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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vron_right"간경화, 간암, 폐와 갈비뼈 전이암, 중증 아토피까지"
이 글은 love119님이 2014년 03월 04일 11:37 분에 작성했습니다. 총 363787명이 이 글을 읽었습니다.

"간경화, 간암, 폐와 갈비뼈 전이 암,
중증 아토피까지"

젊어서 예비군 훈련장에서 헌혈 후 배달된 검사결과표를 보고 B형 간염 보균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간염이 그렇게 무서운 결과가 찾아오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하고 격렬한 운동(테니스), 등산을 줄기면서 운동 끝나고는 동료들과 2차 3차로 많은 술을 마시는 우를 범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간이 망가져, 어느 날 맥주 한잔에도 속이 메스껍고 소화불량으로 동네 내과에서 혈액검사결과 활동성 만성 판정을 받게 된 것이다.
큰 병원으로 가보고 싶은 맘에 대학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했지만 똑 같은 결과를 받아보고 그길로 술을 완전히 끊고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면서도 좋다는 약이나 건강식품, 유명하다는 곳을 전전하면서 많이도 약을 먹고 고민했던 것이 간을 더 혹사시키지 않았는지 지금도 많이 후회가 된다.
만성간염 중기 진단을 받고 금주는 했지만 격렬한 운동을 계속 하고, 마음 안정도 찾지 못했던 원인이 40대 중후반에 간경화 환자가 된 것이다.
대학병원에서 꾸준히 정기검사를 하면서도 간염, 간경화 때부터 입으로 먹어서만 병을 고쳐보겠다는 무식한 생각으로 좋다는 약, 건강식품 등을 구입해서 먹다가 효과가 없으면 집안에 쌓아놨다가 버리기를 반복했었죠.
그러다가 드디어 2001년 초 검사에서 50대 초반에 간암초기(1.8~2.0Cm) 진단을 받기에 이르러 무시무시한 암환자라는 자리에 등극한 셈이 되었다.
하지만 솔직히 죽는다는 생각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는 정말 많이도 울었다고 몇 년이 지난 세월에야 저에게 이야기를 하더군요.
병원에서 절제수술만 하면 되니 걱정 말라고 한다. 그 말에 나는 입원하기 전날에도 무슨 배짱인지 퇴근해서 예나 다름없이 테니스 코트에 나가 동료들과 격렬한 운동을 신나게 즐기고 다음 날 무덤덤하게 입원했다.

그런데 수술 예정 전날 저녁7시에 수술주치의께서 병실로 오셔서 유익현씨 때문에 고민이 많다면서 가족을 불러놓고 하신 말씀, 간상태가 최악으로 좋지 않아 수술을 강행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한다.
수술을 할 경우 피 응고가 잘 안되어 개복과 동시에 다시 닫아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고, 또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상태라는 것이다.
수술을 약 20시간 앞두고 1시간가량을 가족과 주치의와 의논하다가 만일 선생님이나 선생님 가족이 제 경우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라고 질문을 했다. 주치의 선생님 왈 “저라면 안하겠습니다.” 라는 말씀이다.
“그럼, 저도 안하겠다.” 라고 말씀드리고 수술을 포기한 저는 차선의 치료를 선택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주치의께서 색전술을 권한다.
그때만 해도 색전술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색전술만이라도 받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믿었던 이 병에 대해 아주 무식한 사람이었다.

색전술을 받고 다음 날 퇴원해서 하루 밤을 지내고 제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로 회사에 출근해서 항상 같은 생활의 연속이다.
한 달이 지나 정기 검사결과를 보는 날 저는 출근하고 아내가 결과를 보는데 주치의께서 애들이 몇이냐, 나이가 몇이냐, 등등 심상치 않는 질문을 하시더니 검사 결과를 말씀하시는데 암이 또 재발해서 색전술을 한 번 더 해야 한다고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니 나를 보고 울먹이는 것이 아닌가?

