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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를 딛고 서다.
고정혁기자2009년 01월 08일 16:15 분입력   총 879273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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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봉준(43)_위암4기 3년차.
3년 전 8월. 위암4기 진단을 받았다. 위 전체를 들어내고 임파선을 떼어내고 이어지는 항암3회를 맞고는 그대로 병원을 졸업했다. 더 이상 항암을 지탱할 힘도, 이겨낼 자신도 없었다. 몇 걸음 걷기도 전에 휘청대는 몸을 끌고 산으로 기어가기 시작해서 백두대간 종주를 했다.
그리고, 위암진단 후 일 년만에 꿈에 그리던 아프리카 킬로만자로 등정을 해내다. 자신을 시험하고 한계를 뛰어넘으면서 나는 살아있다는 힘과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 더 높은 곳으로의 비상을 꿈꾸곤 한다.(킬로만자로 등정기는 월간 암 4월호).
2007년 12월, 나는 다시 에베레스트 등정길에 올랐다.

2007년 12월 13일 인천공항에서 네팔카트만두까지
아침 9시 30분 인천공항 출발, 7시간 15분 후 현지 도착. 가이드 린지 라마가 마중 나와 노란 꽃목걸이를 걸어준다.

2007년 12월 14일 카트만두 -> 루크라 -> 팍딩(2,600미터)
새벽 5시 45분 호텔을 나와 국내선 공항으로 향했다. 20인승 경비행기 탑승하니 여승무원이 미인이다. 기념사진을 찍는데 너무 좋아서 입이 벌어졌다. 루크라공항에 도착, 차에 우유를 탄 밀크티를 이날부터 정말 물리도록 마셨다. 소변을 보면 야크(들소)냄새가 날 정도이다.

2007년 12월 15일 팍딩에서 셀파의 본거지 남체(3,440미터)
해발 3,000미터를 넘어서면서 호흡곤란 등 고소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등선길이 남체로 올라가는 길이다.
오늘은 토요일 남체 시장이 열린다. 많은 사람들이 야크에 짐을 싣기도 하고, 카고백 2~3개씩(카고백 1개가 약 30킬로 무게) 지고 장사하러 올라온다. 카트만두, 멀리는 인도, 티벳에서도 히말라야를 넘어 온다.
우리가 네팔에 있는 동안 차마고개 주제로 KBS스페셜에서 방송했다는 애길 들었다.

2007년 12월 16일 남체->쿰중(3,780미터)->캉주마(3,550미터)까지
최초 에베레스트을 등정한 힐러리 재단에서는 쿰부지역에 발전소를 세워서 전기가 공급되고 있고, 2003년 에베레스트 등정 50주년을 맞이하여 같은 재단의 도움으로 쿰부지역 출렁다리는 모두 새로 튼튼하게 교체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쿰부지역은 힐러리 재단의 혜택으로 다른 지역에 비하여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쿰부마을을 지나 캉주마(3,550미터)에 도착했다. 롯지 아이들이 정말 사람들을 거리낌 없이 잘 따랐다. 씻지 못해 지저분했지만 천진난만 그 자체였다. 롯지에서 바라본 아마다블람(6,865미터)은 말 그대로 환상이다.
언젠가는 아마다블람도 갔다 와야지 다짐을 해본다.

2007년 12월 17일 캉주마->탕보체(3,860미터)->디보체(3,820미터)
목적지까지는 길고긴 고갯길로 고소증 발생 우려지역의 하나다. 이곳의 주요한 땔감인 야크똥을 말리는 광경이 이채롭다. 고개에 올라서니 불교탑이(라마교) 앞에 우뚝 솟아있고, 왼편 언덕 쪽에 불교사원이 크게 성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에베레스트와 아마다블람이 환상처럼 다가왔다. 저 멀리 에베레스트가 보인다.
11시 50분 디보체에 도착하여 점심으로 라면을 먹고 휴식시간. 이곳은 해가 4시면 지는데 해가 지자마자 기온이 영하로 곧바로 떨어진다.

2007년 12월 18일 디보체->페리체(4,240미터)
라마교의 탑이다. 사방으로 눈을 그려 넣었다. 선과 악을 쳐다본다는 것이다. 에베레스트를 향해서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다. 저 황량한 대지를 난 아무 생각도 없이 숨을 헐떡거리면서 걸었다. 무엇을 얻고자 난 이곳을 있는가?

