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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도암 8년의 기록 -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다
고정혁기자2012년 04월 19일 16:22 분입력   총 819034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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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경식(식도암 4기)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 전에 전남 보성 천용산에서 이박행 목사님이 운영하는 복내전인치유센터에서 여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다. 의사, 교수들이 강사로 참가하여 유기농 먹거리에서부터 다양한 강좌를 들을 수 있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프로그램 중에 체험담 얘기를 하게 되어 당시 광주기독병원 서강석 교수와 상담을 하였다.
나의 투병과정을 듣고 본인도 의사지만 정말 많이 놀랍다고 하시면서 방사선을 했으니 암은 어느 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결과 보게 되면 다음 2가지 질문을 하라고 하셨다. 첫째는 암이 얼마나 줄었는가, 둘째는 방사선을 조사한 식도는 얼마나 줄었나 하는 것이었다. 나는 잊어버릴까봐 얼른 메모지에 기록을 해두었다.

그리고 결과를 보는 날, 이 두 가지 질문을 했다. 담당 교수는 암은 전이된 부분까지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해 주었고, 다음 식도에 관한 질문에는 암이 없으면 되었지 이것까지 알려고…… 머뭇거리며 말을 안 해주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검사한 것을 CD에 복사해 달라고 하니 어느 다른 의사와 상담하려 하느냐고 묻기에 개인적으로 보관하려고 한다고 하니 그때는 허락을 해주어서 그 CD를 갖고 광주로 내려가 서강석 교수와 면담을 했다.
교수 한 사람은 CD를 판독하고 다른 한 교수는 진료기록지를 살피면서 암 종양은 보이지 않으나 식도는 좀 좁아졌다고 말해주었다. 제가 질문을 해도 답변을 해주지 않습니다 하니 나도 의사지만 암 치료하는 교수는 암 종양만 없애기 위해 노력하니 다른 장기 손상은 두 번째 일이라 그렇다며 이해하라는 것이었다.

암환자가 되어 생각지도 못한 여러 일들을 겪게 되지만 무엇보다 환자 자신의 몸 상태나 결과에 대해 의사는 환자에게 최대한 원하는 만큼 설명을 해주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환자도 자신의 몸과 돈을 내고 한 검사이니만큼 알 권리가 있지 않는가. 어쨌든 좋게 생각하려고 했다. 보이던 종양이 사라졌다니 마음을 편히 하고 다시 예전처럼 규칙적으로 생활하면서 여러 강좌나 프로그램 등 전국 어디나 마다하지 않고 쫓아다녔다. 없어졌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암이 버젓이 버티고 있다는 걸 알고 절벽에서 추락하는 심정이었기에 다시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려고 했다. 없다고 믿었더니 있어도 없는 것이 되어 살았고, 이제는 진짜 없는 것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스스로 되뇌었다. 그래도 급한 불은 현대의학으로 껐구나 싶었다.

나는 요양생활 하는 동안 복이 많았다. 그중 산삼에 대한 얘기를 해드리려고 한다.
남양주에 있는 요양병원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원장은 젊은 분이였다. 나를 보고는 이렇게 살아주어서 감사하다며 새로 입소하는 암환자가 있으면 면담을 끝내고 여기 기적의 사나이가 있으니 만나보라고 하시곤 했다. 여기서도 산을 오르며 갖가지 산나물을 모아 가루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효소도 담그면서 재미있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에 한 사람이 산삼을 캐러 가자는 것이다. 산삼이라는 건 말로만 들었지 모습 한 번 구경해 본 적이 없었기에 호기심으로 따라나섰다. 산삼 이파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니 그저 꽁무니만 따라가고 있는데 허씨 환자가 신 왔다며 갑자기 나를 불렀다. 그는 조용히 형님, 이것이 산삼입니다 하며 작은 이파리가 달린 가지를 가리켰다. 이렇게 하나가 발견되면 그 주위를 잘 살펴보셔야 합니다 하고는 산삼 앞에서 부처님 감사합니다 공손히 절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산삼을 캐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찬찬히 주위를 돌아보다가 보니 앗, 같은 모양을 가진 약초를 발견하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에게도 산삼을 보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는 조심스럽게 캐서 품에 안았다. 너무 기쁜 나머지 찬송을 부르며 돌아와 잘 보관했다가 다음날 집으로 가서 아내에게 먹으라고 건네주니 아내는 한사코 안 먹겠노라며 건강하니 당신이나 먹으라고 한다.

