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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의 죽음과 방혈치료, 철분의 역할
김진하기자2016년 03월 31일 17:27 분입력   총 6447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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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창원 | 고려대학교 의학대학교 졸업 뉴욕의과대학 가정의학과 교수 역임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죽음은 의학의 역사를 바꾸었다.

워싱턴 대통령은 은퇴 후 미국 버지니아 주의 리치몬드에 있는 자택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1799년 12월 말 아주 추운 겨울에 그는 아프기 시작했다. 고열이 나며 목구멍이 아프고 음식을 삼킬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앓게 되었다. 심한 급성 편도선염이다. 지금의 의학으로는 항생제와 진통소염제를 써서 어렵지 않게 치료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항생제와 같은 약물이 없던 당시에는 대부분의 급성 감염질환에는 몸에 있는 피를 일정량 빼버리는 방혈치료라는 것이 가장 보편적으로 행해지던 치료법이었다. 대통령 주위에 있던 주치의들이 모여 상의한 결과 방혈치료를 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 당시 문헌을 보면 일회에 한 pint(약 450ml)의 피를 뽑았는데, 두 차례 피를 뽑아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두 pint를 뽑았으나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삼일 째에도 두 pint의 피를 뽑았다. 그 이후 대통령의 맥박이 약해지고 의식이 흐려지며 심장 박동이 멈추었다. 사흘 동안 3리터 이상의 피를 뽑힌 워싱턴 대통령은 감염 질환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피가 없어서 죽게 된 것이다.

방혈치료는 인류 역사상 3천 년 이상 이어져 온 가장 오랫동안 행해진 치료법이다. 3000년 전 고대 이집트 문헌에 나오며, 고대 힌두 문명에서도 쓰인 기록이 있다. 고대 시리아 문명에서는 거머리를 붙여 피를 빼서 치료했다고 하고,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아주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1900년대 초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졌던 치료법인데 여드름, 천식부터 암이나 천연두의 치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쓰였다. 피를 내는 도구로 바늘, 칼, 상어 이빨, 화살촉, 면도날, 거머리 등이 이용되었다.

적게는 한 pint에서 부터 많게는 환자가 실신할 때까지 피를 뺐다고 한다. 20세기 들어 의학의 패러다임의 변화로 중단된 이 치료법은 현재는 헌혈이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르네상스 이후 유럽에서는 의사의 주된 치료가 이 방혈치료였고, 면도칼을 다루던 이발사가 방혈치료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 이발소에 붙어 있는 흰색, 파란색, 빨강색 띠가 돌아가는 원통형의 표시판은 흰 거즈, 정맥피, 동맥피를 상징하며, 방혈 치료를 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리는 간판이었다.

워싱턴 대통령의 죽음 이후에 방혈 치료의 효과에 의심을 갖기 시작한 의사들은 급기야 1900년대 들어서 방혈치료를 금지하자고 결정했고, 현재는 인도나 아프리카의 민간 치료사들이 이 치료법을 행하고 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 유럽의 의사들이 다시금 방혈 치료의 효과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를 찾고 있다.

시작은 몇몇 의사들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방혈치료는 3000년 동안, 그것도 한 지역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행해지던 치료법인데,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면 어떻게 그 오랜 시간동안 명맥을 유지했을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슨 확실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이었다.

존 머레이(John Murray)라는 의사는 소말리아 난민 캠프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난민 캠프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생활하고 게다가 먹는 음식도 모자라서 영양 상태는 형편없고 모두 빈혈 상태에 있었다. 이 모든 사람들이 영양상태가 좋지 않으니 결핵, 브루셀라증, 말라리아 등 아프리카의 많은 감염성 풍토병에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며 긴장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소말리아 난민들을 치료하던 머레이는 이상한 것을 발견하였다. 열악한 환경에서 영양실조까지 있는 수용소 난민들에게서 말라리아, 부르셀라증, 결핵 같은 감염질환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이 난민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한 그룹에는 철분을 공급해 주고, 다른 그룹은 기존의 영양 상태로 놔두었다. 얼마 후에 철분을 공급받은 그룹에서 엄청난 수의 감염질환자가 발생하였다.

원인은 철분이었다. 철분을 충분히 공급해 주니 감염질환이 더 많이 생기는 것을 관찰한 것이다. 유진 와인버그(Eugene Weinberg)라는 미생물학자는 철분이 많은 배지에서는 세균이 특히 잘 자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뉴질랜드의 소아과 학회에서는 철분 공급을 더 많이 받는 소아에게서 감염질환이 많이 생기는 것을 관찰하였다.

철분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물질이다. 적혈구를 이루는 헤모글로빈의 구성 성분으로 폐를 통해 들어온 산소와 결합하여 우리 몸 전신에 산소를 공급해 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독소를 해독하는 효소를 돕고 당분을 에너지로 전환하는데 꼭 필요한 물질이다. 이 철분이 부족할 때 철분결핍성 빈혈이 생기는데 창백해지며 어지러움이나 피곤함을 유발한다.

적정량의 철분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지만 문제는 과잉 철분이다. 우리 몸에 들어온 세균, 곰팡이, 원충류 등은 우리 몸에 있는 철분을 영양분으로 먹으며 생존하고 번식한다. 그러므로 과잉의 체내 철분이 감염 질환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철분은 암세포의 성장과 번식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체내의 과잉 철분은 암을 악화시킨다. 우리 몸에 있는 과잉 철분은 또한 활성 산소의 생성을 부추기는데, 이는 세포의 노화와 파괴를 가져온다.

지금은 행해지지 않는 방혈 치료가 건강을 유지하고 회복시키는 부분에 많은 역할을 감당했다는 것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방혈 치료는 감염질환의 위험을 낮추고, 암의 위험도를 줄인다. 철분은 혈관을 수축시켜 혈류를 감소시키며, 콜레스테롤을 산화시켜 혈관벽에 싸이게 해서 동맥경화, 심근경색, 뇌졸중의 위험을 높인다. 그러므로 방혈치료가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도를 많이 줄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한 혈액의 점성도를 낮추어 혈액순환을 도우며 혈압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제2형 당뇨병 환자에게서 인슐린의 민감도를 높여 혈당을 낮추는 역할을 하며, 나쁜 콜레스테롤 LDL은 낮추고 좋은 콜레스테롤 HDL은 높인다.

방혈 치료는 우리 몸의 활성산소를 줄여 세포 활성화에 도움을 주므로 결국 노화방지와 암 예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남성호르몬이 많으면 철분을 조절하는 Hepsiden이 줄어들어 철분이 많아진다. 남자가 여자보다 철분이 상대적으로 많고 헤모글로빈 수치가 조금 높은데 여자의 평균 수명이 남자보다 긴 이유가 철분이 적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하는 의사들도 있다.

우리가 먹는 쇠고기, 돼지고기 등 육류의 붉은 살코기에는 많은 양의 철분이 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붉은 살코기를 먹는 것은 무방하나 그 이상 많이 먹는 것은 체내 철분 흡수를 높여 과잉의 철분을 저장하게 만들고 이것이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고 밝혀졌다. 노인들이나 암환자에게 육류 섭취를 제한하라는 것에는 동물성 지방 섭취를 줄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 몸의 과잉 철분 저장량을 줄이라는 메시지가 더 강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대한적십자사에서 관할하는 헌혈은 제한된 방혈치료의 하나이다. 건강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사람이 2개월에 한 번씩 헌혈을 하는 것은 무방하며, 이 헌혈을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내 몸의 건강도 위하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값진 일이 되는 것이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
뒤로월간암 201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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