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수다
chevron_right주고 또 주고 가야...
이 글은 김태식님이 2007년 12월 19일 23:48 분에 작성했습니다. 총 892573명이 이 글을 읽었습니다.

< 섬기는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주고 면역을 상승시킨다>

에이즈환자 8명을 조사해 보니 한 명이 가장 오래 생존했는데 그 분이 한일은 나머지 7명의 동료 에이즈 환자를 돕는 일이었다.
카터대통령이 퇴임 후 인기가 올라가고 존경 대상이 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섬김은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무엇인가 할 수 있고 도와줄 수 있는 내가 자랑스럽고 자긍심이 생긴다.

잘 아시다시피 데레사효과라는 것이 있는데 자원봉사하는 분들과 데레사 수녀의 헌신 일대기의 비디오를 본후의 침을 조사해보니 다른 분들에 비해 면역이 유의하게 높게나와 이런 말이 붙었다.
소경 한분이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옆의 분에게 좀 건널수있도록 해달라고 했더니 쾌히 승낙하더란다...무사히 길을 건너가더니 서로 고맙다고 하기에 자세히 보니 두분 다 소경이셨다...
호스피스에 봉사하는 분들의 한결같은 표현은 “나는 보잘 것 없는데 그저 옆에만 있어도 환우분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어요.”이다.
우리 집의 가훈은 ‘주고 또 주고(give & give)' 이다.
기러기가 날 때 V자 혹은 W자로 행진하는 모습은 서로 서로를 배려한 날개 짓이라고 한다.
같이 울어주고 웃어줄 친구가 드물어 가는 세상이다. 만남의 축복을 참으로 기대하기 힘들고 서로가 서로를 못 믿는 세상이다. 얕은 물이 소리가 나고 빈 깡통이 소리가 요란하듯이 무게 있는 대인관계의 사랑이 필요하다.
봉사와 구제는 섬김의 축복을 체험하는 현장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돈벌고...그리고 다 사회와 남에게 환원하고 가야 한다. 공수래 공수거 인생이다. 그래서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태어날때는 손을 꼭 쥐지만 갈때는 다 펴고 간다.

시신기증은 물론 필요하면 장기도 다 주고 가야 한다. 비누나 휴지 처럼 남을 위해 쉴사이없이 벗겨지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본인이 다른 강의는 취소해도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교육은 꼭 하는데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 이별 아니 재회의 파티를 준비해주는곳이 바로 호스피스 봉사현장이기 때문이다.드러난 아니면 숨겨진 달란트를 마음껏 남을 위해 사용해보라...얼마나 기쁨이 넘치는지를....그저 옆에만 있고 손만 잡아주어도 좋아하는 분들이 지구상 어느곳에든 즐비하다.
테니스 경기에 희생조는 지더라도 상대의 강팀과 맞붙는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며 즐기면서 진다.가수 녹색지대의 "사랑을 할꺼야" 란 노래가사처럼 모든 것을 주는 그런 사랑을 해보라...

어느 어머니께서 아들에게 이런 글을 남겼다..."네 손이 두 개인것은 한손은 남을 위해 한손은 너를위해 사용하라"는 뜻이다..어머니 자신도 직장암 투병중에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기아와 질병에 지친 아이들을위해 뜻깊은 마지막 봉사를 하며 아들에게 모델이 되었다...그분이 바로 유명한 배우 오드리 햅번이다...건강에 관한 글을 쓴것중 사회적건강에 관한 글 일부를 옮겨보았다...김소장

회원님들께서 소록도 두분의 수녀이야기 를 잘 기억하실것이나 감동자체라 다시 소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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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간 소록도봉사 외국인 수녀 2명, ~ 편지 한 장 남기고 홀연히 떠나 ~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에서 43년 동안 한센병 환자를 보살펴 온 외국인 수녀 2명이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소록도 주민들은 이별의 슬픔을 감추지 못한 채
일손을 놓고 성당에서 열흘 넘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소록도에서 평생을 환자와 함께 살아온 마리안(71), 마가레트(70) 수녀가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떠난 것은 지난달 21일. 마리안 수녀는 1959년에, 마가레트 수녀는 1962년에 소록도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두 수녀는 장갑을 끼지 않은 채 상처에 약을 발라줬습니다. 또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장애교정 수술을 해 주고 한센인 자녀를 위한 영아원을 운영하는 등 보육과 자활정착 사업에 헌신했습니다. 정부는 이들의 선행을 뒤늦게 알고 1972년 국민포장, 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습니다.