2007년 12월 19일 페리체(4,240미터)에서의 고소적응
오늘은 고소적응을 하면서 모처럼 쉬는 날이다. 한국에선 대통령선거가 있는 날이기도 하다. 모처럼 맛있게 아침식사를 마쳤다. 페리체 리(해발 4,700미터)까지 고소적응을 위해 올랐다 내려와서 점심을 먹으면서 고소증세 없느냐고 일행 두 분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무 이상 없단다. 킬로만자로에 가서 고소증으로 고생했던지라 의아하고 불안했지만 고소체질이 있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너무 잘 적응하는 듯 보여 일정은 변경됐다. 페리체에서 고락셉으로 직행해서 3일 앞당겨서 이왕 네팔 온 김에 안나푸르나 푼힐전망대도 갔다 오자로. 가이드와 일행은 모두 환호했다. 닥쳐올 힘겨움을 모른 채 우린 대견스러워하며 잠을 청했다.

2007년 12월 20일 페리체(4,240미터)->고락셉(5,170미터)
출발!! 모두들 고무되어 힘이 넘쳐났다. 5,200미터까지 고소적응도 완벽했겠다, 두려월 할 것이 없다. 고락셉을 향하여!!
오늘 원래 자야 할 로부체(4,910미터)를 지나 고락셉(5,170미터)으로 천천히 오르는 언덕에 에베레스트 등산중 사망한 셸파들의 무덤인 쵸르테가 수십개 흩어져 있었다.
근데 이게 웬일, 1시간 30분정도면 도착할 줄 알았던 고락셉이 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다. 5,200미터 넘는 곳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힘겨운 산행이었다. 드디어 마지막 롯지인 고락셉에 도착.
저녁을 먹으려고 막 하는데 머리가 "띵" 심상치 않았다. 얼른 누웠다. 5,000미터 이상에선 산소도 50%밖엔 존재하지 않으니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나만 고소증세가 나타난 줄 알았는데 일행 모두에게 고소증세가 한꺼번에 왔다. 모두들 숨을 제대로 쉬질 못하니 잠은 잘 수도 없고 얼마나 뒷골이 당기는 지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은 서로의 숨소리를 확인하면서 뜬눈으로 지샜다.
내 숨소리가 나다가 안나니 이명선회원이 확인한다고 벌떡 일어나다가 오히려 머리가 더 아파 고소가 심해지는 일도 있었다. 고통의 시간은 더디기만 하고.
내려와서 들은 애기지만 고산에서 생활하는 포터라고 하여 고산증에 걸리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는 것이었다.
누구든 영양섭취가 부족하고, 너무 피로에 지치고 추위에 노출된다면 고소증에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2007년 12월 21일 고락셉-칼라파타르(5,600미터)-베이스캠프(5,400미터)-페리체(4,240미터)
뜬눈으로 새운 우리일행은 새벽 3시에 일어나 간단한 스프를 먹었다.
4시10분 출발. 한 시간쯤 올라가는데 왜 이리 손발이 시리고 춥던지 스틱을 손에 쥐고 갈수가 없어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스틱을 질질 끌면서 한발 한발 올라갔다. 우리 일행은 이미 고소증에 걸려 정말 한발 한발이 천근만근의 걸음이었다. 정말 대단한 정신력이다.
드디어 칼라파타르 정상!
에베레스트의 좌측능선 봉우리와 우측의 롯체능선 일부 및 눕체 봉우리는 흰눈에 덮여 있으나 에베레스트 정상엔 눈이 바람에 날려가서인지 많은 부분이 검은 바위상태로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푸모리(7,145미터)가 바로 눈앞이다.

그리고, 거침없는 하산!!!!
우린 고소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한시라도 고도를 낮추는 하산이기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4,240미터인 페리체까지 하산하기로 결정하였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모르지만 하산길은 국내 산행하듯이 내려왔다. 그 지독한 고통에서 얼른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간절했으리라.

지난 3년을 돌아보면 암은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처음, 암은 내게 죽음으로 다가왔다가 이제는 하나의 과제이자 디딤돌이다. 매년 암을 딛고 나는 산을 오른다. 더 힘들고 더 고통스럽지만 더 높이 오르고 싶다. 암으로 산을 알았고, 산에서 무한한 힘을 얻고 산에서 내 안의 진정한 나를 만난다. 암환자라는 굴레에 갇혀 살아서는 안 된다. 암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서 자신과 마주서야 한다. 몸으로만 암을 이길 수는 없다. 정신으로 암을 제압하고 모두 암에서 이기기를 바라며 여행기를 마친다.

뒤로월간암 2008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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