서로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요양병원으로 다시 가져와 몸이 많이 힘든 환자를 찾아서 드렸더니 이 귀한 것을 어떻게 먹느냐며 다시 돌려주셨다. 나는 기왕에 마음먹은 것이니 당신의 몫이라고 드시라고 하니 고맙다며 가져가셨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자랑 같기도 나는 그 이후로 산에 가기만 하면 산삼이 눈에 잘 띄었다. 산삼에 대한 호기심에 책도 사서 읽고 심마니들과 함께 산을 다니기도 하고 혼자도 산을 가는데 신기하게도 산삼을 곧잘 찾아내곤 한다. 30, 40년 경력이 있는 사람들과 다니기도 하는데 어느 날은 심마니는 한 뿌리도 보지 못하는데 나 혼자 산삼이 보이기도 하였다. 혼자 생각으로는 그래도 남을 위해 봉사를 했더니 행운이 따르는가 싶다.

산삼과 관련된 아픈 기억이 하나 있다.
춘천에 있는 요양병원에 있을 때였다. 당시 화천에 있는 심마니를 찾아 같이 산행을 하곤 했었다. 몇날 며칠을 헤매도 한 뿌리도 보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하루는 산삼 4뿌리를 발견하여 병원에 돌아와서 힘들어하는 환자에게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말 말고 공복에 매일 먹으라고 당부했다. 이 사람은 이미 대장에서 간과 폐로 전이가 되어 항암을 계속 받는데도 암은 계속 진행이 되는 과정에 있었다. 너무 몸이 힘들어서 항암을 중단하고 8개월쯤 되었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계속되는 항암과 커지는 암의 기세는 그 사람을 너무도 힘들게 만들었다. 현대의학이든 산삼이든 무섭게 진행되는 암을 막을 힘은 없어보였다. 날이 갈수록 그는 내리막길이었다. 병원을 가서 확인하니 암은 더 진행이 되어 있었다.

의사는 그에게 무엇을 먹었냐고 물었고 산삼, 녹즙, 그외 여러 식품 이야기를 그대로 대답했고 의사는 산삼과 녹즙 같은 것을 먹어서 더 심해졌다고 했다고 한다. 그의 부인은 이 말을 내게 전하면서 산삼을 준 나에게 원망 비슷한 서운함을 내보였다. 너무 힘들어서 그랬겠지만 그 부인의 원망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산삼 때문에 암이 커졌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그 부인의 막막함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환자와 보호자는 너무도 약자였다. 암뿐 아니라 의료진 앞에서도. 그 비싼 항암이 안 듣는 건 의사에게 따질 수도 없고 원망의 말 한 마디도 할 수 없고 당신의 치료는 지금 실패했다고 무의식에서라도 생각하려 들 수 없었다. 그러면 더 이상 붙잡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의사도 무엇도 아닌 나를 원망하는 길밖에는. 그는 결국 다른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한참 후에 그의 생각이 자꾸 나서 찾아갔더니 황달과 부종까지 와 있었다. 피폐해진 모습이 너무도 안쓰럽고 가슴이 아파 그를 끌어안고 기도를 하였다. 그는 나를 부둥켜안고 연신 미안하다고 하였다. 형님 저의 아내를 용서해 주세요. 전 형님과 있는 시간이 너무도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새벽에 산에 데리고 가서 웃어라 하며 같이 웃어주시고 노래도 같이 부르고 스트레칭도 알려주고 벌침도 놔주시고… 많은 용기를 주셨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하면서 울먹거렸다.

뒤로월간암 201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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