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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여! 통곡하고 울어보라!
고정혁기자2009년 01월 15일 18:48 분입력   총 880675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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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만|대장암3기. 장로회신학대학원 샌프란시스코신학대학원 수료. 대한예수교장로회목사, 교회성장연구소대외협력실장 재임. jesusn@naver.com

암을 선고받고 나면 환우와 가족들은 ‘이제 죽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마음과 하필이면 왜 ‘나와 내 가족이 암이야! 무슨 죄가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한바탕 울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울음도 오래 가지 못한다. 지루하게 진행되는 수술과 항암 스케줄을 따라가고 온갖 좋다는 처방을 좆아 다니다보면 마음 놓고 울 여유도 없이 치료 방향을 찾아 애쓰게 된다.

암 환자에게 웃음이 좋다고 해서 몇 해 전에는 웃음치료를 받아 본적이 있으며 온 가족들이 집에서 억지로라도 웃으려고 별 생쇼를 한 적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는 게 좋다고 해서 알아보았다. <대암클릭닉> 원장이자 암 전문가인 이병욱 박사는 “울어야 삽니다”라는 책을 펴냈다. 어떤 종류의 눈물이든 눈물을 흘렸다는 것 자체가 우리 몸에 좋고, 면역력과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감정에 의해 터지는 울음은 ‘신이 내린 자연 치유제’이고 눈물은 하나님이 주신 ‘천연 항암제’라고 한다.

나는 최근에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다. 100일 동안 하루 5시간 동안 기도하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시간을 갖기로 하고 이 일을 시작한지 60일이 되었다. 그동안 신앙적인 많은 체험을 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체험은 ‘암 선고를 받고서도 재발 판정을 받고서도 울지 않고 당당했던(!)’ 내가 정말 펑펑 울면서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그 때의 상황을 기록한 일지 중에서 일부분을 발췌하여 옮겨보았다. 내 개인적인 상황을 중요 부분만 옮겨 놓아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구체적인 이해를 위해서 몇 부분을 요약해 보았다.

기도하며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는 찬양을 하는데 어떤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배를 만지면서 기도하는데 왼쪽 등 쪽이 갑갑해지더니 조그마한 통증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강력한 기도가 이어지자 통증에서 벗어나 자유로움과 평안함을 맛볼 수 있었다.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차안에서 찬양을 듣는데, ‘이제는 내가 사는 것도 주님의 것이요, 죽는 것도 주님의 것이라’ 는 찬양을 함께 따라 부르는 가운데, 어느새 눈에는 눈물이 폭포같이 흐르며 나는 통곡하고 있었다.

새벽 3시 40분경에 순간에 잠에서 깨어났다. 꿈을 꾸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그 내용의 핵심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돈(물질)으로부터, 돈 때문에 얽힌 수많은 억압과 분노와 말로 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대로 잠자리에 박차고 일어나 거실의 십자가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었다. 어서 이 혼돈과 억압의 사슬에서 풀려 나와야 한다. 내 지난 인생에서 이 돈의 노예로 살아 왔음에 분노가 치밀기 시작했다.

가족과 아래 위층에서 모두가 고요하게 자고 있기에 작은 소리로 통곡하기 시작했다. 깊은 한숨을 계속 내쉬면서 내 안의 통곡이 이어졌다.
설 명절날이었다. 기도를 하기 시작하는데 아무 말도 나오지 않고 작고 신음하는 소리로 ‘아버지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가 점점 깊어졌다. 눈물과 콧물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누구인지 모르나 내 앞에 갖다놓은 휴지를 모두 적셔가면서 온 몸을 엎드린 채로 아버지를 계속 불렀다.
한참을 흐느껴 우는데, 갑자기 아랫배가 요동치기 시작하면서 회오리바람같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배에 점점 향기롭고 신선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더니 묵직한 것이 온 몸에서 빠져 나가는 것을 체험하였다.

