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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그 바람길을 따라서
구효정(cancerline@daum.net)기자2023년 09월 22일 14:48 분입력   총 859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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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철우 (수필가)

바다와 섬을 찾아 나선 내게 ‘어느 바다가 가장 좋더냐’라는 질문을 해온 친구가 있었다. 바다와 섬만 있으면 되지 어느 바다가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그땐 웃고 말았지만, 만약 구석구석 돌아보고 싶은 바다를 고르라는 질문이었다면 크게 주저하지 않고 남해를 선택했을 것이다. 기실 남해의 항, 포구와 섬 그리고 유서 깊은 절집과 맛집을 찾아 돌아보는 ‘남도 기행’을 하는 것이 소망이니 말이다.

바다와 섬을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은 금년 1월의 바로 그날, 내 여행 노트의 11월에 굵은 글씨로 이렇게 적어두었었다. 「순천만(順天灣)」.

순천(順天). ‘하늘의 이치에 순응한다’라고 풀이하면 무리일까. 남쪽으로 여수, 동쪽으로 광양, 남해, 사천이 줄을 서고, 서쪽으로 벌교, 보성, 고흥, 화순, 북쪽으로 하동, 구례, 곡성 등 어느 곳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포근한 남도의 땅이 팔을 벌려 감싸 안는 곳. 대전에서 시작한 호남고속도로가 남해고속도로로 그 이름을 바꿔 부산까지 이어지는 곳. 그리고 그 아래 동쪽의 여수반도와 서쪽의 고흥반도에 둘러싸인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가 바로 순천만이다. 언제부턴지 11월에 바람이 불면 가슴 속은 온통 서걱거리는 마른 갈대 소리로 가득 차곤 했었는데, 그건 내 감성의 처마 끝에 ‘11월의 순천만’을 매달아 둔 까닭이었다.

순천만에 펼쳐진 갈대를 바라보는 첫 느낌은 어떨까. 가슴 속에서 마른 갈대 소리가 날 때마다 그것이 가장 궁금했었는데, 이제 순천시에서 흘러내려 온 동천과 이사천이 만나는 대대포구에 서서 시야 끝까지 펼쳐진 갈대를 본다. 포근하게 감싸 안기듯 편안하다.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아늑함. 갈대밭 샛길로 난 산책로 위에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해본다. 공해에 찌든 도심의 공기와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밀물 때면 바닷물이, 썰물 때면 민물이 드는 풍천(風川)이어서 그런지 소금기 가득한 바닷냄새도 없다. 그 많던 세상 이야기는 하나도 없이 오직 바람과 갈대의 바다에 몸을 맡기고 서 있다. 남해의 해풍과 남도의 육풍이 약속이나 한 듯이 갈대밭에서 만나는 모양이다.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바뀜에 따라 갈대들은 같은 동작으로 일렁이고 있다. 11월의 바람이 닿으면 가슴에서 나던 바로 그 갈대 소리. 처음엔 갈대를 흔드는 것이 바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갈대밭 사이를 걸으니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듣고 있는 것이 갈대 소리인지 바람 소리인지. 바람이 갈대를 흔드는 건지, 갈대가 바람을 흔드는 건지 모를 일이다. 아니 어쩌면 나만 흔들리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을 흔드는 바람에 맞서 온몸을 맞기고, 갈대는 쉼 없이 기다려온 그리움의 힘으로 다시 바람을 흔드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세상이 모두 흔들려도 너는 흔들리지 말라고 내게 소리쳐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갈대밭처럼 좋은 사색로가 또 있을까.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가 부석사 입구의 은행나무 숲길을 ‘조선 땅 최고의 명상로’라고 했는데 아마 이곳은 방문하기 전에 쓴 글일 것이다.

언젠가 1960년대의 삶에 대한 허무를 그린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霧津紀行)’을 읽고 지도에서 무진(霧津)이란 곳을 찾아 헤맨 적이 있다. 당시에는 현대인의 방황과 고민 같은 소설의 내용보다는 안개에 점령당한 무진이란 도시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그 후 새벽이면 짙은 안개에 묻히는 이 순천만 갈대밭이 소설의 동기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보고 싶었던지….

대대 포구에서 유람선을 탔다. 배는 바다를 향해 미끄러지듯 나아가고, 수로 옆의 갈대밭은 바다처럼 출렁이며 가는 가을의 끝자락을 놓지 않고 있다. 바람은 잦아졌어도 이물께에 서서 듣는 갈대 소리는 더 크고 서럽다. 겨울 바다에 배를 띄우는 것만큼 외로운 것은 없다더니 맞는 말인 것 같다.

