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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울리는 민족의 노래, 아리랑과 흑인영가
임정예(krish@naver.com)기자2013년 01월 21일 17:28 분입력   총 674066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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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정미 | 부산대학병원 통합의학센터 연구교수
저서 <치매인지재활프로그램> <음악치료의 이해와 활용> 등

얼마 전 뉴욕할렘싱어즈의 크리스마스 공연을 보았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민족노래인 흑인영가를 노래했던 이 공연은 그 어떤 특수효과나 밴드의 현란한 연주도 없이 (간단한 피아노나 퍼커션 연주가 곁들어지긴 했지만) 두 시간 내내 공연장을 가득 채운 건 그들의 깊고 진한 목소리였습니다. 아메리카 흑인들이 노예시대에 만들어 낸 노래인 흑인영가는 성서나 기독교적인 제재를 통해 노예생활의 비참함과 그들의 삶의 애환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미국의 민족 노래입니다.

나라마다 민족의 삶의 애환을 담은 노래 있습니다. 그 중 아리랑은 지난 12월 6일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제7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을 만큼 가장 한국적이지만 세계적인 것으로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한의 노래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서 대표적인 민족의 한의 음악, 아리랑과 흑인영가의 의미를 비교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한민족의 혼, 아리랑

아리랑은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널리 퍼져있어서 이른바 <독립군 아리랑>을 비롯하여 <연변아리랑> 등의 이름이 쓰이고 있을 정도이며, 멀리 소련의 카자흐스탄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교포들의 아리랑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리랑은 '아리랑…' 또는 '아라리…'및 이들의 변이를 여음(후렴 또는 앞소리)으로 지니고 있는 일군의 민요로, 아리랑이라는 명칭은 이들 여음에서 비롯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확인할 수 있는 가요들을 토대로 하여 주로 강원도 일대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정선 아리랑>, 호남지역의 <진도 아리랑>, 그리고 경상남도 일원의 <밀양 아리랑>을 묶어서 삼대 아리랑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들 세 가지 아리랑이 각 지역 민요의 기본적 음악언어를 간직하고 있는, 지역 내의 자생적인 전통민요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정선과 진도 그리고 밀양 등 3대 아리랑을 전통민요 아리랑으로 잡을 경우 그 가운데서도 <정선아리랑>은 그 지역의 민요적 음악언어를 가장 충실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아리랑의 기원설과 전설들은 대원군의 경복궁 공사와 관련된 아리랑에서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매천야록 梅泉野錄≫에 고종이 궁중에서 아리랑을 즐겼다고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원군·고종 때 당시 서울에도 이미 아리랑이 전해져 있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경복궁 공사를 위한 징용의 가혹함과 이 공사 경비조달을 위한 가렴주구가 아리랑에 얽혀서 전해지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대한제국 말기의 가혹한 정치와 사회현상을 타고 아리랑은 '흙의 소리'에서 '역사와 사회의 소리'로 탈바꿈해 나갈 결정적 단서 내지 동기를 잡은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아리랑이 사회화하고 역사화하는 제2의 충격은 일제의 침략으로 촉발된 것이라고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표현이 나운규(羅雲奎)가 제작한 영화 <아리랑>이었다고 더불어 가정해 볼 수 있는데 그와 같은 아리랑의 사회화와 역사화는 8·15광복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중첩되어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백두산 고개로 넘어 간다.", "감발을 하고서 백두산 넘어 북간도 벌판을 헤매인다.", "이천만 동포야 어데 있느냐 삼천리강산만 살아 있네.", "지금은 압록강 건너는 유랑객이요 삼천리강산도 잃었구나.", "36년간 피지 못하던 무궁화꽃은 을유년 8월 15일에 만발하였네.", "사발그릇 깨어지면 두세 쪽이 나는데 삼팔선이 깨어지면 한 덩어리로 뭉친다."

