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에세이
스스로의 예언을 이루는 기쁨
고동탄(bourree@kakao.com)기자2018년 02월 08일 10:45 분입력   총 5336명 방문
AD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나에게 얄밉게 구는 친구가 앞에 걸어가고 있을 때 속으로 ‘저 친구는 곧 넘어질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지켜보는데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면 통쾌함이 생깁니다.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지켜보면서 ‘저 친구가 넘어 지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실제 상황이 된다면 괴로워질 것입니다. 사람은 가끔 앞일을 내다보는 능력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느낌 중에 예감이나 직감이 바로 이 능력에 해당하는 기능이며 누구나 갖고 있는 능력입니다. 또 직관이 있습니다. 보는 순간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바로 알게 되는 감각입니다.

몇 분 후와 같이 가까운 미래에 대해서 예측을 할 수도 있으며 몇 년 혹은 몇 십 년 후와 같이 인생을 통틀어서 생기게 될 일에 대해서 예측을 할 수도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곧 넘어질지도 모른다와 같은 일은 그저 해프닝일 수 있고 나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먼 미래에 대한 예측은 나와 주변의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줍니다. 가령 ‘나는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굶어 죽지도 않을 것 같다’ 이런 예측을 하고 그것이 들어맞는다면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큰 영향을 줍니다. 그리고 대부분 이러한 예감은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무언가 예언을 할 때 그 속에는 무의식적으로 기대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기대는 자신의 성격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자신이 긍정적인 사람이라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긍정적인 예언을 하고 그렇지 않다면 반대의 경우가 됩니다. 또 되풀이하면서 되뇌는 예언은 곧 스스로와의 약속이 되어 언젠가는 현실이 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초등학교 선생님을 대상으로 한 예언에 관한 연구는 그 결과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초등학교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지능검사가 실시되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에게는 전체 학생의 20% 정도 아이들이 매우 높은 수준의 지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한 학기 정도가 지나면 괄목할만한 성장을 할 것이라는 검사 결과를 알려 줍니다. 그러나 사실 20%에 해당하는 아이들은 그냥 무작위로 선정된 알 수 없는 지적 수준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학기가 지난 후에 다시 검사를 해보니 20%에 해당되었던 무작위의 아이들은 말 그대로 우월한 지적 수준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아이들의 지능 수준이 아니라 선생님들의 행동 방식입니다. 지능 검사가 시작되면서 20%의 아이들에 대한 예측을 선생님들에게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이 아이들의 지능이 높은 수준에 있었다는 믿음으로 학기를 시작했으며 공부하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다른 아이들보다 더 정성을 들여서 20%에 해당하는 아이들을 대했습니다. 그리고 검사가 시작될 때 예측한대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연구 사례를 보면 우리가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결과는 매우 다르게 나타납니다.

일반인이라면 긍정적인 믿음과 반대의 믿음 때문에 생기는 결과가 크게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위의 아이들을 상대로 했던 연구에서 보듯이 기껏해야 공부 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또 ‘큰돈은 벌지 못하지만 굶어 죽지도 않을 것 같다’와 같은 예언은 조금 가난하지만 평범하게 살게 됩니다. 크게 위험하지도 않으며 목숨이 위태로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은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의 것입니다. 그런데 암과 투병하는 사람의 예언은 그 결과가 자신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위암을 진단 받고 성공적으로 치료가 끝난 40대의 환자가 있었습니다. 비록 몸에 위는 없지만 철저한 식생활과 운동 그리고 여행을 즐기면서 매우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생활했습니다. 세계의 유명한 산은 한 번씩 다녀올 정도로 암과 투병하는 시간은 매우 열정적이었습니다. 건강과 암에 관련된 공부도 많이 하면서 식이요법과 자기관리도 철저했습니다.

몇 번의 위기도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넘어가곤 했지만 스스로의 믿음에 한계가 왔을 때 예언을 합니다. ‘이제 1년 정도 남았네.’ 암과 투병한 지 7년째 되는 해였습니다. 아마도 암이 힘들었다기보다는 삶이 힘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의 예언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70대의 여성이 간담을 진단받았습니다. 담당 의사는 보호자를 불러서 약 3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보호자인 남편은 하늘이 무너질 듯 충격을 받았지만 정작 환자는 담담하게 이렇게 예언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어디 3개월 있다 보자. 결단코 의사의 말처럼 되지는 않겠다!’ 그녀는 이제 80번째의 생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예언을 한다고 모두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확률은 매우 높아집니다. 그렇다고 긍정의 예언이 현실을 도외시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갖고 있던 기대가 허물어지는 것처럼 상처 받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또 요즘처럼 과도하게 긍정을 좋아하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진실을 마주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나에게 매우 안 좋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긍정의 콩깍지가 쓰인 마음의 눈은 진실을 가릴 수 있습니다.

긍정은 환상이나 지나친 기대가 없는 상태, 현실 속에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나타날 때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무턱대고 ‘다 잘 될 거야’라는 믿음으로 진실을 외면하고 호도한다면 오히려 악영향을 줍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상태에서 스스로에게 긍정의 예언이 있다면 무엇일까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항상 그 예언을 염두에 두고 생활한다면 그 예언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처럼 무의적으로 세심해지고 정성스러운 생활이 몸에 익숙해질 것입니다. 스스로의 예언이 맞아 떨어지는 것처럼 통쾌한 일도 없습니다. 모두 자신의 예언을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 물론 좋은 예언이 적중해야 되겠지만 말입니다.
뒤로월간암 2018년 2월호
추천 컨텐츠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