유람선 위에서 만나는 순천만의 철새들은 또 다른 기쁨이다. 겨울 진객을 만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서인지 검은 갯벌 위에 선 세 마리의 흑두루미는 마치 연미복을 입은 마술사처럼 느껴졌다. 흔하게 보이는 청둥오리는 자맥질하느라 분주하고, 순천만의 잔잔한 수면 위를 나는 세계적 희귀조인 검은머리갈매기의 비상은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순천만의 진정한 보물은 무엇일까. 갈대도 철새도 그렇다고 멋진 풍경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을 있게 한 ‘갯벌’이 그것이다. 순천만의 갯벌은 짙은 검은 색이다. 손으로 만져보면 얼마나 부드러운지 얼굴에 바로 바를 수도 있다. 갈대도 갯벌에 몸을 의지한 채 서 있다. 한번 빠지면 가슴 깊이까지 들어갈 정도로 질퍽한 이 갯벌이 온갖 생명의 기원인 셈이다. 그러니 순천만이 어머니의 자궁 같다는 말이 나올밖에.

배는 어느덧 와온(臥溫)과 화포(花浦)의 중간쯤에서 멈추어 섰다. 꼭 와보리라 마음먹은 곳들이다. 와온은 순천만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는 곳이고, 화포는 일출과 일몰이 모두 아름다운 곳이다. 배 위에 서서 시간이 멈춰진 채로 이렇게 노을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멀리 순천만 너머로 바다 위에 꿈을 던진 사내들의 땀 냄새가 배어나오는 듯하고, 호수처럼 고요한 수면으로는 여행자의 한숨이 한 움큼씩 떨어지고 있다.

갈대밭을 가로질러 용산전망대로 가는 산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소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순천만의 비경 때문에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 마침내 용산전망대에서의 긴 탄성.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길이었지만 이런 비경 앞에 서게 되니 오히려 호사스럽다는 생각이 먼저 고개를 든다. 이곳에 오르지 않으면 순천만에 오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더니 올라보니 알겠다.

늦가을 바람에 일렁이는 마른 갈대들의 군무(群舞)로 가득 찬 11월의 순천만. 물 빠진 만(灣)엔 크게 굽이쳐 흐르는 물길 하나 남기고, 늦게 떠난 배 한 척이 긴 포말을 남기며 돌아온다. 소금을 먹고 자란다는 칠면초 군락은 일곱 가지 색으로 바뀌더니 갯벌 위에 붉은 바다 단풍을 펼쳐 놓았다. 그 바다 위로 겨울 철새 낮게 날고, 고흥 땅 위에 힘없이 걸린 해는 오늘도 길을 잃는다. 누굴까 사람들의 마음에 돌을 던져 갈대밭에 둥그런 파문(波紋)이 일게 한 이는.

대대 포구에서 온전히 바람길을 따라오면 와온(臥溫)이 나온다. 863번 지방도에 있는, 순천만에 접한 포구마을이다. ‘따뜻하게 누울 수 있는 곳’. 순천만큼 정감 가는 이름들이 있는 곳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포구는 조용했다. 마을의 굴뚝은 저녁밥 짓는 연기가 하얗게 피어오르고, 물 빠진 갯벌엔 고깃배 몇 척과 꼬막 작업선들이 지친 숨을 가다듬고 있다. 와온 앞바다에 있는 까막섬은 마을의 수호신처럼 소나무 몇 그루를 이고 오늘도 당당히 순천만 가운데 서 있다. 마음 급한 어부는 대나무 채묘 그물을 확인하러 홀로 널을 탄다. 와온 사람들도 갈대처럼 순천만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새 노을은 포구의 가로등 위에 내려 앉아있다. 와온은 자신의 내면을 펼쳐 보이기 좋은 곳이다. 붉은 해가 스러져가고 가로등은 하나둘 불이 켜진다. 한숨처럼 하루가 간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와온에서 지는 해는 와온 사람들 가슴속으로 진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모두 뻐얼건 해 하나씩을 가슴속에 품고 날을 샌다는 것을.

이제 11월의 내 감성의 처마 끝에는 이곳의 노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포(花浦)로 차를 몰았다. 꽃이 핀다는 포구. 와온의 맞은편에 앉아 순천만의 하루를 지켜보는 포구. 화포 가는 길은 유난히 쓸쓸하다. 가을걷이를 막 끝낸 빈들과 물가의 갈대들이 오늘도 서걱거리며 합창을 하고 있다.

화포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꽃을. 화포에 닿으면 알 수 있을까.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를.

늦가을 바람 소리는 처량하게 차창을 두드리고, 가슴 속은 바람 소리인지 갈대 소리인지 구별할 수 없는 묘한 소음들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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