이처럼 몇 가지의 노랫말을 나열해 놓는 것만으로도 <아리랑>이 근세의 민족사를 반영하고 있음이 한눈에 드러나게 됩니다. 그것은 크게는 어원설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주관적인 감정이 투사된 결과이기는 하지만, 아리랑 전승 내부에 몸과 삶을 담고 살아온 사람으로서 경험론적인 실감이 거기에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절로 한숨짓듯이, 더운 숨결을 토하듯이, 혹은 매인 중치를 터놓듯이 혼잣소리로 부르는 것이 아리랑입니다. 소리꾼은 그 혼잣소리로 삶을 달래고 애간장을 삭이면서 목숨 부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혼잣소리 아리랑은 삭임의 소리, 푸는 소리 구실을 한 것입니다.

"아리랑은 다양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지속해서 재창조되며,
공동체 정체성의 징표이자
사회적 단결을 제고하는 역할을 한다."

이 글은 아리랑에 대한 유네스코의 시각입니다.
이처럼 아리랑은 외국에서도 높이 평가하는 우리 민족의 노래로, 그냥 단순히 과거의 화석으로 전해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근대의 흐름 속에서 그때그때 새로이 새 삶을 얻으며 살아남은 것입니다. 애원성·탄성(嘆聲) 등이 실린 개인적인 소리라는 속성을 강하게 갖추고 있었다고 생각되며 소박한 주관적인 서정이 흙의 소리로서 아리랑이 지녔던 시 정신이라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흑인들의 삶과 흑인영가

아메리카 흑인들이 노예시대에 만들어 낸 종교적이고 민요조의 노래인 흑인영가는 성서나 기독교적인 제재를 통해 노예생활의 비참함과 그로부터의 탈출의 소망을 통절하게 호소하는 노래가 많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17세기 말 무렵부터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남부의 농장에서 목화채집, 광산개발, 공장 등 다양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이주되어 왔습니다. 이들은 인간적 최소한의 인권과 자유도 허락받지 못하고 극심한 학대와 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인간 이하의 극단적인 환경을 이겨내야 했던 이들에게 유일하게 자신들의 인간적 존엄을 지킬 수 있었던 부분이 바로 노래였습니다. 이 노래는 공통적인 민속음악적 특징을 보이고 있지만, 백인음악에서는 보기 드물게 리듬을 당기거나 밀거나 하는 엇박자를 통해 좀 더 리듬적이지만 특별한 가사는 없는 외치는 느낌의 독특한 노동요를 불렀습니다. (이것을 필드 홀러 filed holler라고 합니다.)

이런 노동요적인 노래에서 흑인들이 신앙과 가사, 멜로디를 담아낸 흑인영가가 이어져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흑인영가를 통해 현실적 인간적 속박을 영적 해방으로 풀어내는 음악으로 자신들의 정체성과 소망을 반영해 나가기를 선택했다는 점은 현대의 우리에게도 시사해 주는 바가 큽니다. 이와 같이 흑인영가가 흑인들의 고난의 삶과 역사를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흑인영가는 아름다운 음악적 형식뿐만 아니라 그것이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환경 안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습니다.

20세기 들어 흑인영가는 두 가지로 나뉘는데 블루스와 재즈입니다. 블루스는 흑인들이 신앙적인 내용을 제거하고 처음으로 그들의 세속적 상태를 노래하기 시작했던 음악적 양식으로 다양한 가사와 일상적 내용과 상태들을 표현하며 흑인들이 현실적 상황들을 어떠한 상태로 지나고 있었는지를 아주 잘 알게 해줍니다. 문자 그대로 '슬픔'이라는 풀이대로 블루스는 우울하고 한탄조의 민속적 음악의 특징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미국대중음악 전반의 자양분이 되어 20세기 현대의 대중음악의 뿌리로 자리 잡게 됩니다.

블루스가 슬픔이었다면 재즈는 혁신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곧바로 미국의 정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실제로 미국사회는 이러한 도전과 혁신의 문화적 정서가 면면히 이어져 사회적 자정의 효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아리랑, 미국의 흑인영가는 가장 암울했던 시기의 민족의 삶의 애환을 녹인 가장 '한국적'이고 '미국적'인 음악입니다. 이런 민족음악의 맥을 굵어지고 길게 이어나가며 대중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음악으로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출처 및 참고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
아리랑에 관한 음악적 고찰(李輔亨, 民學會報 15, 1987)
아트앤소울 칼럼 中 '역사적 고난 속에서 피어난 흑인음악의 의미'

뒤로월간암 201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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