아내는 이번기회에 서울 큰 병원에서 색전술하고 이식을 하자고 해서, 서울 아산병원(당시 중앙병원)에 입원해서 색전술하고 이식을 수소문했지만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별 소득 없이 다음날 퇴원했죠.
퇴원 시 약이라곤 한 알도 처방해주지 않고 관리 잘하라는 말씀과 간경화, 간암에는 약이 없다고 하니 정말 한심한 신세라는 것을 이때 실감했다.
귀향해서 다음 날 출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심각한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입맛이 떨어져 매끼 식사 때마다 2~3수저 먹으면 많이 먹었던 생각을 하니 지금 생각해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생각이 든다.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 주어도 모래알 씹는 입맛 때문에 먹지 못하니 한 달에 14Kg이 빠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니 내 얼굴이 해골 그 자체가 되어 보는 사람마다 걱정과 안쓰럽게 처다 보는 눈초리가 너무나 부담스럽고 힘든 시기였다.
이때 아내는 제가 잠들면 숨을 쉬고 있는지 의심되어 자기 귀를 제 코에 대어 보는 것도 모자라 저를 한 번씩 흔들어 깨우느라 밤잠을 설치는 날이 연속이었고 너무나 힘들었다고 훗날 웃으며 저에게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 가끔 저를 흔들어 깨울 때 왜 깨우느냐고 인상을 쓸 때가 가끔씩 있었던 기억이 되살아나 미안한 맘에 그냥 웃고 넘겼죠.
그렇게 힘든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아내는 저를 살려보겠다고 좋다는 곳이나 약이 있다면 어디든지 찾아다니기 시작하다가 모 식이요법을 열심히 하고 있는 환우 한분을 우연히 알게 되어 이 요법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환우께서는 간경화, 간암, 담도암, 문맥암 말기에 복수, 황달, 흑달까지 와서 병원에서 2개월 선고를 받고 집에서 식이요법을 하고 있는 중인데 시작한지가 3개월쯤 되었을 때 제가 집으로 찾아갔는데 흑달은 눈가에만 까맣게 조금 표시가 남았고, 진단서에 거의 암이었다는 간암 크기도 7Cm로 줄었다는 말을 듣고 이 식이요법에 믿음과 희망을 얻게 되었다.
아∼ 이것이구나! 정말 구세주를 만난 것 같이 아∼ 이제는 살았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100% 무염 식이요법인데 지금까지는 진수성찬도 먹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무염식을 먹는 것이 너무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게 생각난다.
나는 못 먹겠다. 아내는 먹어야 산다. 정말 아내와 많이도 싸웠던 생각에 지금도 아내에게 미안함이 너무나 많다.

죽 한 수저, 물 한 모금으로 씹지 않고 10일 정도를 먹으니 계속 설사만하고 항문이 헐어서 앉아 있기도 힘들 정도였지만 내 아내의 지극정성과 그래도 살고 싶은 욕망으로 악착같이 씹어 먹으며 견뎌내니 설사가 멈추면서 입맛이 돌아와 죽을 잘 먹을 수가 있어 다행히 기력을 찾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는 듯했는데 간암진단 후 약 5~6개월이 지날 즈음 온몸이 가려워서 피부과 의사 선생님께 보였더니 아토피 피부염이라면서 완치는 어렵고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말씀이니, 이런 환자가 괴로움을 못 참고 자살했다는 방송을 보면서 저 역시 죽고 싶은 심정 수없이 많았었다.

아토피를 고쳐보겠다고 지금까지 하던 무염 식이요법을 그만두고 서울 등 좋다는 양, 한의원을 전전하다가 다른 B모 식이요법을 만나 실행한지 1년이 될 즈음 회사에서 제공한 건강검진(당시2003년)을 했는데 간암수치(afp370)가 확 올라있는 것이다.
황당해서 곧바로 대학병원에서 혈액, ct 검사를 해본 결과 간암이 재발되었다고 해서 색전술하고, 한 달 후 검사를 했는데 암수치(afp)가 두 배수로 엄청나게 뛰어 있는 것이 아닌가! 주치의께서는 또 다시 색전술을 권한다.

이때도 이식을 꼭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서울 모 종합병원에서 검사결과 폐와 갈비뼈 전이(5cm)암을 발견한다. 이식은 생각도 못할 형편이 되었다.
주치의께서 간암이 문제가 아니고 폐전이 암 부분 수술을 할 수는 있지만 해봐도 희망이 있는 수술이 아니라는 청천병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래도 수술을 해볼까?” “어찌해야 좋을까?” 침대에 누워 30~40분을 많은 고민하다가 그래 수술을 포기하자고 결정하고 일어나서 제 아내를 붙들고 나는 절대로 이 병으로는 죽지 않을 테니 괴롭지만 더 도와 달라고 애원하며 많이도 울었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붉혀진다.
결국 방사선치료를 18회 마치고, 편안한 맘을 가지기 위해 30여년 정들었던 직장을 정리하고 처음 했던 무염 식이요법으로 내 운명을 걸었다.

