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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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거름으로 크고 있는 씨앗 하나 - 두번째이야기
고정혁기자2009년 02월 16일 15:52 분입력   총 878960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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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규 엄마|아들 간모세포종 4년 투병 중

외출 끝내고 병원으로 돌아가니 내과 교수님이 보자고 하셨다.
긴장을 하고 있는데 인상 좋으신 선생님은 “수술이 잘 되면 항암치료는 하지 않지만 수술로 100% 살린다는 보장이 없어 항암치료를 합니다. 그런데 항암치료의 후유증으로 생식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어 치료에 들어가기 전에 정자를 냉동보관 해놓으려고 합니다.” 라고 하셨다. 얼마나 약이 독하면 생식능력이 떨어질까 걱정이 앞섰지만 그래도 방법이 있다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아이의 병명이 소아간암인 간모세포종이라 나이로 봐서는 내과에 입원을 하여야 하지만 병의 성격상 소아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있어 소아병동으로 옮겨 치료를 받기로 했다. 소아병동에 오니 환자들이 거의 10세 미만의 어린이들이었다. 흔히들 암은 몸속에서 10년 내지 15년 동안 자라다가 발병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생후 2주일 만에 항암치료를 받으러온 아가는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지…. 몇몇 산모들은 몸조리도 하지 못하고 병원으로 오는 경우가 있었다.

어른병동에서 있을 때는 가장 어린 환자여서 다른 보호자들이 어린 나이에 정말 안됐다는 표정으로 보는 것이 참 싫었는데 어린이병동으로 오니 이제는 가장 큰 형이 되었다. 이 많은 아이들이 다 암환자라는 것이 믿기질 않는다.
병원을 찾은 이유도 정말 간단한 것이다. 아이가 감기에 걸렸다가 열이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아 검사를 하던 중 암 판정을 받거나, 우연히 코피가 났는데 멈추지 않아서 병원에 갔더니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무서운 병이 그저 우습게 넘기던 열이나 코피로 알게 되어 진단을 받는다니 놀랍다.

본격적인 치료에 앞서 다른 곳으로 전이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골수검사를 하기로 했다. 전날부터 금식을 하고 아침에 30분간 골수검사를 하였다.
꼼짝없이 4시간 동안 복대를 메고 누워 있다가 정신을 차린 아이는 “엄마 골수이식을 이렇게 하는 건가요? 이 정도 고통으로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하는데 본인의 아픔으로 타인의 고통까지도 생각하는 아이라니….

항암제를 투여하기 전에 수술을 한다고 했다. 항암제를 96시간 연속해서 맞아야 하는데 혹시라도 주사바늘이 움직여 약이 피부에 묻으면 살이 썩는다고 아예 주사 맞을 관(케모포트)을 가슴에 삽입하는 수술을 하는데 그 수술을 다음날하고 퇴원을 했다. 항암병동에서는 퇴원을 할 때 이상한 인사를 하면서 헤어진다.
“다음에 봐요.”
다음에 보자니! 더구나 병원에서…. 참 이상한 인사지만 항암치료는 주기적으로 몇 개월에서 4년 정도까지 받는 사람이 있기에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절친한(?) 이웃인 우리들은 퇴원을 하면서 다음에 또 보자는 말로 인사를 한다.

한 달 남짓 병원에 있다가 돌아가는 집이 왜 그리 낯설었을까. 집이 아니라 섬으로 떠나는 기분이었다. 병원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서 위로하며 위로받으며 지냈는데 집으로 가면 이 고통을 아는 사람 없이 주위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있을 생각에 우울했다.

어느 날 휴게실에서 술 파티가 벌어졌다. 환자의 친척이 보호자를 위로하느라 족발과 소주를 사가지고 왔다. 어느 병원 보호자가 술을 먹을 수 있을까.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지만 병원에서 간호를 하다가 술을 마시는 그 상황을 가슴 저리게 이해할 수 있다.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엄마, 목을 놓아 우는 엄마, 이사람 저사람 붙들고 그간의 상황을 이야기를 하는 엄마, 또 그렇게 술을 마시는 엄마. 병동에서 술을 마신다고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지랴….
소아병동이라 젊은 엄마들이 대부분인데 생리불순은 예사이고 생리가 끊긴 사람도 있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에 정신과에 입원하는 사람까지 있다.