두 수녀는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란 편지 한 장만 남겼습니다. 이들은 편지에서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우리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또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이 편지로 용서를 빈다”고 말했습니다.
김명호(56) 소록도 주민자치회장은 “주민에게 온갖 사랑을 베푼 두 수녀님은 살아있는 성모 마리아였다”며 “작별인사도 없이 섬을 떠난 두 수녀님 때문에 섬이 슬픔에 잠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43년간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한 마가레트 수녀(왼쪽)와 마리안 수녀(오른쪽에서 두 번째).오스트리아 간호학교를 나온 두 수녀는 소록도병원이 간호사를 원한다는 소식이 소속 수녀회에 전해지자 1962년과 66년 차례로 소록도에 왔습니다.

환자들이 말리는데도 약을 꼼꼼히 발라야 한다며 장갑도 끼지 않고 상처를 만졌습니다. 오후엔 죽도 쑤고 과자도 구워 들고 마을을 돌았습니다. 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에 한글까지 깨친 두 수녀를 ‘할매’라고 불렀습니다. 꽃다운 20대는 수천 환자의 손과 발로 살아가며 일흔 할머니가 됐습니다.숨어 어루만지는 손의 기적과, 주님밖엔 누구에게도 얼굴을 알리지 않는 베품이 참베품임을 믿었던 두 사람은 상이나 인터뷰를 번번이 물리쳤습니다.

10여년전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은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섬까지 찾아와서야 줄 수 있었습니다. 병원 측이 마련한 회갑잔치마저 “기도하러 간다”며 피했습니다.
두 수녀는 본국 수녀회가 보내오는 생활비까지 환자들 우유와 간식비, 그리고 성한 몸이 돼 떠나는 사람들의 노자로 나눠줬습니다.

두 수녀의 귀향길엔...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해진 가방 한개만 들려 있었다고 합니다.

외로운 섬, 상처받은 사람들을 반세기 가깝게 위로한 두 수녀님의 사랑의 향기는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날려어두운 곳을 밝히고 추운 세상을 덥혀 주리라고 믿습니다.
"처음 갔을 때 환자가 6000명이었어요. 아이들도 200명쯤 되었고, 약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치료해 주려면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

이 두 분은 팔을 걷어붙이고, 환자들을 직접 치료하기 시작한 것이 40년이 된 것입니다. 할 일을 지천이었고, 돌봐야 할 사람은 끝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40년의 숨은 봉사...이렇게 정성을 쏟은 소록도는 이제 많이 좋아져서,환자도 600명 정도로 크게 줄었답니다.

누군가에게 알려질 까봐, 요란한 송별식이 될까봐조용히 떠나갔습니다. 두 분은 배를 타고 소록도를 떠나던 날, 멀어지는 섬과 사람들을 멀리서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20대부터 40년을 살았던 소록도였기에,소록도가 그들에게는 고향과 같았기에,이제 돌아가 고향 오스트리아는 도리어 낯선 땅이 되었지만, 3평 남짓 방 한 칸에 살면서
방을 온통 한국의 장식품으로 꾸며놓고 오늘도 '소록도의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그 분의 방문 앞에는 그분의 마음에 평생 담아두었던 말이 한국말로 써 있습니다.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지금도 우리 집, 우리 병원 다 생각나요.
바다는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지...하지만 괜찮아요. 마음은 소록도에 두고 왔으니까요!" ~ 옮겨온 글 ~
김덕영  2008.01.19 23:25 좋은글 명심하며 투병하겠읍니다, 조금이라도 실천하겠읍니다.
김덕영  2007.12.22 19:45 좋은글 되새기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