위의 내용들은 여러 날 동안 일어났던 일들의 아주 한 부분이다. 한 마디로 나의 지난 과거를 돌아보면서 내 속에 숨겨져 있었던 어떤 ‘사건’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내적치유’를 하는 순간이었다. 어느 날은 나의 모습이 환상처럼 보이는데 내 모습이 정신지체장애자처럼 온 몸이 꼬이고 뒤틀린 모습이었다. 이러한 내 모습은 보이는 곳뿐 아니라 뼈와 핏줄과 세포까지 찌들리고 왜곡된 모습이었다.

그런데 위의 사건, 즉 ‘통곡하며 울었던’ 시간이 지나자 몸과 마음과 세포 하나까지 정상으로 돌아오는 따뜻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근 열흘이 넘는 동안 다양한 곳에서 여러 모양으로 ‘통곡’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 통곡은 ‘나를 나 되게 돌아보는’ 시간이었으며 그동안 체면과 자존심으로 울음조차도 ‘인내하며 이기려고 했던’ 나에 대한 항복의 시간이었다.

내 아내에게 금번에 울음에 대하여 글을 쓴다고 하니 자신에게 온 메일을 보내 주었다. 그 글 속의 주인공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저에게 우는 것에 대한 2가지 특별한 추억이 있습니다. 중학교 때 <엄마 없는 하늘 아래>란 슬픈 영화를 단체로 보았는데, 울지 않는다고 선생님께 머리 뒤통수를 맞았던 것이구요. 또 하나는 장인어른 장례식 때 하나뿐인 사위가 잘 울지 못한다고 핀잔을 들은 것입니다. 감정이 메말랐는지 저는 어릴 적부터 잘 울지 않았고 울지 못했습니다.
암을 몸속에 품고 죽음 앞에서 하나님 앞에 서니 얼마나 눈물이 쏟아지던지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제가 흘린 눈물은 항복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삶을 조용히 돌아보고 묵상해보니 한이 맺히고, 후회되고, 마음이 아파오고, 이렇게 죽어야 하나 슬퍼서 터져 나오는 눈물이어서 밤새워 울었습니다. 큰 소리로 엉엉, 목 놓아 울다가,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르고, 뒹굴며 울었습니다. 마음의 밑바닥까지 드러내는 처절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는 ‘왜 암 환우들이 울지 못하는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암 환우들은 조급하고 복잡하며 매사에 모든 문제를 자신이 해결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진정 자신은 돌아보지 못할 때가 많다. 깊이 있게 자신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자신보다는 아내와 가족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애착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억울한 것이 있어도 주로 참는 편이다. 자존심 때문이다.

암 환우가 암으로부터 ‘자유’를 얻으려면 우선 자신에 대하여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다. 암이란 놈은 한 사람의 삶의 처절한 고난과 절망 속에서 뒤틀어진 채로 “자기애(自己愛)와 자기의(自己義)”를 고집하며 살아온 인생을 먹고 살아온 존재이다. 그러기에 자기를 옥죄고 있는 그 무엇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자신의 본질을 보면서 통곡하여 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통곡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 그러나 그 방법을 우선 찾아보면 첫째는 지신이 갖고 있는 종교적인 프로그램 중에서 자신을 깊이 있게 만나게 해주는 모임 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방법이 있다. 둘째는 최근에 우리 사회 곳곳 상담소에서 개최하는 ‘내적치유세미나’ 등이 있다. 종교가 없는 분들은 이런 곳의 모임에 가족과 함께 참석하는 방법이 있다. 셋째는 아무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곳으로 가서 정말 자기 존재의 근원을 찾아 화내고 싶고 소리 지르고 싶고 울고 싶었던 것들을 모두 찾아내서 해소하는 방법이 있다. (월간 암(癌)에서 암 환우끼리 모아서 한번 실컷 이야기하며 우는 시간을 갖게 했으면 좋겠다.)

암 환우들은 실상은 잘 참아낼 능력도 없으면서 애써 참아 왔던 것들이 수 십 년간 쌓여 있기에 그 근본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겉모습에서부터라도 조금씩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시작하면 정말 속이 시원하다. 아주 뼈 속까지 후련하다고 느껴질 때까지 통곡할 수 있다면 암의 사슬에서 풀려나오는 길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암 환우들이여! 통곡하며 울어 봅시다.

뒤로월간암 2008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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