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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에 희망이 꺼지지 않기를 기도하며
고정혁기자2009년 01월 15일 19:02 분입력   총 881253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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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에 희망이 꺼지지 않기를 기도하며
김경희(44)|미용업. 야생화사진.
남편(48)|혀암. 식도상피내암. 위상피내암. 간암. 간내담도암. 비장비대증. 간섬유종. 간세포암.

이 글은 2년 동안 암에 걸린 남편과 함께 생명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기록들입니다.
간병기를 쓴다고 하나 아내입장에서 쓰다보면 이야기가 자꾸 곁가지로 빠지지나 않을까 겁이 납니다. 병은 늘 예고가 있었는데 그냥 지나쳐버린 내 무지까지 들추어내야 하기에 힘든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나와 같은 사람, 우리 부부처럼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좋겠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암을 이겨낸 사람을 보았지요. 당장에 그분 책을 구입하여 읽어보고 바로 전화하여 남편과 달려갔습니다. 강남의 유명한 병원이었습니다. 그 의사분이 시키는 대로 서로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기도하고 진료실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안내한 곳으로 가서 설명을 듣고 미슬토 요법과 송아지 흉선으로 만들었다는 무엇, 또 밀싹으로 만들었다는 아베마르를 얘기하는 데 전부 합하니 한 달 비용이 400만 원 정도입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으니 줄여달라고 하니 240만 원 내외로 말합니다. 나중에 의논해보겠노라며 말하고 돌아서는데 긴 한숨만 나옵니다. 돈이 원수네, 그냥 녹즙만 먹자, 산야초 효소도 만들어 놨으니까, 말은 그리 위안했지만 돌아오는 내내 우리는 말이 없었습니다. 너무 비쌌고, 돈은 없으니 한숨밖에 안 나오더군요.

그래도 강남까지 간 것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일단 암은 하기에 따라서 급하게 갈수도 천천히 갈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그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사랑을 가슴에 담게 되면 암이 움찔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미슬토’라는 것이 겨우살이로 만든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 움직이면 살 길이 보인다는 희망을 얻었습니다. 돈이 없다는 절망보다 길이 열리는 희망을 얻으니 앞에 환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당장에 경남 고성에서 보리와 밀농사를 짓고 있는 분께 연락을 해서 보리 두 가마와 밀 한 가마를 구해 줄 수 있냐고 물었지요.
“보리는 쌀보리하고 맥주 보리가 있고 밀은 우리밀이 있지.”
“그럼 전부 다 한가마니씩 보내주세요.”
밀을 밀싹을 키워서 즙을 내서 먹고, 보리는 키워서 가루내서 먹고 하려고요. 보리즙은 수은중독까지 풀어 준다니 보리 심을 장소를 찾아 까짓것 키워보지 하는 마음이었지요. 그런데, 남편에게 당장 전화가 왔습니다.
“너 손 큰 거는 알고 있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냐? 일하지 말고 와서 봐.”
“왜?”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도 아니고 덥석덥석 일을 저지르는데 그것도 뒤를 봐가면서 해야지 이 많은 걸 어디에 다 두려고 어쩌고저쩌고, 아무튼 난리가 났습니다. 아베마르가 200만 원씩이나 든다는데 내 생각에는 밀을 땅에다 심으면 실속도 있고 건강한 자연 그대로를 먹으니 더 좋지 않겠냐는 속셈이었지요. 나는 날마다 그 밀과 보리를 보면서 심을 땅을 찾아 노래를 했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날마다 뚜껑이 통째로 열립니다. 문 입구에 밀 한가마, 보리 두가마가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말입니다.

