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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거름으로 크고있는 씨앗하나 - 세번째이야기
고정혁기자2009년 03월 11일 14:15 분입력   총 879140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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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귀|아들 간모세포종 4년 투병 중

5박6일의 항암일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규에게 투여한 CDDP와 ADRI는 90% 이상 오심과 구토가 나는 약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아이는 별로 힘들어 하지 않고 지냈다. 오심이 날 때는 심호흡을 한다거나 누워서 자는 것으로 위기를 넘겼다.
마지막 날까지 구토 없이 지낸다고 굳은 의지를 보였는데 낮에는 스스로 조절이 되지만 자는 동안은 어쩔 수 없었나보다. 자다가 일어나서 한 번 구토했다. 아이는 속상하다했다. 한 번도 토하지 않고 버텨보려 했다며….

아직 1차 항암이라 체력도 있고 의지력도 있어서 구토 없이 잘 넘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의사선생님이 해주신 좋은 말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항암제의 구토는 90% 이상 정신적인 것이라고 하셨다. 아이들의 경우 구토가 덜하고, 한다 해도 입 안에 있는 것만 뱉어내고는 마는데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생각해가면서 자꾸 토악질을 해대서 구토증상이 더 심하다고 하셨는데 아이는 그 말씀을 깊이 새겨듣고 참으려고, 이겨내려고 하는 중이다. 항암치료가 끝날 때까지 잘 지내주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함께 집으로 돌아와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을 하다가 저녁밥을 지었다. 청국장에 계란말이, 브로콜리 데친 것과 볶은 김치와 김으로 소박한 저녁상을 차렸다. 아이가 청국장이 맛있다면서 밥을 제법 먹었다. 마지막 두어 숟가락을 남기면서 못 먹겠다고 하기 전까지는. 아이가 아프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정말 이 아이가 아픈지, 밥은 제대로 한 것인지….
병원에서는 밥 냄새도 맡기 싫다면서 밥을 먹으라고 하면 밥과 김칫국으로만 3분의 1 정도 먹었는데 집에 와서는 밥을 제법 먹었다.

앞으로는 하루하루 수치가 낮아져서 바닥을 치다가 다시 수치가 올라갈 때까지는 힘들어 할 것인데 독한 항암제를 맞고도 별 탈 없이 넘어가는 것을 보면 이제 항암 한 스케쥴이 끝나 몸에 항암약이 많이 없기도 하고 스스로 이기려고 하는 의지도 있고 하니 힘들어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어제는 참치를 넣은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 하여 그것으로 밥을 다 먹고 오늘 채소 샤부샤부로 아침을 먹고 간식으로 그 먹고 싶어 하던 신라면을 먹었다.

아이는 근린공원에 운동도 하러 가고 청소도 한다. 그리고 주된 업무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게임을 줄기차게 하는 것이다. 친구가 제 쓰던 게임기 신형을 갖다 줘서 그것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면 저렇게 신나는 게임을 그동안 어떻게 참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다.
아이의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혼자 하고 엄마의 힘이 필요할 때에만 도와주기로 했다. 하루 두 가지 약으로 열한 번의 가글을 하고 세 번 이상 배변 때마다 하는 좌욕도 스스로 하기로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한다. 이것은 꿈이야. 아이의 배에 난 흉측한 수술자국을 보면서도 이것은 꿈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악몽을 꾸다가 ‘엄마’를 소리쳐 부르면 놀라 깨어 후하고 한숨을 내쉴 것만 같다.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약 중에서 가장 독하다는 씨디디피와 아드리아를 맞으면서도 토악질을 하거나 쓰러져 잠만 자거나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음식을 거부하거나 알려진 부작용을 겪지 않으니 아마 오진으로 괜한 고생하는 거지 싶은 맘이 든다. 정상인이 항암제를 맞으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라는 생각도 하면서 자꾸만 엉뚱한 생각이 든다.

두 병원에서 내로라하는 박사님들이 같은 병명으로 진단하셨는데 나는 오진일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외래에 가서 수치를 검사하면 정상인과 같이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주위에서 항암제를 맞은 아이들을 보았고 선배(?)들이 하도 얘기를 많이 해 줘서 집에 와서부터 긴장을 하다가 별로 나를 힘들게 하지 않기에 더 그런 헛된 생각을 하였는지도 모른다.

수치주사를 하루는 병원에서 맞고 하루는 집에서 맞는데 간호사가 어제는 어떻게 했느냐고 묻기에 동네병원에서 맞았다고 했더니 오늘은 실습을 자기 보는 데서 해 보겠느냐고 하여 한 번 해 보았다. 아마 살면서 가장 하기 싫은 것 중 하나가 자식에게 주사를 놓는 일일 것이다. 잘 놓아도 주사는 아픈데 부들부들 떨면서 놓으니 아프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주사를 맞고 난 아이는 “엄마! 하나도 안 아파.”라고 하면서 힘을 주는데 그 말 거짓말인 줄 다 안다.

