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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된 내 몸 학습이 건강을 망친다
장지혁기자2016년 02월 29일 15:44 분입력   총 3399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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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모 씨는 목 뒤의 뻐근한 통증으로 병원을 찾아왔다. 고혈압을 10년간 앓아 왔다고 한다. 상담을 하다 보니 그는 스스로 혈압을 올리는 사람이었다. 병원에서 혈압을 재면 집에서 잴 때보다 늘 10mmHg 정도 높게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하루에도 혈압을 대여섯 번, 아니 그 이상씩 재고 그것을 수첩에 외워 외우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혈압을 내리는 데 필수적인 금연이나 음식을 싱겁게 먹는 것에 대해서는 소홀했던 것이다.

나는 혈압을 재는 것을 당장 중지하라고 권유한 후, 내몸 리폼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질병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병원을 찾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질병을 공부하는 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질병 공부는 내몸에 나타난 잎사귀 현상에 연연하는 일희일비 공부라고 할 수 있다. 질병 공부는 민감한 몸을 만든다. 쓸데없는 걱정으로 마음만 고생한다. 미래보다는 지난 일만 되새김질하는 우둔한 행동이다.

질병 공부의 첫 번째 특징은 수치에 연연한다는 점이다. 한 노신사가 진료실에 들어오고도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인사를 하니 고개를 잠시 들 뿐 눈은 다시 손에 펴든 혈압 수첩에 가 있다. 그리고 앉자마자 이렇게 늘어놓는다. "어제는 혈압이 얼마였고요, 저번 주는 언제 이렇게 높았습니다. 그래서 세 번 재서 가장 낮은 걸 적어왔습니다." 이분은 스스로 혈압을 올리는 전형적인 사람이다.

혈압을 스스로 올리는 경우에는 두 가지 처방이 있다. 혈압이 그다지 높지 않고 안정적으로 조정되는데도 재고 또 재면서 혈압을 올리는 사람의 경우에는 혈압 무시법을 처방한다. 혈압 수첩을 버리라고 말한다. 병원에서만 재고 아예 혈압을 재지 말라고 당부한다. 혈압을 재면서 본인은 정작 해야 할 중요한 실천 사항은 놓치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은 대부분 싱겁게 먹기, 소금 5g 덜 먹기 같은 실천 사항은 소홀히 한 채 하루 종일 혈압을 재면서 생각이 늘 어떤 약으로 혈압을 맞출까에 머물러 있다.

또 다른 처방은 혈압 둔감법인데, 병원에서 혈압을 재면 평소보다 높게 나타나는 사람이 주 대상이다. 전문 용어로는 흰 가운 고혈압(white gown hypertension)이라고 하는데, 집에서 재면 멀쩡하다 가도 병원에서 재면 혈압이 높게 나타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혈압 재는 일을 시험처럼 느낀다. 의사에게 잘 보이려고 혈압에 지나치게 집중하다 보니 혈압이 실제 이상 오르는 경우다.

이런 경우에는 혈압 둔감법을 처방한다. 간격을 두고 여러 차례 혈압을 재며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라고 일러 준다. '혈압 네까짓 게 뭔데 높아 봤자지' 같은 주문이다. 이것은 공황장애를 치료할 때 쓰는 방법을 활용한 것인데, 지속적인 노출로 대상에 대한 민감성을 줄이는 방법이다. 수치에 연연하는 공부는 성공할 수 없다. 노력은 소홀히 한 채 나온 점수에만 매달리기 때문이다.

질병 공부의 두 번째 특징은 올바른 분석과 처방보다는 병에 대한 복습과 암기에만 집중한다는 점이다. 이 경우 앞서 말한 각종 수치 외우기와 자기가 먹는 약 이름 외우기를 일상화한다. 이럴 경우 질병에 대한 정보를 얻는 장점보다는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만들어 내서 손실이 더 크다. 질병에 대한 우려는 증상에 대해 민감해지도록 부추긴다. 이들은 어떤 증상이 오면 버릇처럼 어떤 질병과 연관을 짓는다.

어지러우면 빈혈, 뒷목이 뻣뻣하면 고혈압, 속이 쓰리면 위궤양, 힘이 없으면 당뇨…. 자동적으로 증상과 질환이 연결된다. 그런 와중에 뻣뻣한 뒷목은 더 뻣뻣해지고 어지럼증은 더 심해진다. 정작 이런 증상은 스트레스가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과 중심의 질병 공부는 몸을 민감하게 만들고 증세에 대한 대응력을 떨어뜨린다.

