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수다
chevron_right내가 존경하는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
이 글은 김샘님이 2009년 01월 05일 17:13 분에 작성했습니다. 총 890976명이 이 글을 읽었습니다.

내가 존경하는 "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 "

" 난 말을 잘 못해요...남을 감동시키거나 설명하는 능력도 부족해요...
그래서 직접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

알버트 슈바이처 (Albert Schweitzer)

독일의 의사, 신학자, 철학자, 오르간 연주자.
1875. 1. 14 독일 상(上) 알자스 카이저스베르크~1965. 9. 4 가봉 랑바레네.
경력 1951년 아카데미프랑세즈 회원
1921년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출판 후 세간의 도움으로 병원 재개
수상 1952년 노벨평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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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 아프리카에 파견된 선교의사였던 그는 '인류의 형제애'를 위한 노력으로 1952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루터교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나 스트라스부르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이곳에서 1899년 철학박사학위, 그 이듬해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라이마루스에서 브레데까지 Von Reimarus zu Wrede〉(1906)라는 저서로 신학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인물로 인정받았다. 또 1893년 스트라스부르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하기 시작해 곧 능숙한 음악가가 되었다. 파리에서 오르간을 가르친 스승 샤를 마리 비도르는 그가 바흐 해석에 독특한 감각을 지녔음을 알아차리고 바흐의 인생과 예술을 연구하여 글을 써보라고 권유했으며, 그결과 〈J. S. 바흐 : 음악가이자 시인 J. S. Bach : le musicien-poète〉(1905)이 나왔다. 1905년 박애사업에 헌신하기 위해 선교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발표했고 1913년 의학박사가 되었다. 그를 돕기 위해 간호사 훈련을 받은 아내 헬레네 브레슬라우와 함께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의 가봉에 있는 랑바레네로 출발했다. 그곳에서 오고우에 강둑 위에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병원을 세웠다. 처음에는 자신의 수입으로 기구를 갖추고 병원을 운영하다가 나중에는 여러 나라의 독지가 또는 재단의 기부금으로 보충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그곳에서 적국 외국인(독일인)이라는 이유로 구금되었으며 그뒤에는 전쟁포로로 프랑스에 억류되기도 했다. 그는 점차 전세계의 문제에 관심을 돌렸으며 〈문화철학 Kulturphilosophie〉(1923)을 쓸 마음을 품게 되었다. 이 책에서 그는 '생명에 대한 경외'라는 자신의 철학을 발표했다. 생명을 존중하는 이러한 그의 철학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윤리원칙으로, 그는 이 원칙이 문명의 존속에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다. 방치되었던 병원을 다시 세우기 위해 1924년 아프리카로 돌아와 오고우에 강 위쪽 약 3.2㎞ 지점에 병원터를 잡고 얼마 뒤 나병환자 거주지도 추가로 세웠다. 1936년 무렵 병원에는 350명의 환자와 그들의 친척이 있었고, 나병환자 거주지에는 150명의 환자가 있었으며, 약 36명의 백인 의사·간호사와 다수의 원주민 근로자가 환자들을 보살폈다. 그는 음악과 학문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버린 적이 없었다. 〈사도 바울로의 신비 Die Mystik des Apostels Paulus〉(1930)를 출판했으며, 유럽 전역을 순회하며 강연과 연주회를 가졌고, 음반을 만들었으며, 1911년 아내와 함께 시작한 바흐의 작품에 대한 편집도 계속했다. 〈바흐의 오르간 작품 Bachs Orgelwerke〉(1912~14), 노벨상 수상 연설문인 〈현세계의 평화문제 Das Problem des Friedens in der heutigen Welt〉(1954)는 전세계에서 널리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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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38년전...
의대에 입학할때 면접시 제가 받은 질문이 " 왜 의사가 되려고 하나??? "입니다..
그때 제가 한 대답이...." 제가 아주 존경하는 의사선생님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아프리카에서 생을 바친 슈바이쳐 박사이십니다...
그분처럼 되고 싶습니다..." 면접하시던 교수님이 "ㅎㅎㅎ"하고 웃으시더군요....
한때는 적도 밀림에서 원주민들과 생을 같이 할것이라고 다 정리하고 갔던적도 있지만...
부득이하게 아이가 아픈 바람에 할수없이 귀국하게 되었지요...
종종 지금의 저를 보면서 과연 내가 그분의 그림자라도 밟을수있으련가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관리자  2009.01.05 19:46 김소장님 만큼 환자에게 따뜻한 말을 전해주시는 의사선생님을 찾기가 힘듭니다. 그 것만으로도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