아침에 머리를 감고 난 아이가 “엄마! 머리가 뭉텅 빠지네요.” 한다. 그래. 올 것은 오고야 마는구나.
“그런데 하규야 한 가지 더 말할 게 있는데 머리뿐 아니라 눈썹과 솜털까지도 다 빠진단다. 어떡하지?”
“다 알고 있었어요. 빠지고 나면 또 나겠죠.”
여기저기 빠져 있는 머리카락이 보기 싫지만, 지금은 수치가 낮아 깍지 못하고 수치가 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내가 잘 버텨야 하는데 잠을 못 자고 밤이면 이방 저방 돌아다닌다. 알맹이는 없어지고 껍질만 남은 듯이 휘청 휘청한다. 옆에서는 잠도 안 자고 어쩌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면서 제발 정신을 차리라고 하는데 도저히 제정신으로 살아가기가 힘들다. 푹 자고 나면 심신이 좀 편안해 질 것 같은데 누워도 얕은 잠뿐이다. 피로회복제를 마셔도 피곤하다.
어서 우리 집에도 봄이 왔으면 좋겠다.

이틀 전부터 밤이 되면 하규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항암제 아드리아를 맞는 아이들은 부작용으로 열을 겪는다고 했다. 잘 견딘다고 했는데 역시 다른 사람이 겪는 일을 우리라고 피할 수는 없었다. 37.5도까지는 정상으로 보고 38.3도 이상의 숫자가 3번 이상 나오면 응급실로 오라는 말씀이었는데 화요일은 이온음료를 계속 마셔대며 고비를 넘겼는데 어제는 아이가 힘들어했다.
내 몸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이 밤만 넘기고 가자고 30분마다 열을 재면서 견뎠는데 새벽 4시가 되자 이제는 안 되겠다 싶어 입원보따리를 챙겨서 응급실로 왔다. 항생제를 맞고 수액을 맞으니 열이 좀 잡힌 것 같은데 수치가 30으로 떨어져 수치가 오르고 열이 잡혀야 퇴원을 시킬 것 같다.

열이 좀 내리니 하규가 머리카락을 뽑기 시작했다. 이제는 ‘뭉텅뭉텅’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만큼 빠지는데 테이프를 들고 다니면서 치웠었다. 병원에 와서는 하규가 작정을 하고 머리카락을 뽑기 시작했다.
“아프지 않니?”
“약간 느낌은 있는데 아프지는 않아요. 엄마가 좀 뽑아줘요.”
“나는 못한다. 보는 것도 힘든데 나보고 네 머리를 뽑으라고?”
아이는 나한테 “두 손으로 뽑는 거 있잖아요. 이렇게 뽑으세요.”하며 흉내를 내며 웃는다.
너는 이 상황에서 그런 농담을 싶으냐? 아이야.

머리가 거의 빠지고 군데군데 남아서 깎을 것도 없게 되었다. 모자를 쓴 모습에 또 가슴이 미어진다. 병원 안에서 내다보는 바깥은 참으로 화창하다. 날씨는 쌀쌀하다고 하는데도 병원 안에서 보니 밀려 있는 차들이 즐겁게 놀러가는 듯 보여 부럽기만 하다. 왜 우리는 여기 앉아있나 싶은 생각에 불쑥 속상해지기도 하면서….

응급실에서 병실이 없어 이대 목동 병원으로 전원이 되었다. 교수님이 회진을 오셔서 병명이 ‘간모세포종’이 맞느냐고 하신다. 치료 의뢰서를 가져와서 드렸고 여의도 성모병원과 서울대병원에서 그렇게 진단이 나왔다고 말씀드렸더니 간모세포종의 환자치고는 너무 늙어(?)서 그렇단다.
무슨 뜻인지 뻔히 알면서도 혹시나 싶어 가슴이 덜컥 기대감으로 소리를 낸다.
“그러면 뭔가요? 다시 검사를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했으면 좋겠는데요.”
“조직검사만큼 정확한 것은 없습니다. 간모세포종이면 예후는 좋은데 이 나이에 발병하는 것이 아니라서….”
어쩌란 말인가. 또 답답하다.

집안일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아이 옆 침대에 누워 있으니 몸은 휴가다. 그래서 하규야, 이 기간이 엄마에게는 쉼표다. 그랬더니 하규가 “저에게는 물음표예요.”한다.
“그래? 그렇지만, 언젠가는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시기가 올 것이다. 믿고 최선을 다하자.”
정말 그런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아이에게 확신에 찬 말투로 대답해놓고 정작 나는 두려움 반, 잘되리라는 믿음 반이 끝없이 교차된다.

나의 무엇과 바꿔서 이 아이의 고통을 대신 짊어질 수는 없는 것일까? 적어도 아이의 고통만은 덜어서 내게로 옮기고 싶다. 너무도 간절하게. 그리고 이제 곧 다가올 여름의 눈부신 뜨거운 태양처럼 아이에게도 힘차게 뻗어나갈 밝은 미래를 주고 싶다.

뒤로월간암 2008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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