나는 질병의 근원을 따지는 공부를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대신 병의 근원을 따져 생활습관이나 환경을 개선하라고 일러준다. 어떤 분은 원인 중심의 건강 공부를 하려면 증상의 원인이 되는 질병도 알아야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모두 의대를 다닐 필요는 없다. 원인 중심의 공부는 실은 간단하다. 원인을 알고 자신이 고칠 수 있는 부분만 고치면 되는 것이다. 이미 고혈압 증세가 있는데, 고혈압을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유전자를 조물주에게 부탁해 바꿀 수도 없다.

단지 몇 가지 건강행위 지표에 집중하고 이를 실행하면 된다. 의사가 아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실상 몇 가지 건강행위 지표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만약 혈압이 높다면 늘어 가는 나이만 한탄하지 말고 저염식,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 체중 줄이기를 실천하면 된다. 실제로 이런 간단한 습관으로도 대부분의 고혈압은 제어가 가능하다.

질병 공부의 세 번째 특징은 시선이 과거에 고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과거를 확대하다 보니 자연히 미래가 축소된다. 과거 지향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먼저 예전에는 이랬는데 하며 신세 한탄하는 과거 정체형이다. 이런 사람들은 몸의 기준이 현재가 아닌 전성기의 몸에 맞춰져 있고, 현재를 조금씩 개선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이상과 내몸 현실의 차이점에 몹시 갈등하는 타입이다. 물론 전성기의 내몸이 내몸 경영의 목표가 되어야 하겠지만, 현재의 내몸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사랑할 줄 알아야 새로운 동력이 생긴다.

또 다른 부류는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만 떠올리는 과거 확대형이다. 아팠던 기억, 병원에 입원한 기억, 무엇을 먹고 힘들었던 기억만 되새김질한다. 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근근이 현상유지라도 해내는 지금의 내몸을 대견해한다. 이러다 보니 과거의 약한 내몸이 끊임없이 마음을 지배한다. 결국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 내몸을 바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질병 공부의 네 번째 특징은 머리만 쓰는, 소극적인 공부라는 점이다. 내몸 경영을 머리 쓰는 공부로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거나 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직접 운동을 하기보다는 TV 앞에 앉아 쏟아지는 건강 프로들에서 얻은 얕은 지식으로 건강을 챙길 수 있다고 믿는다. 대개의 건강 관련 프로그램이 적당한 운동을 권하지만, 정작 그런 실질적인 충고는 못 들은 척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누구보다 내몸의 쾌락을 쫓는다. 그래서 기계 조작이나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 데 능숙하다. 직접 대화하기보다는 메신저나 문자 메시지를 이용하고, 가까운 거리도 자가용을 이요하며, 계단보다는 엘리베이터를 선호하는 사람, 한마디로 찰나의 편안함에 중독된 사람이다.

질병 공부의 마지막 특징은 의사의 도움이 효과적일 때는 외면하다가, 본인이 뒷감당을 할 수 없을 때는 의사에게 모두 책임지라고 생떼를 쓴다는 점이다. 이른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청개구리 유형이다. 공부든 일이든 중요한 것은 시기와 효율성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전문가의 상시적으로 협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사와 친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질병 공부는 의사가 하는 것이지 일반인의 몫이 아니다. 질병을 미리 발견하고 예방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 그리고 질병을 초기에 제압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에 관심을 갖는 것, 이것이 당신이 할 일이고 또한 잘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또 질병에 걸린 순간부터 모든 것이 의사의 책임이고 자신이 노력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수동적인 자세 또한 잘못이다. 질병이 발생한 후 할 일이 많아지는 쪽은 오히려 환자 자신이다.

이에 반해 건강 공부는 잎사귀 증상에서 병이 나타난 원인을 파악해, 그 줄기와 뿌리가 되는 삶의 환경과 생활방식을 제어하는 전체적인 노력과 실천을 하는 공부다.

고혈압이 생겼다면 약을 성실히 복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혈압이 생긴 환경과 원인, 예를 들어, 비만, 운동 부족, 흡연, 혈압을 올리는 예민한 성격 등을 개선하는 데 힘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렇게 병을 유발하는 생활습관, 가치관과 환경을 파악한 뒤, 내몸 경영을 통해 병을 제압해 나가는 것이 바로 진정한 건강 공부인 것이다.

건강 공부는 질병 공부와 반대다. 건강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원인을 파악해 잘못을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내몸 현실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이고 과거의 좋은 기억들을 떠올린다. 건강하게 운동했던 기억, 땀을 흘리며 상쾌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몸 쓰기를 통해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더불어 항상 미래를 계획하며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질병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화제를 채운다.
운도 경기 관람도 즐기지만, 될 수 있는 한 직접 해 보려고 시도하며, 매번 내몸을 증진시키는 새 과제를 정해 배우고 익힌다. 또 건강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상태와 병력을 잘 알고 있는 의사와 연대해 무의미한 병원 이용과 약을 최소로 줄이고, 내몸 저항력을 높이는 데 매진한다.

추천도서: <내몸 경영>, 박민수, 전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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