있노라면 왜 점점 무거워지고 애를 써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강좌 등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듣고 하면 또 들을 때마다 각오를 다지게 되고 같은 이야기인데도 그때와는 다른 교훈을 가슴에 새기곤 했다.


이렇게 생활하던 중 주변에서 야채스프를 만들어 달라는 암환자들의 부탁이 하나둘 늘어나게 되어 한번 야채스프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을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도 크고 다른 사람도 아닌 같은 암환자가 먹을 것이라 생각하니 조심스러웠다. 제일 먼저 전국을 다니면서 야채스프를 만드는 공장을 가보았다. 재료와 만드는 과정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야채스프를 사서 내가 지금 해 먹는 것과 비교하고 맛도 감미하면서 나름대로 규칙을 정하였다.


그리고 구청에 신고를 하고 허가와 사업자등록을 내고는 2005년 6월부터 지금까지 야채스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어차피 내가 먹느라고 만드는 김에 함께 만드는 것이라 채소를 더 많이 기르는 것일 뿐 특별히 더 달라지는 부분은 없었다. 무와 무청은 직접 길러서 사용했고 표고버섯은 재배지로 가서 확인하고 사서는 말려서 사용하고 있으며 나머지 재료는 정농회에서 구입하여 야채스프와 현미차를 만들었다.


좀 번거로운 면이 있다면 한 번에 많은 양을 만들지 못하고 그때마다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야채스프를 8년째 계속 만들어 먹다보니 귀찮다고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두면 설사 상하지는 않는다 해도 역시 그때그때 만들어 먹는 것과는 달랐다. 나와 같은 환자들이 먹는 것인데 나만 새로 만들어서 소량씩 먹고 다른 사람들것은 대량으로 만들어 두었다가 줄 수는 없었기에 주문이 들어오면 만들어 보내곤 했다.


웃음이 좋다고 해서 배우게 되었는데 어느새 매일같이 산에 올라 웃고, 버스 안에서도 웃고, 전철 안에서도 웃고, 길을 걷다가도 웃었다. 혼자 그러고 다니다보니 미친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우울증이 점차 깊어져갔다. 집에서 가족이 늘 배려해주었지만 혼자만 암환자였고 아내는 내 대신 가장 노릇까지 해야 했고, 늘 혼자 산을 다니고 강좌를 쫓아다니고 살려고 나름대로 발버둥을 치다보니 일반인들과는 어울리지 못하고 지내야 했다. 그런 세월이 계속되다보니 어느새 우울증이었다. 그럴 때면 산을 오르다가도 소나무를 붙잡고 기도했다. 하나님. 저도 이 소나무처럼 바람이 불어와도, 어떤 폭풍우가 몰아쳐도 굳건하게 강건하게 해주세요. 눈물이 절로 흘러내렸다.


그때 암시민연대라는 모임을 알게 되어 참석했고 대체의학 강좌를 자주 듣게 되었다. 그날도 강의를 듣고 있는데 내 옆자리에 계신 분이 몸이 불편하여 물어보니 소세포암이라고 국내에서는 치료가 안 되어 일본으로 다니면서 색전술을 받는 중이였노라고 하셨다. 경비가 많이 들었겠노라고 말하니 보험금이 나와서 그 돈으로 충당한다고 하시면서 요양병원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나는 그때서야 처음으로 암환자를 위한 요양시설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가면 죽는 곳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길로 당장 남양주시 수동면에 있는 에덴요양병원을 찾아갔다. 요양생활을 하면서 환자들과 같이 운동을 하고 산을 다니고 밥을 먹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우울증은 햇빛에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에덴요양병원에서도 입원한 암환자들을 위해 야채스프를 만들어 복용하도록 하고 있었다. 원장님이 권하시기에 나는 직접 만들어서 먹는다고 하니 궁금해 하셔서 자세히 설명을 해드렸다. 원장님은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고 당신도 야채스프요법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83세 건강비결이기도 하다고 말씀하셨다. 야채스프에 대한 확신이 더욱 굳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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