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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핀, 통증을 없애 주는 신의 약
고정혁기자2012년 05월 31일 15:51 분입력   총 807566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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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핀은 진통제로서 특히 말기 암환자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약이며, 의사의 지시대로 사용한다면 중독될 위험성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모르핀도 과거에는 마약으로 사용되었던 역사가 있었다. 게다가 모르핀의 원재료인 아편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기원전 3000~4000년 무렵, 지금의 중동 지역에서 최고의 문명을 이루했던 슈멜인들은 이미 아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들이 남긴 점토판에는 양귀비를 재배하고, 새벽에 껍질을 벗기지 않은 양귀비 열매의 흰 즙(아편)을 채취해 '기쁨을 가져다주는 물질'로 이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대의 이집트나 그리스에서도 아편은 통증을 억제하거나 수면을 유도하는 약으로 중시되었다.

이처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에게 줄곧 이용되어 왔던 아편은 서양사회에서는 19세기 말까지 일반 시민들에게도 이용되었다.
19세기 중국은 영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아편이 중국 사회를 좀먹고 아편 중독자를 양성한다는 위험성을 깨닫고 아편 수입을 저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영국과의 마찰을 불러일으켜 아편전쟁으로 발전했으며, 아편전쟁에서 진 중국은 홍콩을 빼앗기는 역사적 굴욕을 당하게 된다.

같은 무렵, 독일의 한 약제사가 아편에서 크림색의 결정을 만들어 내고, 이것이 진정 작용과 다행감(多幸感)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이 물질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꿈의 신 모르페우스의 이름을 따서 '모르핀'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모르핀은 의료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약이 되었고, 통증을 즉시 없애는 효과로 '신의 약'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남북전쟁은 모르핀과 아편의 부정적인 측면을 여실히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남북전쟁 중에 중상을 입은 병사들에게 진통제로 모르핀과 아편정기가 사용되었는데, 남군은 이 기간 동안 80톤이나 되는 아편과 모르핀 제제, 1000만 개의 정제를 소비했다고 한다. 모르핀은 부상으로 인한 통증을 누그러뜨려 병사들에게 행복감과 안도감을 주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났을 때 그들 대부분은 군대병, 즉 모르핀 중독이 돼 버렸다. 미국에서 의료 이외의 목적으로 이들 물질 사용이 금지된 것은 20세기 들어서였다.

그러나 만성적 통증을 안고 있는 암환자들의 경우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사용하는 한 모르핀 의존증에 걸리지 않는다. 미국의 한 연구에서는 모르핀에 의한 동통 치료를 받은 1만 2000명의 환자들 중 의존증에 걸린 사람은 4명, 그것도 원래 약물 의존증의 전력을 갖고 있던 환자였다고 한다.

참고로, 약물 의존증에는 정신적 의존 외에 육체적 의존도 있다. 이것은 약효가 떨어지면 몸의 신진대사 등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증상으로, 퇴약 증후라든가 이탈 증상이라고 부른다. 소위 금단증상이다. 강한 통증을 겪고 있는 환자는 모르핀을 사용해도 정신적 의존 증상은 생기지 않지만, 발한, 눈물, 설사, 호흡 이상 등과 같은 육체적 의존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런 증상은 약을 서서히 줄이면 사라진다.

그렇다면 만성적 통증으로 고통을 겪는 환자가 진통을 위해 모르핀을 사용해도 정신적 의존이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로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진통에 필요한 모르핀의 양이 다행감이나 도취감을 주는 양보다 훨씬 적기 때문이다. 만성 동통은 뇌의 내부에 원래 존재하는 내재성 모르핀만으로는 통증을 억제할 수 없을 때 생기므로, 외부에서 모르핀을 보충하면 통증이 완화된다. 병원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진통에 필요한 양의 모르핀밖에 처방하지 않는다. 그리고 효과를 지켜보면서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투여한다.

그런데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에는 통증이 심한 병사에게 모르핀이 대량 투여되었다. 그 때문에 모르핀의 혈중농도가 순식간에 높아져 뇌에 도달되었고, 진통 효과뿐 아니라 다행감도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과정이 되풀이됨으로써 많은 병사들이 모르핀에 탐닉하게 된 것이다.

이때의 정신적 의존에는 죽음에 직면한 전쟁터라는 극한 상황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병사들은 모르핀이 일시적이긴 하지만 불안감과 공포를 없애 준다고 여겨 한층 더 모르핀에 의존하게 되었다. 1960년대 일어난 베트남 전쟁에서는 미군 병사의 40% 이상이 헤로인을 사용했다고 한다.

동통 환자가 정신적 의존에 빠지지 않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암과 같은 지속적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에게는 다행감을 주는 도파민의 분비를 방해하는 메커니즘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이며, 여기에도 뇌내의 내재성 모르핀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재성 모르핀과 결합하는 수용체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들 중 주로 뮤 수용체가 통증을 없애거나 행복감을 느끼도록 작용한다.

그런데 다른 카파 수용체는 뮤 수용체의 작용을 방해하고 도파민의 분비를 저해한다. 동통 환자의 뇌에는 이 카파 수용체가 활성화되어 있어 모르핀을 사용해도 행복감이 일어나지 않는 듯하다.
즉 우리의 뇌는 절묘하게도 모르핀에 의존하는 메커니즘과 이를 억제하는 메커니즘을 모두 균형 있게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약은 우리 몸에 어떤 작용을 하는가>, 야자와 사이언스오피스, 전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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