남편 눈치 보랴 땅 찾으랴 마음은 급하지만, 밀과 보리를 집에 쌓아 두니 일단은 마음이 놓이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바람 솔솔 통하고 공기 좋고 물 좋고 흙이 살아 있는 땅을 찾는데 꼬박 두 달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 사이 나는 삼일에 한 번씩 파주 깊은 산속에 가서 산야초를 뜯어 왔습니다. 새벽 다섯 시 반만 되면 어찌 그리 눈이 딱 떠지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합니다.
봄이니 취와 짚신나물, 질경이, 신냉이, 쑥, 돌미나리, 민들레, 고들빼기, 꿀풀의 어린 싹 등을 뜯어와 즙을 내어 마시게 했습니다. 가는 데 한 시간, 나물을 뜯는데 한 시간, 오는 데 한 시간 걸리는 데 아침 아홉 시까지는 출근해야 하니 날마다 가기 어려웠지요. 시간이 남으면 뜯어온 것들을 손질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시간 없는 날은 그대로 두고 가야 했습니다.
그럴 때면 미안해도 남편에게 손질해서 냉장고에 넣어 달라고 부탁하지만 알았다고만 하고는 손도 대지 않아 퇴근하고 보면 가져온 그대로 말라 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화가 나서 한 마디 퍼붓고 싶다가도 막상 남편 얼굴을 보면 할 말을 잊을 때가 많았지요. 때로는 산에 가라고 등을 떠밀어 내쫓다시피 하고, 핑계대고 친정아버지께 보내 벌침도 맞고 휴양림에 가서 풍욕도 하고 오라고 보내기도 했지요. 여행이라도 하면 혹시 좋아질까 하는 마음에. 그러면 남편은 이리 빼고 저리 빼다가 마지못해 다녀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효소를 담그고 산야초를 뜯으며 짬을 내어 인터넷을 뒤져가며 병의 진행 속도와 시기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찾았습니다. 어떤 증상이 있는지,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혈점이 왜 생기는지, 수많은 궁금증을 풀어가면서 점차 원인과 이유를 알아가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남편의 손발에 생기는 무좀도 의문도 풀리더군요. 눈의 실핏줄이 터지는 거며, 입 속의 염증과 잇몸의 변화, 소변량의 증가와 소변색의 변화, 배변은 또 어떻게 변하는지, 방귀는 왜 뀌는지, 가스가 차고 배가 빵빵하면 미리 복수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를 알면 하나가 더 궁금해졌고, 남편의 몸 상태에 따른 변화를 읽어내고 대처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알아야 하겠기에 어떻게든 답을 찾아야 했습니다. 책을 뒤지고, 의학자료, 의학 관련 카페도 모두 뒤져보고 대학교 홈페이지도 기웃거리고 병원, 한의학까지 찾아보자니 그야말로 잠잘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확신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알로에 베라 생잎을 깎아 젤리 부분을 먹기, 프로폴리스 세끼마다 먹기, 물을 얼러서 육각수로 먹기, 녹즙 하루 두 잔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제독에 대해서는 무지했습니다. 왜 제독이 필요한지도 몰랐습니다.
제 나름대로 이 방법은…
알로에는 암과 싸우기 위해, 건강한 세포에 힘을 주기 위해서.
프로폴리스는 T세포에 힘을 준다고, 잇몸에 염증을 잘 잡아 주었고.
책에서 본 대로 물은 얼리면 육각수가 된다 해서 이틀에 한 번씩 약수를 길러다 꼭 얼려 마시게 했습니다.
녹즙은 남들이 하니까 시작했습니다. 왜 좋은지도 모르고 했습니다. 그냥 좋다니까, 그리고 자연이 주는 것 그대로니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지요. 건강한 것들을 직접 채취하여 짜니까 해로울 게야 없다고 생각했지요. 또, 눈 뜨자마자 밤꿀을 한 숟가락을 꼭 먹게 했지요. 밤꿀에는 헬리코박터균을 죽이는 성분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위염을 완화시키고 위를 도와준다고 적혀있더군요. 산야초효소는 따로 먹으려니 번거로워 녹즙에 한 숟가락씩 섞어서 먹으니 좋았습니다. 덕분에 녹즙 맛이 좋아져 남편이 녹즙을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노력도 헛되이 남편은 고주파 시술 후에 체중이 조금씩 줄더니 얼굴색이 검게 변해갑니다. 온 몸에 발긋한 열꽃이 하나씩 피었다가 사라지는 데 검은 테의 자국을 남기네요. 그리고 화를 잘 내게 됐습니다. 물론 평소에도 화를 잘 냈지만요. 이유를 찾아가며 하나씩 화를 내기 시작하면 감당할 수 없었고, 늘 텔레비전을 켜고 격투기 시합을 보거나 게임을 합니다. 물론, 본인도 힘이 들고 지루하기도 했겠지요.

그러던 어느 날, 각시가 예뻐 보였나 봅니다. 남편이 원하고 정성을 다하니 잠자리를 하다가 갑자기 아랫배를 움켜쥐고 구르는 통에 혼이 빠질 뻔 했지요. 그 뒤로 다시는 남편 곁에 가지 않았습니다. 잠자리 문제로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면 그래도 인간인데 싶다가도 통증 때문에 겁나고 지난번 일이 생각나 따로 생활했습니다. 궁금해서 인터넷에 부부문제를 올렸는데 다른 암환우들의 생각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제각각이었습니다. 내 나름대로는 완치될 때까지는 잠자리는 하지 말자로 결론을 내렸지만 남편은 나의 결심을 무척이나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하는 소리를 하기도 하고, 핸드폰 검사를 하는 등 안하던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아내를 믿지만 은근히 걱정도 되고 미안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옆에 누우면 밤새 뒤척이다가 잠이 들곤 합니다. 심란해 하는 남편의 잠든 모습을 보면 불쌍하지만 갑작스런 통증에 남편을 잃는 줄 알고 크게 놀란 나로서는 더 이상 남편 몸 상할 짓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힘들어하는 남편을 위해 카페에 올린 글을 남편과 함께 보기도 하고 된다 안된다는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다보니 남편의 마음이 많이 풀어지더군요. 남편이 마음을 바꾸니 다시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늘 내던 화도 줄고 이제 아침이면 해 뜰 때 일어나서 햇볕을 온몸으로 받고 얼굴 비비고 손 비비고 귀도 만지고 점점 좋아져 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늘 눈뜨는 아침이 행복하길 빌었고 내 손끝에 마법의 주문을 걸듯 신께 빌었습니다. 남편의 몸에서 모든 병마가 사라지기를, 시작하는 아침과 눈을 감는 밤까지 남편 마음에 늘 평화와 사랑 가득하기를, 따뜻하고 온화한 평온이 깃들기를 늘 기도했습니다. 살 수 있게 해주세요, 아니 내 맘에 희망만 가득하게 해주세요라고 말입니다.

뒤로월간암 2008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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