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에세이
사랑은 슬픈 일이 아닙니다
고동탄(bourree@kakao.com)기자2017년 10월 09일 20:35 분입력   총 5140명 방문
AD
어렸을 때 보았던 영화 러브스토리는 연인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이나 태도,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사랑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누구나 주고받을 수 있으며 우리의 삶을 지탱시켜 주는 근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랑은 슬픈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그 영화를 다시 보니 극중의 줄거리가 슬픈 것이지 사랑은 슬픔도 기쁨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오직 사랑일 뿐 기쁨, 슬픔, 부끄러움이나 수줍음 같은 감정은 그저 부수적일 뿐입니다. 인간관계는 부수적으로 많은 감정을 만들기 때문에 사랑을 통해서도 여러 가지 감정이 생깁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그에 대한 차이가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눈에 보이는 사건에 대해서 말할 때는 비슷한 줄거리를 말하지만 보고 느낀 것을 이야기할 때는 큰 차이가 생깁니다. 사랑을 하나의 사건으로 바라보고 나의 감정이 어떠한가를 면밀히 관찰하고 생각과 행동을 정리한다면 좀 더 성숙하고 유연해 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위해서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운전을 하려면 운전 기술을 배워야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운전이나 악기 연주법 또는 수학이나 물리학은 어디에서든 배울 수 있지만 사랑에 대한 기술은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습니다. 온전히 스스로 학습하고 스스로 터득해야 되는 과목 중에 하나입니다. 이 점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군가 교과서처럼 이론을 세우고 정의를 내리고 사랑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된다면 이 세상에는 오직 한 가지의 사랑만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이런 과목이 생긴다면 물리학이나 수학보다는 더욱 어려운 강의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이런 과목은 아직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닥친 불행은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가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능력이고 살아가는 원동력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싹틔워서 키우는 방법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공기는 외부에서 우리를 살아있게 하지만 사랑은 우리의 내부로부터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공기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에 환경에 대하여 토론하면서 숨쉬기 좋은 공기를 만들려는 노력을 하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노력이 없는 것이 현재 우리의 모습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즐겁고 행복해질 것인지, 아니면 불행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하게 될지는 좋은 환경에 달려 있습니다. 나의 외부 환경, 그리고 내부의 환경입니다. 사랑은 우리의 내면에서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의 분량이 저장되어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끄집어내는 기술과 잘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극적으로 사랑이 체험되는 순간은 태어나는 때와 죽는 때입니다. 아마도 사랑의 본질은 혼자의 세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태어남과 죽음은 혼자서 이루어지는 고독한 과정입니다. 당사자에게는 삶의 시작과 끝이지만 함께하는 사람에게는 큰 사건과 충격이며 여기에 따라 삶에 대하여 사랑을 가중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상처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트려 삶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사랑의 기술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이성은 기쁨을 추구하기 때문에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려고 노력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늘 기쁘고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또 기쁨과 행복, 안정을 위해서 사랑을 하는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언제든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이성의 범위를 벗어나 더 큰 내용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택이 사랑에 기반을 둔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거기에서 비롯되어 나온 감정이 슬픔이거나 기쁨이거나 하는 것은 별로 중요치 않습니다. 그리고 혹시 모를 후회도 없어질 것입니다.

암 진단을 받는 것은 의학적으로 몸속에 암이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상황이지만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급작스러운 환경의 변화는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는 영화 러브스토리를 보면서 사랑에 대한 용기에 찬사를 보내고 또 주인공의 죽음 때문에 슬픔을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실이 그 영화보다는 덜 극적일지 몰라도 혹독함은 그 이상입니다. 47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주인공이 앓았던 백혈병은 위중한 병이고 사랑을 익힐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처럼 슬픈 일이 또 있을까요? 그러나 이별이 슬픈 것이지 사랑은 슬픈 일이 아닙니다. 만남과 이별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지만 그 사이에 있는 사랑은 아름답습니다. 영화처럼 말입니다.

뒤로월간암 2017년 10월호
추천 컨텐츠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