정말 미치도록 열심히 했다. 검사결과는 꾸준히 호전되었다. 그렇게 약 2년이 되어갈 즈음 2005년 2월 주치의께서 검사결과를 보시더니 이제는 어느 정도 안심이 되니 혈액검사만하면서 지켜보자면서 “처음에 올 땐 정말 절망이고 심난했는데… 유익현님과 같이 전이 상태에서 이렇게 좋아진 사람은 십만명 중 1명 있을까 말까” 한다고 말씀하신다. 정말 하늘에 붕 떠있는 기분이었다. 아내의 눈물겨운 고생을 생각하면 미안함이 많았지만……

서울 종합병원에서 주기적으로 혈액검사만 했고, 2009년부터는 동네 내과에서 혈액검사하면서 10년 넘게 병원신세 지지 않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아토피는 요(소변)료법 등 여러 가지 자연치료와 음식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즐겁게 지내니 지금은 깨끗이 치료가 되어 행복하다.
암은 통증까지는 아니어서 겉으로는 힘들지 않았지만 아토피가 전신에 퍼져 너무 괴로웠고, 지켜보는 아내의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저를 포함 우리 인간은 왜 낭떠러지에 도달해서야 정신을 차리는지 지금도 후회가 되는 부분이 있어서 말씀드리지만 지금 이 때가 아무리 힘들고 절망적이라도 빠르다는 생각을 우리 환우님들이 빨리 깨닫고 열심히 관리하시고 긍정적인 맘가짐으로 치료에 임했으면 하는 맘으로 부탁드리고 싶다.

간경화, 암! 겁내지 말자! 간경화나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이제 나는 죽었구나 생각하는 사람은 2~3개월을 못 넘기고 빨리 죽는다고 한다.
간경화나 암은 못 낫는 병이 아니고 조금은 힘들뿐이지 낫는 병이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말고 의지를 가지고 많이 웃고, 좋은 생각만하고, 즐겁고, 긍정적인 맘가짐으로 치료하시면 꼭 좋은 일이 있다고 믿는다.
암환자가 되면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의사, 간호사, 약사, 주위 모든 분, 심지어 가족까지도 죽을 것이란 생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부담이고 힘들다는 것 저 뿐만 아니라 모든 환우님들이 공감하실 것이다.
제가 건강하게 10년 넘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제 아내, 아들과 딸, 주위 모든 분들의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덕분이라 믿고 있다.

내 병을 낫기 위한 제 경험을 말씀드리면 먼저 긍정적인 맘가짐, 먹고 자고를 반복, 많이 웃고 즐거운 생활로 지금까지의 모든 일상생활을 180도 바꾸어 주려고 노력하는 지혜가 제일중요하다고 믿는다.
저는 어떤 약이나 음식을 먹든지 입에 대고 뽀뽀를 3번 하고, 10번 웃고, 아픈 장기에 대고 문지르면서 사과를 하고 먹는다.
즉, 저 같은 경우 간장에 대고 “간아! 간아! 지금까지 너를 너무 혹사시켜서 미안하다! 앞으로는 최고로 편안하게 해 줄테니 우리 건강하게 잘 지내보자구나”라고 사과하고 난 후에 꼭꼭 씹어서 침과 함께 먹었다.
그래야 100%가 아닌 200%이상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믿었다.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한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오면서 박수를 치고 하~하~하~ 큰소리로 한참을 웃으면서 하루를 시작했던 것도, 수시로 큰소리로 웃고, 신나는 노래를 들으면서 막춤을 추고, 또 한 가지는 무염 죽을 먹을 때 죽 한 수저를 입에 넣고 수저를 놓고 150~200번을 씹는가 하면, 신나는 노래에 장단을 맞추고, 어깨춤을 추면서 먹었던 것이 나를 10년 넘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준 비결이 아닌가 생각한다.(최소한 100번 이상 씹으십시오.)
우리 암환자들은 병원에서 어떤 치료든 최초 치료가 끝나고 의사선생님께 완치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나는 암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지 마시고, “예전생활로 돌아가서는 절대로 안 된다.” 우리 암환자는 평생 관리를 철저히, 조금이라도 소홀한 부분이 없는지 점검 또 점검해야 한다.

이 글을 읽어보신 환우 분들이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지고 어려운 투병생활이지만 완치는 꼭 이루어진다는 생각으로 굳은 의지와 신념으로 이겨내셨으면 해서 제 투병기를 올려봅니다.
지금도 힘들게 투병하시는 환우님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치료할 때 는 직장, 가족, 돈 걱정 등등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싹 내려놓고 머리를 비우고, 맘과 몸을 최고로 편안한 상태로 유지하고 치료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사실 제가 겪은 크나큰 교훈이라고 말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2014년 3월 일 유익현 올림 Tel : 010-9877-7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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