항암제를 맞는다 하면 구토와 탈모를 가장 걱정하는데 우리에게도 그 시간이 왔다. 의사선생님이 머리가 빠질 수도 있다고 하셨을 때 머리는 다시 나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엄마를 위로하던 아이가 막상 머리를 깎으려니 심경에 변화가 오는지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어느 선생님은 머리가 빠질 거라고 하고 어느 선생님은 조금 빠질 것이니 미리 깎지 말라고 하니 아이는 머리를 깎지 않는 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민머리로 다닐 아이 생각에 마음이 아픈데 내 마음이 이럴진대 외모에 한창 신경 쓸 나이의 본인은 어땠을까.

6박7일의 항암 일정이 시작되었다. CDDP(시스플라틴)를 6시간 맞고 4시간 쉬었다가 아드리아마이신을 96시간 내리 맞는다.
아이는 항암제에 별 반응 없이 적응하고 있었다. 예민한 아이는 주사를 꽂자마자 구토를 시작하고 보통의 경우는 하룻밤을 자고 나면 구토가 난다고 했다. 누구는 아직 약이 퍼지지 않아서 모르는 것이라 했고 또 누구는 사흘이 되었는데 잘 참고 있으면 괜찮은 것이라고도 했다. 누구는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다 하고 또 누구는 정신력으로도 버틸 수 없이 힘든 것이라고도 하는데 경험해보지 않은 것이라 뭐라 말할 수 없다.

사형이라는 선고는 사람을 죽일 경우에 받는다. 사람을 죽이는 그 큰 죄를 지었을 때에 말이다. 그런데 나의 죄목은 무엇인가? 자식의 투병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이 형벌은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나에게 온 것일까? 순간순간 견디기 힘든 고통이 내게도 왔다. 그러나 저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곁에 있는 사람들 불편해할까 봐 전혀 내색하지 않는, 저 아이는 얼마나 힘이 들것인지 가늠해본다.

아기들은 우는 것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가래를 뱉을 수도 없고 심호흡을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아기 엄마들은 안타까워 큰아이 엄마들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큰아이 엄마는 또 그렇지가 않다. 큰아이가 그런 면에서는 낫지 싶지만 큰아이들은 울고 보채지는 않지만 자신의 상황을 생각하는 그 머리는 얼마나 복잡할까하여 안타까우니 아이가 크건 작건 엄마들의 마음은 하나인가 보다.

입원 중 아이 친구들이 문병을 왔다. 건장한 청년들인 그들과 약병을 주렁주렁 달고 환자복을 입은 아들을 함께 보는데 견딜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그리고 잘 먹으면서 잘 버티던 아이가 입맛이 없다면서 밥을 거르기 시작했다. 음식 냄새도 맡기 싫다면서 굶는다. 아침 점심을 같이 굶으니 아이를 간호하는데 힘이 부쳐 아이도 간호한다는 명목으로 이 어미는 저녁상을 들고 나와 한술 뜨는데 목이 메어왔다.

그 친구들은 대입을 걱정하고 젊음의 한 시절을 누리고 있는데 이 아이는 무엇을 하고 있나, 자식은 밥을 못 먹는다고 하는데 어미라는 것이 밥을 먹는단 말인가? 순간 복받친 눈물이 멈추질 않아 숟가락을 놓고 목놓아 울었다. 옆에서는 그러지 말라고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그러면 안 된다며 휴지를 갖다 주면서 위로한다.
서로서로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하는 모양은 어느 형제가 있어 이런 심정을 알까 싶게 우리끼리는 혈육보다 더 마음으로는 가까운 사이인 보호자들이다.
울다가 들어갔더니 아이가 부은 눈을 보고 모를 리 없다.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 네가 밥을 먹지 않아 속상해서 그런다고 했더니 이제 좀 괜찮아졌다며 크래커와 도넛을 먹는다.
내가 아무리 괴로워도 본인만 못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참고 견뎌야 한다.

뒤로월간암 200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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